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밀하고 전문적인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 출제 시스템이 대통령의 말 한마디로 정치적 입김을 타면 둑이 확 터지듯 출제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 올해 수능이 위험하다."
지난 2021년 2월까지 3년 4개월간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아래 평가원) 원장을 지낸 성기선 가톨릭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수능 관련 발언에 대해 이같이 우려했다. 성 전 원장은 "마라톤 하던 학생들이 종착점에 와서 피치를 올리려고 하는 찰나에 갑자기 코스를 산으로 옮기라고 하는 황당한 말"이라고 지적했다.
"6월 모의고사 결과도 안 나왔는데... 뭐가 문제?"
성 전 원장은 19일 오전 <오마이뉴스>와 전화인터뷰에서 "대통령 말 한 마디에 그 동안 뛰어온 학생들은 일대 혼란에 빠지고, 수능 출제를 준비하고 있는 평가원은 시스템 붕괴 위기에 내몰렸다"면서 "수능 출제를 앞두고 정치적 입김을 타면 안되는데, 평가원에 대한 감사에 나선 것은 겁박"이라고 우려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5일 이주호 교육부장관에게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 대학 전공 수준의 비문학 문항 등 공교육 교과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부분의 문제를 수능에서 다루면 이런 것은 무조건 사교육에 의존하라는 것 아닌가"라면서 "교육당국과 사교육 산업이 한 편(카르텔)이란 말인가"라고 발언했다.
이 발언 다음 날 교육부에서 대입 업무를 담당해온 이윤홍 인재정책기획관이 경질됐고 평가원은 지난 6월 수능 모의고사 등과 관련 감사를 받게 됐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연합뉴스>에 "윤 대통령이 (수능 출제와 관련해) 몇 달간 지시하고, 장관도 이에 따라 지시한 지침을 국장이 버티고 이행하지 않았다"고 경질 배경을 설명했다.
윤 대통령 발언에 대해 성 전 원장은 "대통령이라면 시간을 갖고 수능 시스템을 손 보도록 하면서 수능 난도를 높이든지 낮추든지 하는 전략을 구사해야지 호통 치는 방식을 써서야 되겠느냐"면서 "이것은 마치 민심이 흉흉하니까 국민의 눈을 교육으로 돌리려고 했던 전두환 식 해법을 연상시킨다"고 밝혔다.
성 전 원장은 "6월 수능 모의고사는 오는 28일 채점 결과가 나오는데 어떤 문제가 있었다는 것인지 이해가 안 간다. 대통령이 증거자료도 제대로 내놓지 않고 발언을 내지르는 방식 자체가 위험 요소"라면서 "수능을 150일 앞두고 이처럼 정치적인 입김을 타면 둑이 확 무너지듯 수능 출제 시스템이 붕괴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밀하고 전문적인 수능시스템이 수능을 앞두고 갑자기 나온 대통령 말 한 마디에 흔들리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도 했다.
이어 성 전 원장은 대통령 발언 뒤 평가원 감사 착수에 대해서도 "출제 오류도 아닌 수능을 어렵게 냈다고 감사한다는 것은 처음 들어보는 일"이라면서 "이런 감사야말로 평가원을 길들이기 위한 목적의 겁박이다. 그동안 검찰이 압수수색하고 영장 치던 그 방식을 그대로 빼닮은 것"이라고 짚었다.
"평가원 겁박, 누가 출제위원 맡겠나"
또 성 전 원장은 "수능을 앞두고 이렇게 감사에 나서면 올해 수능은 일대혼란을 겪게 된다. 굉장히 위험하다"면서 "수능 잘못 출제했다가 감사받게 생겼는데 누가 출제위원을 맡겠다고 할지도 걱정"이라고 말했다.
대입 담당 교육부 국장 경질에 대해서도 성 전 원장은 "평가원장도 수능 출제에 대해서는 출제위원장에게 맡기는 것이지 따로 얘기하지 않았는데, 교육부 국장이 난이도 조절을 못했다고 경질당한 것 자체가 억울한 일일 것"이라면서 "평가원은 교육부 산하 기관이 아닌 국무총리실 산하 기관"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