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이 싸우는 게 흥미진진했어요."
경상북도 울진에서 서울로 수학여행 온 초등학생 6학년 서 아무개 군이 국회를 방문해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의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참관한 뒤 남긴 소감이다. '싸우는 모습이 보기 좋았느냐'는 물음에 "당연히 보기 좋진 않았다. 싸워서 (김기현 대표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김 대표는 20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50여 분 동안 교섭단체 대표 연설을 이어갔다. 본회의장에선 초등학생의 눈에 흥미진진하게 보일 정도로 쉼 없이 고성과 항의가 오갔다. 야당 의원들은 연설 중 전 정부를 탓하는 김 대표에 항의했고, 여당 의원들은 "조용히 하라"며 맞받았다. 김 대표는 연설에서 "국민을 갈라치는 분열의 정치는 막을 내렸다"며 "모든 국민을 섬기는 포용과 통합의 정치를 해나가겠다"고 했지만 정작 야당 의원들을 도발해 여야 갈등을 부추기는 모양새였다.
연설 시작부터 야당 공격
김 대표는 이날 "국민의 삶을 돌보는 정치를 하겠다"는 다짐으로 연설을 시작했지만, 곧장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정부 힐난으로 넘어갔다.
"어제 이재명 대표께서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안타깝게도, 동의하기 힘든 장황한 궤변이었습니다. 사법 리스크, 돈 봉투 비리, 남 탓 전문, 말로만 특권 포기, '사돈 남 말' 정당 대표로서 하실 말씀은 아니었습니다.
소주성(소득주도성장) 실험으로 자영업 줄폐업시키고, 집값 폭등시켜서 국민을 좌절시킨 정권이 어느 당 정권입니까? 탈원전, 태양광 마피아, 세금 폭탄, 흥청망청 나라 살림 탕진이 바로 민생 포기, 경제 포기입니다.
공수처, 검수완박, 엉터리 선거법 처리와 같은 정쟁에 빠져서 조국 같은 인물이나 감싸고 돌던 반쪽짜리 대통령, 과연 문재인 정권에서 '정치'라는 게 있긴 있었습니까? 야당 대표라는 분께서, 중국 대사 앞에서 조아리고 훈계 듣고 오는 건 이게 뭡니까 이게!"
이에 야당 의원들은 "남 탓하지 마시라" "연설을 하시라" "여당 대표 연설 맞느냐"고 항의를 시작했다. 여당 의원들은 "시끄럽다" "조용히 하라"고 맞섰다.
그러자 김 대표는 야당 의원들을 향해 "윤석열 정부 실패가 곧 민주당의 성공이라는 미신 같은 주문만 계속 왼다고 국민들이 속을 줄 아느냐"라며 "언제까지 반지성적이고 비이성적인 개딸 팬덤의 포로로 잡혀 있을 것인가"라고 언성을 높였다.
이어 "존경하는 민주당 의원님 여러분, 공천 때문에 특정 정치인 개인의 왜곡된 권력 야욕에 맹목적으로 충성하는 길에서 벗어나시라"고 덧붙였다.
이후 본회의장은 김 대표의 목소리가 파묻힐 정도로 여야 의원들의 고성으로 메워졌다.
김 대표는 국가 재정건전성을 언급하며 문재인 정부를 탓하기도 했다.
"건국 이후 70년, 문재인 정권 전까지 쌓인 국가채무가 660조 원 규모였습니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 들어 겨우 5년 동안에 국가채무가 무려 400조 원 늘어버렸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무책임한 정권이 어디 있습니까? 우리 청년들이 훗날 빚 갚느라 허덕일 게 뻔한데도 그건 내 퇴임 후의 일이니까 내가 알 바 아니다, 일단은 무조건 빌려 쓰고 보자 그러면 안 되죠. 그러면 책임 있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국민의힘과 윤석열 정부의 선택은 완전히 다릅니다. 13년 만에 예산 긴축에 나섰습니다. 정말 어렵고 용기 있는 결정적 변화라고 말씀드립니다.
(중략)
재정준칙을 도입해야 합니다. 아, 이거 문재인 정부 때 하자 그랬잖습니까. 우리 국민의힘 윤석열 정부는 이제 재정준칙을 도입할 것입니다. 전쟁, 대규모 재해, 경기 침체 등 경우 외에는 관리재정수지 적자 폭을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겠습니다.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0%를 넘는 경우에는 적자 비율을 2% 이내로 축소하겠습니다."
이에 민주당 의원들은 "코로나가 있었지 않으냐", "선동하지 말라"고 꼬집었다.
강성희 진보당 의원 "사람 죽여 놓고"
김 대표는 이날 연설에서 노동개혁, 법치 회복을 강조하며 노동조합의 불법파업 근절을 여러 차례 주장했다. 이에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강하게 항의하기도 했다.
김 대표는 "거대 노조의 정치 투쟁과 불법 파업의 결과는 무엇이었나? 좋은 기업은 해외로 떠났고, 글로벌 기업은 한국을 기피했다. 그래서 일자리가 없어졌다"며 "결국 힘없는 진짜 노동자와 국민만 손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이어 "윤석열 정부 들어 '건폭'(건설노조 폭력배)이 멈췄다. 건설 현장 숨통이 트이고 공사판이 움직인다. 민생 경제 핏줄이 다시 돈다는 이야기 아니겠나"라며 "노조비가 어떻게 쓰이는지도 모르는 깜깜이 노조, 고용 세습으로 청년의 기회를 차단하는 특권 대물림 노조도 이제는 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강 의원은 "건폭이 뭔가, 사람 죽여 놓고 건폭 얘기할 자격이 있느냐"고 반발했다.
김 대표는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을 제안하기도 했다. 그는 "이재명 대표의 어제 불체포 특권 포기하겠다는 말씀, 만시지탄이나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라면서도 "이재명 대표는 국민들 앞에서 불체포 특권 포기하겠다고 대선 때, 지방선거 때도 약속했지만 손바닥 뒤집듯 그 약속을 어겼다. 국민을 속인 것"이라고 저격했다.
이어 "국민에게 정중한 사과부터 하는 것이 도리다. 구체적 실천 방안을 제시하라"며 "국회가 드디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할 때가 왔다. 우리 모두 불체포 특권 포기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제안한다"라고 덧붙였다.
[전문] 김기현 "이재명의 장황한 궤변, 동의하기 어렵다"(https://omn.kr/24fx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