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일 뉴스마다 폭염이라고 떠든다. 한여름에 우리나라보다 더 덥다는 베트남 하노이를 지난주 다녀왔다. 2박 4일의 짧은 일정이었다. 김해 공항에서 베트남 항공을 타고 하노이 노이바이 국제공항에 오후 1시쯤 내렸다. 1층에서 밖으로 나가자마자 훅 들어오는 열기에 숨이 턱 막혔고 '이게 그 유명한 베트남 여름이구나'를 느끼면서 공항을 빠져나왔다. 대여한 승용차의 에어컨이 반가울 줄은 미처 몰랐다.
노이바이 공항에서 하노이 시내까지는 차로 한 30분 정도. 넓은 들판과 야자나무 등 차장 밖에 보이는 이국적인 풍경은 베트남 첫 여행자에게는 한여름의 무더위보다는 이국에 왔다는 설렘이 앞섰다.
렌트 차량이 베트남 시가지에 접어들자 오토바이 행렬이 보이기 시작한다. 차량과 부딪힐까 염려할 정도로 바싹 붙어서 오토바이를 운행한다. 오토바이 한 대에 2명이나 심지어 중간에 아이까지 앉히고 3명이 타고 있다. 깜짝 놀라며 신음이 저절로 나온다. 승용차는 베트남인 운전기사가 몰았다. 운전기사는 오토바이가 옆에 붙어도 아무렇지 않다. 앞과 옆을 보고 도로 위를 달린다. 차와 오토바이의 접근 여부를 살피면서 이리저리 잘도 빠져나간다.
우리 차량이 교차로에서 좌회전한다. 분명 직진 파란 신호인데도 운전기사는 좌회전을 시도한다. 반대편 차로에서 승용차와 트럭, 오토바이가 물 밀릴 듯이 다가오는데도 유유히 좌회전한다. 우리 차가 좌회전에 들어가니까 앞에 오던 차와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고 천천히 운행하고 심지어 우리 차 옆으로 빠져나간다.
하노이 시내를 돌면서 여러 차례 좌회전했다. 그때마다 파란 직진 신호인데도 좌회전을 시도했고 좌회전은 아무 사고 없이 성공했다. 아니, 우리뿐만 아니라 하노이 모든 차량이 직진 신호에 좌회전한다.
베트남 하노이의 시가지 교통신호등에는 직진 파란불과 정지 빨간불 두 가지밖에 없다. 여러 차례 좌회전하고 난 뒤에야 하노이 교통신호등을 유심히 볼 수 있었다. 신호등의 색깔은 직진과 정지 두 가지뿐이었다. 하노이 시가지 모두를 돌아보지 않았지만 다녀본 교차로 대부분 직진과 정지 두 가지뿐이다.
"우리는 알아서 좌회전을 해요!"
여기는 왜 좌회전 신호가 없느냐에 대한 베트남 운전기사의 답변이다. 하노이 교통신호등에는 좌회전이 없단다. 하지만 베트남인들은 차량이나 오토바이 모두 좌회전을 잘한다. 또 신호를 위반하면서 좌회전을 해도 모두 아무렇지 않다. 직진 때 좌회전하는 게 오랫동안 관습으로 익은 듯 보인다.
하노이 신호등 체계에서 한국과 다른 것 가운데 하나가 직진 파란불과 정지 빨간불일 때의 시간 표시다. 30초짜리, 50초짜리 등이 있었다. 파란불에서 빨간불로, 빨간불에서 파란불로 바뀌기 10초 전부터는 시간 표시가 깜빡인다. 곧 신호가 바뀐다는 사실을 운전자에게 알려준다.
베트남 운전자는 시간 표시가 깜빡일 때는 교차로에 들어서지 않는다. 정지선 부근에 멈춘다. 승용차, 택시, 트럭은 물론 오토바이까지 모두 멈춘다. 교차로에 차량을 정지하면 차량보다 오토바이가 더 많다. 어떻게 서로 안 부딪히고 저렇게 잘 운행할 수 있을까, 할 정도다. 오토바이는 남자, 여자 모두 잘 탄다. 마치 곡예를 하듯 차량 사이를 빠져나가고 좌회전을 하고 유턴도 자유롭게 한다.
베트남에서는 차와 오토바이가 도로에서 공존한다. 하노이 출장 여행 4일간 교통사고를 한 건도 보지 못했다. 그 많은 오토바이와 차량이 도로를 누벼도 운전자끼리 욕설을 하거나 싸우는 것도 보지 못했다. 다들 그러려니 하는 마음으로 운전을 하는 것 같았다.
베트남 시가지 도로에는 직진, 멈춤 신호와 함께 일방통행 도로와 서행 운전이 있었다. 대부분 차량이 20~30km로 운행했고 40km를 넘기지 않았다. 오토바이도 마찬가지였다. 천천히 운행하기에, 좁은 도로에서도 차와 오토바이의 공존이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그리고 일방통행 도로가 많아 직진과 좌회전으로 목적지를 찾아야 해 한 골목을 잘못 들어서면 다시 돌아야 하는 경우도 허다했다.
교차로에서 차나 오토바이가 들어오면 반대편 직진 차량이나 오토바이는 멈추거나 더 천천히 운행하면서 좌회전 차량이 빠져나가도록 돕는다. 서로 양보하는 마음으로 차량을 운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차와 오토바이가 많아서 양보하지 않으면 사고로 이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외국인의 눈으로 보는 베트남의 차와 오토바이의 공존 운행이 신기하기만 하다.
우리나라에서도 시가지 도로를 40km로 제한하고, 학교 앞은 30km로 서행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차량이 이 속도를 넘어 운행하는 게 사실이다. 우리 도로에서는 차량 운전자는 오토바이를 겁내고 오토바이 운전자도 차량을 겁낸다. 잠시 한눈 팔면 '훅' 들어와서 부딪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도 시가지 차량 제한 속도를 준수하는 것은 물론 시간 표시가 있는 교통신호등이 전국적으로 도입됐으면 한다. 우리는 신호등의 노란 불빛을 멈춤으로 보지 않고 빨리 지나가야 하는 신호로 보는 경향이 많다. 이런 인식도 하루빨리 고쳐야 시가지 교통사고를 줄일 수 있다. 베트남 도로에는 좌회전 신호가 없어도 모든 차량이 좌회전을 잘한다. 사고도 없다. 베트남인의 교통 의식이 부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