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집에 싱크홀 하나가 생겼다. 뭐 대단한 건 아니고 월급이 들어 온 지 3일 만에 계좌에 구멍이 생긴 일인데... 흠, 글을 쓰다 보니 이거 제법 심각해진다.
지출을 분석해 보았지만 불필요한 지출을 그리 많지 않았다. 공과금, 보험료, 통신비 등 고정 지출을 제하고 나면 대부분 식료품 구입을 위한 지출이었다. 거기에 아이들의 성장에 따라 함께 자라주지 않는 옷 구매 비용과 어른들의 노화에 따라 늘어나는 병원비. 계획한 지출은 아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한 큰 지출도 아니기에 이제껏 큰 문제가 없었던 것들이었다.
먹을 거 안 먹고 입을 거 안 입으며 돈을 모으지는 않았지만, 어찌저찌하여 수입과 지출이 균형을 이루고 있었는데 단번에 무너진 밸런스에 멘탈도 조금 무너져 버렸다.
별다른 거금이 쓰인 일이 없었기에 놀라움이 제법 컸다. 그리고 놀라움이 충격의 범주에 들게 된 것은 얼마 전 정산 받은 원고료가 입금되었는데도 구멍이 났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원고료로 맛난 거 사먹으려는 설렘이 실망감으로 바뀌어서인지도 모르겠다.
티끌 모아 동산이 된 지출
지출 내역을 조금 더 들여다보니 아이들 군것질거리를 구매한 흔적과 외식 비용이 보였다. 이 영향인가 싶었지만 금액을 보니 조족지혈. 아무리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이 정도로 타격을 받았을까 싶었다만... 설마가 멱살을 잡고 나를 흔들었다. 웬걸... 합산액이 예상을 훨씬 뛰어 넘었다.
간혹 외식을 하긴 했지만 잦지 않은 터라 그리 큰 지출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그렇게 쌓아 올린 빚이 월급을 순식간에 썰물 빠지듯 빠져나가게 했다. 외식 비용이 조금씩 오르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 나의 불찰이었다.
저축은 아무리 해도 티끌 모아 티끌인 것만 같더니, 지출은 티끌이 모이니 금방 동산이 됐다. 이래서 지출을 통제하지 못하면 저축이 성립되지 않는다고 했구나. 오래전의 명언이 이제야 와 닿는다.
보통 직장인의 월급 통장은 조수 간만의 차가 거의 없다. 밀물 후 바로 썰물. 들어오자마자 바로 나가니 직장인의 통장은 거의 만년 갯벌이라고 봐도 무관했다. 이제 다음 월급날까지 어떻게 버티지? 급하게 멍해진 정신을 차리고 현실을 직시했다.
아이가 넷이다. 모든 것이 6인분이라고 보면 된다. 그러면 곱하기 6. 물건을 살 때 항상 사용하게 되는 계산식이다. 이제 어른 만큼 먹는 아이들 덕에 식비는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마음을 다잡고 대비하곤 있었지만 역시나 임팩트가 남달랐다.
아이들이 아기자기했을 땐 배고프다는 말이 더 성장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어느 정도 자란 지금은? 배고프다는 아이들의 말은 가계 경제를 거덜 내겠다는 위협... 까지는 아니고 흠칫하는 정도의 경계감을 갖게 한다. 왜냐하면... 조금 전에 밥을 먹었기에.
엥겔지수로 따지자면 갈수록 궁핍해져가고 있다. 과일을 깎으면 껍질만 한 보따리 나오고, 과자 봉지는 뜯자마자 접히며, 그럼에도 후식을 끊임없이 제공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자연스레 부족함을 느끼게 된다.
일전에 그 궁핍의 대가가 행복이라고 단언했지만 요즘은 이런 식으로 얼마나 행복을 더 지속할 수 있을지 제법 걱정되기도 한다. 월급만 빼고 다 오르는 고물가 상황에서 자연스레 고개를 들고 마는 이 걱정은 가장의 숙명인 듯하다.
요즘 들어 '차 조심하고 물가 조심하라'고 하셨던 어머니의 걱정 어린 말씀이 자꾸 떠오른다. 어머니의 선견지명이 또다시 명중했다. 어머니! 이제부터 차, 물가, 물가(物價). 다 조심하도록 하겠습니다.
다둥이 가족의 대응 전략
물가가 미쳐 날뛰고 있다고 해서 같이 정신 놓고 날뛸 수는 없다. 아내와 여러 가지 방안을 강구했다.
우선 지역 화폐를 샀다. 10% 할인율을 적용해 구매할 수 있는 지역 화폐는 가계 경제에 제법 큰 보탬이 됐다. 이건 연말 정산 때도 별도로 공제를 받을 수 있기에 꼭 챙겨야 했다. 소득공제 40%는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못난이 채소 구매. 반찬 하나가 며칠을 가지 않으니 매번 식재료를 구매하게 되는데 못난이 채소를 구매하면서 좋은 식재료를 조금 싸게 확보할 수 있었다. 게다가 판로가 막힌 상품이나 외관이 조금 상한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라 좋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도 든다. 게다가 랜덤 상품이 포함되기에 뜻하지 않게 괜찮은 채소와 과일을 얻을 수 있어 좋았다.
두 번째로는 식단표 작성. 식료품 소비에 있어 이게 확실히 도움이 된다. 그런데 이게... 상당히 어렵다. 일하는 시간이 고정된 회사 식당이 아니기에 식단표를 작성해 두어도 지켜지지 않을 때가 많다. 전날 먹었던 반찬이 많이 남아 있을 수도 있고 계획에 없던 모임이 생겨 식재료가 남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제대로만 하면 식재료를 알뜰하게 사용하고 불필요한 식재료를 사는 일을 줄일 수 있어, 반만 계획대로 소비해도 효과를 볼 수 있는 방법이다. 이 방법을 잘 썼을 때 대략 20%의 식료품비를 줄인 경험이 있다.
세 번째로는 매일 일정 금액 저축. 이는 무작정 외식을 한다거나, 기분 좋게 나들이를 나가서 기분에 따라 과소비하게 되는 일을 방지해준다. 전문가들은 목적에 맞게 통장을 구분하는 통장 쪼개기라고 하는데, 이게 제법 유용하다.
매일 만 원이나 5000원씩, 쌓인 금액 내에서 지출을 계획하게 되고 목적을 가진 돈을 따로 빼둠으로써 추후에 무리해서 지출하고 후회하는 일도 줄여준다. 목적이 있는 만큼 그를 위해 다른 불필요한 지출을 줄이는 데도 큰 도움이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혜택 찾아보기. 아이가 넷이라고 하면 다들 나라에서 상을 줘야 한다고 하는데, 실상은 경제적으로 벌을 받는 느낌이 강했다. 그런데 찾아보니 몰라서 챙기지 못했던 혜택이 제법 많았다. 다둥이 카드 발급으로 관광지 입장권 할인 또는 무료, 주차비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고 초등학생 대상으로 지역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수업 우선 배정 및 지원 등도 받을 수 있었다. 지식이 돈이 된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지혜가 필요한 시기다. 언제나 지혜가 필요했지만 이제 지혜로운 행동이 절실해졌다. 작은 실천을 모아 싱크홀도 메우고 물가 조심도 해보려 한다.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현실에 맞춰 즐기고 만족하는 자세도 갖춰보면 어떨까 싶다.
그러니까 우선은 판촉에 이끌려 산, 먹지 않아도 딱히 문제 되지 않는, 할인한다고 해서 사온 멜론을 최대한 맛나게 먹어 볼 요량이다. 최대한 아주 행복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