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영 시집 <나는 고요한 나라에 닿고 싶다> 출판 기념회가 지난 17일 오후 3시 대구 중구 관덕정길 28 현진건학교에서 열렸다. 2020년 첫 시집 <바람의 귀>로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문학 나눔 도서'에 선정된 지 3년 만에 펴낸 두 번째 시집이다.
출판기념회는 꽃다발 증정(김해경), 기념품 증정(김규원), 격려사(정기숙), 저자와의 대화(배정옥), 저자 인사 말씀, 김성순 · 김준화 등 독자들의 시낭송과 독후감 발표 순서로 진행되었다. 다음은 김성순 독자가 낭송한 '분꽃' 전문이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메밀전 위에
분꽃 두 장을 얹어 막걸리와 마시고
낮잠을 잤다.
퇴근한 남편이
"이상하네?
당신에게서 분꽃 냄새가 나네"
아하, 돈 안 되는 시 쓴다고 눈치 주는 남편의
밥숟가락 위에도
분꽃을 얹어 줘야겠다
본디 시적 화자에게는 분꽃 냄새가 나지 않았다. 그런데 분꽃 두 장을 얹은 메밀전 안주로 막걸리 두 잔을 마셨더니 온몸에서 분꽃 향기가 났다. 천지개벽이 이루어진 것이다.
'분꽃'은 <대학>의 '명명덕(明明德), 신민(新民), 지어지선(止於至善)'을 떠올리게 하는 작품이다.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은 대략 배움과 수양을 통해 자신을 밝게 가꿈으로써 주위 사람을 새롭게 바꾸고, 나아가 모든 사람들이 선하게 살아가는 나라를 만들자는 뜻이다.
분꽃 냄새와 명명덕, 신민, 지어지선
하지만 세상만사 그 어느 것도 말처럼 쉬운 것은 없다. 기원전 500년∼300년 무렵 공자와 맹자가 천하를 주유하면서 '수신제가 치국 평천하'를 부르짖었지만, "동방예의지국"은 여전히 시끄럽다. '나무는 고요히 있고자 하나 바람이 그치지 않는다'라는 옛말이 현대의 우리나라에서는 '국민은 고요히 있고자 하나 정치 다툼은 그치지 않는다'로 바뀔 지경이다.
그 때문일까? 최영 시인은 '또 산을 만들고' 마지막 연을 "나는/ 고요한 나라에 닿고 싶다"로 마무리하고 있다. 시인은 "어릴 때 땅을/ 파고, 파고, 또 파면/ 다른 나라가 나온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믿고/ 생각을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가다/ 바위를 만나듯 한 남자를 만났다." 그 후 "아이를 낳아도/ 파고, 파고, 또 파고/ 들어가는/ 습관을/ 버리지 못했다."
당연한 일이다. 공자, 맹자,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석가 등이 약 2500여 년 전부터 "다른 나라" 이야기를 하면서 "밥숟가락 위에/ 분꽃을 얹어" 주었지만, 대중의 몸에서는 지금도 분꽃 향기가 나지 않는다. "파서 버린 생각들을/ 차곡차곡 쌓으면 산이/ 몇 개"가 되도록 '또 산을 만들고'의 시적 화자는 '명명덕'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고요한" "다른 나라"는 그에게 오지 않는다.
찾아도 찾아도 닿을 수 없는 "고요한 나라"
인류가 "고요한" "다른 나라"를 찾아 헤맨 역사는 마치 '숨바꼭질'을 하는 것과 같다. 사유재산과 계급이 발생한 이래 시작된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찾아도 찾아도 술래는 끝이 없다.
아들이 뇌종양 수술을 해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의무관인
중대장을 만났습니다.
"예, 아니오, 로 결정하세요. 군에서 수술을 하겠습니까?"
"아니요."
"민간인으로 하겠습니까?"
"네."
오전 아홉 시에 수술실로 들어갔습니다.
4시간이 지났습니다.
군복과 군화 끌어안고
닫힌 문틈으로 또 들여다봅니다.
잘해주지 못한 것만 보입니다.
창밖에는 눈발이 휘날립니다.
비둘기도 꽃이
다 떨어진 꽃밭에서 먹을 것 찾아 구구거립니다.
밤 열두 시가 넘었습니다.
문이 열립니다.
달려가 보니 다른 환자, 의자에 털썩 앉을 때 내 넋도 숨어버립니다.
찢겨서 나뒹구는 신문에도
우크라이나의 어머니가
무너진 건물 틈으로 들여다보며 아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김소월은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 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고 했다. 대한민국의 어머니에게도, 우크라이나의 어머니에게도 '초혼'은 오직 아득하고 어두운 역사의 한 부분일 뿐이다.
출판기념회 1부 행사를 마친 뒤, 분꽃 두 장 얹은 메밀전 안주와 막걸리를 나눌 2부 행사를 위해 거리로 나섰다. 오전에 그토록 시끄럽던 반월당이 지금은 조용하다. "불법으로 도로를 점거했다"며 퀴어축제를 막으려던 대구시와, "불법이 아니다"며 대구 공무원들을 막던 경찰이 충돌해 빚어진 기이한 시끄러움이었는데, 공무들이 철수하면서 사태가 종결된 모양이다.
나라가 시끄러운 것은 '무조건 복종'을 요구하는 권력자들이 곳곳에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은, 읽으면 생각이 많아지는 최영 시집 <나는 고요한 나라에 닿고 싶다>를 읽어야겠다.
덧붙이는 글 | 최영, <나는 고요한 나라에 닿고 싶다>(천년의시작, 2023년), 112쪽, 11,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