사보회사를 다니다 육아를 이유로 경력단절이 되었습니다. 아는 분의 소개로 택배회사에 OP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근무하며 느꼈던 이야기를 씁니다. [기자말] |
입구에서부터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1990년대 유행가부터 트로트, 최근 아이돌 노래까지. 흘러나오는 노래가 다양한 만큼 택배 기사들의 연령대도 다양하다. 아이돌을 좋아하는 20대부터 트로트에 어깨를 들썩이는 60대 이상까지 여느 회사에서는 함께 보기 드문 연령대들이 한데 섞여 택배 분류 작업을 한다. 그날의 음악 스타일에 따라 기사들의 기분을 대충 눈치챌 수 있다.
테트리스 머신이 된 것 같아요
택배를 받는 사람들은 기사들이 택배 배송만 한다고 생각한다. 구매처에서 소비자까지 오는 과정은 생각보다 쉽지 않고 예상보다 복잡하다. 기사들은 오전 7시 전후로 모여 택배 분류 작업을 시작한다. 회의가 있는 날에는 더 이른 새벽, 해 뜨는 걸 보면서 출근하는 경우도 심심치 않다. 평균적으로 오전 7시에 시작한 업무는 오후 7시가 넘어야 끝이 난다.
물량이 많을 경우 심야 배송까지 하면 오후 10시 넘어까지 배송하는데 12시간 넘게 근무하는 거다. 물론 초과근무 비용은 없으며 본사는 택배 기사의 건강을 위해 심야 배송을 자제해달라고 공문을 내린다. 그러면서도 당일배송을 해야 하는 물건은 당일에 배송해달라며 집하점 소장들을 그렇게 채근한다.
집하처 한 곳당 하루 택배 물량은 평균적으로 4000개, 기사가 20명 정도 되니까 대충 나눠도 1명당 200개가 할당된다. 이건 물량이 적을 때다. 많을 때는 기사당 300~400개가 넘는다.
수백 개의 택배를 담당 구역에 따라 기사들이 분류한다. 배송 지역에 대해서 기사가 제일 잘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차량에 차곡차곡 싣기 위해서도 기사가 직접 하는 게 낫다. 물론 분류도우미가 있기는 하지만 분류의 주체는 기사가 된다. 가벼운 택배부터 무거운 택배까지 매일 200~400개가 되는 물량들을 들었다 올렸다 실었다 하는데 인간의 허리가 저렇게 버틴다는 게 기사들을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또 하나 신기한 건 어디서부터 싣고 내릴지를 미리 생각해서 1톤 트럭의 안에서 밖으로 쌓아 올리는 거다. 일반 차량 트렁크에 물건 쌓아 올리는 것과는 비교도 안 된다. 마치 '인간 테트리스 머신' 같은 느낌이랄까?
가장 먼저 어디를 갈지 동선을 미리 짜고 그 동선에 따라 물건을 쌓아 올리는데 더러 중간에 택배 빼달라는 고객들에게 이게 왜 어려운지 설명하기 난감할 때가 있다. 어떤 기사는 길거리에 차 세워두고 30분 동안 택배 물품을 찾아서 고객에게 준 적도 있다.
기다림을 못 참고 전화하는 고객들
택배는 자잘한 것부터 대형까지 다양한데 어떤 사이즈의 택배가 얼마만큼 오는지 미리 예측할 수 없다. 다 실었는데 마지막 택배가 중량이 무겁고 개수가 많다면 내일 배송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고객은 빠른 배송을 원한다. 택배는 얼마나 더 빨리 배송될 수 있을까?
업체에서 보내고 고객에게 도착하기까지 3일도 안 걸린 택배를 고객은 배송이 늦는다며 전화를 한다. 어디는 주문 하루면 온다고 거기 너무 나태한 거 아니냐고 따져 묻는다. 상식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업체가 서울이고 받는 사람도 서울이라면 택배를 보내서 트럭에 싣고 오는 데까지 타이밍 잘 맞으면 하루, 도착해서 분류까지 하루 고객에게 오는 데까지 이틀 정도 소요된다.
근데 하필 업체가 지방이라면? 지방이면 집하해서 올라오는 트럭에 실려 하루 동안 올라와야 한다. 대형 트럭기사들도 쉬어야 하니 중간 터미널도 거쳐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못해도 3~4일은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이걸 고객들은 납득하기 어려워한다.
분류 작업에 정신없는 기사들과 여기저기 쌓인 택배들을 요리조리 피해 출근하면 가방을 내려놓기 무섭게 전화기에 불이 난다. 어제 배송 완료 문자 받았는데 못 받았다는 고객이 제일 많고 왜 아직 거기 있느냐고 물어보는 고객도 있고 다양한 고객들이 서둘러 아침부터 전화를 한다. 급한 아침 전화들을 처리하고 나면 기사들이 집하를 완료하고 하나둘 출발한다.
새벽에 눈 떠 본 사람은 안다. 그날 하루가 얼마나 길지, 눈꺼풀의 무게가 얼마나 무거울지 말이다. 그 무게는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한다. "안전 운행하세요"라는 인사로 기사들의 안전을 빌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