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때문에 쿠알라룸푸르에 머물고 있는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출장 기간이 길어지면서 챙겨갔던 욕실용품이나 기타 소비재들이 떨어져 난감하다는 시시껄렁한 대화를 나눴다. 그 후 시간이 되면 한 번쯤 방문해도 좋지 않겠냐는 요청도 아니고 권유도 아닌 애매한 말이 이어졌다.
"싫어. 거기 이슬람 국가잖아. 술도 못 마시는 나라에 가서 내가 뭐 하고 놀아?"
애매한 문장 아래 깔린 '생필품 공수'나 '퀵 배송' 요청 같은 숨은 의도를 단박에 알아챈 내가 차갑게 말하자 지인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여기 술 있어. 좀 비싸서 그렇지."
예상치 못한 답변이라 조금 놀라기 했지만 아직 기회는 있다. 대화의 주도권을 찾는 일이 급했다.
"거기도 한국 마켓 있을 거 아니야? 필요한 것은 거기서 사라고. 아닌가? 한국 담배가 떨어졌어? 그게 필요해?"
"여기 담배 가지고 들어오면 벌금 물어."
의문의 2패에 당황한 나는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야구 천재 이정후의 타율도 4할이 안 된다. 내가 한 번만 이긴다면 대충 3할은 맞출 수 있다. 하지만 머릿속을 아무리 휘저어도 '말레이시아'나 '쿠알라룸푸르'에 대해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그러다 문득 지인이 술을 마시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났다. 그럼, 그렇지. 본인이 술을 마시지 않으니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이다.
"그런데 쿠알라룸푸르에서 술을 판다고? 호텔에서만 그런 거 아니고? 내가 예전에 발리 갔을 때 보니까 밖에서는 술 안 팔던데?"
지인이 한숨을 쉬며 대답했다.
"너 바보지? 발리는 인도네시아야."
그렇다. 나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도 제대로 구분하지 못한 채 '아시아 대륙'에 살고 있었다. 이래서는 곤란하다. 나의 무지에서 비롯된 패배를 깨끗하게 인정하고 쿠알라룸푸르행 비행기에 올랐다. 아주 짧은 여행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클랑강(Kelang River)과 곰박강(Gombak River) 주변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인 '쿠알라룸푸르'는 '진흙강의 합류지'라는 뜻을 담고 있다. 19세기 주석 광산업자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되기 시작한 이곳은 말레이시아가 영국에서 독립한 1957년부터 수도의 기능을 맡았다.
13개 주의 연방 국가 성격이 강한 말레이시아는 1974년 쿠알라룸푸르를 슬랑오르주로부터 분리해 독립된 행정권역으로 지정했다. 이후 도시는 급속하게 팽창했고 1999년 비대해진 기능을 분산시키기 위해 쿠알라룸푸르 남쪽 36Km 떨어진 곳에 '푸트라자야'라는 새로운 행정 도시가 건설됐다.
말레이시아는 포르투갈과 네덜란드, 영국과 일본, 그리고 다시 영국의 식민지가 된 역사가 있다. 하지만 투쟁이나 전쟁 대신 협상을 통해 독립을 얻어낸 때문인지 영국에 대한 생각은 상당히 우호적이다.
1957년 8월 31일 독립국이 됐지만 아직도 옛 영국 식민지 출신 국가들 위주로 결성된 국제기구인 '영연방'의 일원이다. 1998년에는 쿠알라룸푸르에서 '연방 경기 대회(Common wealth Games)'를 개최하기도 했다. '식민지'라고 하면 일제 강점기가 먼저 떠오르는 우리에게는 낯선 풍경이다.
영국처럼 말레이시아에도 '왕'이 존재한다. 하지만 영국의 왕들이 모두 '윈저 가문'의 후손들인데 반해 말레이시아의 왕은 5년 임기로 선출된다. 말레이시아를 이루고 있는 13개 주 가운데 9개 주에는 왕(술탄)이 있다(각각의 왕은 세습된다).
13개 주(9개 주의 술탄과 4개 주의 주지사) 대표들은 5년마다 9명의 왕 중 하나를 '말레이시아 국왕'(Yang di-Pertuan Agong )으로 선출한다. 비밀 선거에 의해 선출된다고는 하지만 9개 주의 술탄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연방의 국왕으로 재임하는 것이 관례라고 한다.
간단하게 계산해 보면 선왕에게 일찍 왕위를 물려받은 후 45년 동안 살아있기만 하면 두 번의 국왕도 가능한 것이다. 중요한 조건이 하나 더 있다. 국왕은 말레이인만 될 수 있다. 공식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아마 왕비도 말레이인만 가능할 것 같다. 이런 일도 있었기 때문이다.
2016년 말레이시아 국왕이 된 무하맛 5세는 2018년 러시아 출신의 옥사나 보예보디나라는 여성과 비밀 결혼을 한다. 외국인 왕비를 용납할 수 없었던 8개 주의 군주들이 긴급회의를 소집해 국왕에게 퇴위를 요구했다. 정확한 이유는 비공개되었지만 어떤 이야기가 오갔을지는 짐작이 된다. 무하맛 5세가 무슨 심정으로 결과를 받아들였는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이야기는 아름답게 마무리 되는 듯했다. 퇴위 이후 '사랑을 위해 왕위를 버렸다'든가, '세기의 로맨스' 같은 기사가 쏟아졌다. 그러나 2019년 아이가 태어난 후 무하맛 5세는 일방적으로 이혼을 공표해 버린다. 뜨거운 사랑이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속력은 좀 약했던 모양이다.
현재 말레이시아 연방국왕은 2019년 1월에 등극한 압둘라 국왕(Abdullah Sultan Ahmad Shah)으로 파낭(Pahang) 주의 술탄 출신이다. 국왕은 현실 정치와 거리를 둔다고 알려져 있었지만, 2020년 기존 총리의 사직서를 수리하고 새 총리를 지명하면서 정치 전면에 등장했다. 영국 왕이 마음대로 영국 총리를 지명한 것과 같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자세한 속사정은 모르겠지만 역동적이라면 역동적인 말레이시아 정치의 현주소다.
6시간이 조금 넘는 비행시간 동안 말레이시아에 대해 알아낸 것은 대충 이 정도였다. 지인에게 공수해 온 물건을 전달하고 호텔로 가는 택시에 올랐다.
운전석이 우리와 달리 오른쪽이다. 한국인인 내가 말레이시아에서 운전하려면 신경을 곤두세워야 할 것 같다. 길 건널 때도 조심해야 한다. 차는 익숙하지 않은 방향에서 달려올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에는 아직도 내가 알지 못하는 백만 서른 가지 정도의 이야기가 있을 것이다. 밤은 깊었고 나는 피곤했다. 걱정할 것이 있다면 내일 하면 된다. 축 처진 나를 싣고 쿠알라룸푸르까지 이어진 긴 길을 택시는 날아갈 듯 달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안의 브런치(https://brunch.co.kr/@zian/329)에서도 읽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