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누구도 경제성장이라는 성역에 도전할 엄두를 내지 못했던 1972년. 로마클럽은 "급속한 산업화 때문에 환경이 감당해야 할 명백한 피해에 경악, 고
삐 풀린 경제성장이 던지는 장기적 함의"를 알아보려고 일군의 MIT대학 교수들에게 조사 연구를 요청했다.
데니스 메도즈(Dennis Lynn Meadows)가 이끄는 연구팀은 당시 MIT에 설치된 환상적인 새 메인프레임 컴퓨터를 활용하여 '월드3(World3)'라는 모델을 구축하고, 경제규모와 인구확대, 자원사용, 환경 등 다양한 시나리오에 따른 충격을 시뮬레이션했다. 그리고 그 결과를 <성장의 한계>라는 한 권의 책으로 세상에 내놓는다.
1972년 <성장의 한계>가 출판되자마자 세상은 충격에 빠졌다. 당시 주류경제학계의 핵심 인물들인 로버트 솔로(Rober Solow)는 "나쁜 과학이고 따라서 공공정책에 나쁜 지침을 줄 것"이라고 비난하는가 하면, 베커먼(Wilfred Beckerman) 같은 이는 "아무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넌센스"라고 무시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성장의 한계>가 던진 화두는 전 세계로 더 넓고 깊게 퍼져나갔고, 오늘날에는 그 놀라운 예측과 통찰이 거듭 재평가를 받고 있는 중이다.
바로 그 로마클럽이, <성장의 한계> 첫 출판 50년 만에 또 한 권의 보고서로 인류에게 전할 메시지를 들고 나타났다. 어두운 미래의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서라기 보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모두를 위한 지구>(Earth For All)가 그것이다. 출판사 '착한책가게'가 순발력 있게 번역하여 독자들에게 내놓았다.
지금부터가 '결정적 10년'
당시 나온 책 <성장의 한계>는, 생태적 한계를 무시한 무분별한 성장주의에 경고를 하면서 "일부러 브레이크를 밟아서 자동차를 멈추게 할지 아니면 자동차가 사고로 벽에 부딪쳐서 멈출 수밖에 없을지" 선택해야 한다고 압박했다. 물론 이번 책에서도 이들은 인류가 "빙산과 충돌하기 60초 전의 타이타닉호" 신세라는 경고를 잊지 않았다.
특히 지금까지 관행적으로 하던 대로 하는 경우(책에서는 이를 '부족한 노력, 놓친 시기: Too Little, Too Late' 시나리오라고 표현했다), "고의적인 불평등이 계속해서 커질 뿐만 아니라 저소득 국가의 경제발전이 둔화되어 빈곤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 안의 불평등이 지속된 결과 21세기 중반이 되도록 사회적 긴장이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우울하게 전망했다. 생태계 붕괴나 기후붕괴에 앞서 사회적 긴장도가 높아지면 사회붕괴가 일어날 가능성을 예상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의 핵심은 비관적인 미래 전망이 절대 아니다. '거대한 도약(Giant Leap)'이라고 이름 붙인 이 책이 제시한 또 하나의 시나리오는, 인류가 어떤 결단을 하는가에 따라서 아직 미래와 희망이 남아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 결단은 2차 대전 직후 유럽을 재건한 마셜플랜(미국이 전후 서유럽국들에 행한 대외원조 계획)보다 크고, 1960년대 미국의 달착륙 프로젝트보다 거대할 정도다. 역사상 가장 빠른 속도로 이뤄내야 할 경제전환, 사회전환이 책의 핵심이다.
책에 따르면 이 시나리오는 지금부터 '결정적 10년' 동안, "지엽적인 문제를 땜질하는 방식이 아니라 경제, 에너지 시스템, 식량 시스템을 근본적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도전이다. 이 책은 5가지 특별한 전환을 제시하는데, ▲ 빈곤 종식 ▲ 심한 불평등 해결 ▲ 여성에 대한 권한 부여 ▲ 인간과 생태계를 위해 건강한 식량 시스템 조성 ▲ 청정에너지로 전환이 바로 그것이다.
시장의 힘만으로는 되지 않는 일
책을 읽어나가다보면 로마클럽이 시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막대한 고민과 준비를 했다는 흔적이 곳곳에서 확실히 느껴진다. 로마클럽은 2020년 '모두를 위한 지구 이니셔티브'를 구성해 본격적인 기획에 들어간다. 우선 <성장의 한계>에서 위력을 발휘했던 기존의 월드3(W3)모델을 기반으로 이를 발전시킨 새로운 '어스4올(Earth4All)'이라는 시스템 역학모델을 도입한 후, 1980~2020년까지의 최신 데이터를 토대로 2100년까지 시나리오를 구축했다.
특히 이번에는 40여 명 가량의 다양한 전문가들로 '전환경제위원회'를 조직한 후 이들로부터 가능한 모든 '대안'들을 수렴하려고 노력했음이 돋보인다. 팀 잭슨(Tim Jackson), 케이트 레이워스(Kate Raworth) 등 상당수의 생태경제학자와 비주류경제학자, 제3세계 학자 등의 참여로 기존 경제학의 관성으로부터 많이 탈피했다는 흔적이 대안정책들 곳곳에서 발견되는 걸, 책을 읽는 내내 확인할 수 있다.
저소득 국가의 부채탕감, 전지구적 차원에서 법인세 증세, 적자재정의 운영, 중앙은행과 개발은행의 창조적 활용, 녹색기술과 보건의료 기술에 대해서는 무역관련 지적재산권에 관한 협
정을 면제, 전지구적 그린뉴딜에 대한 협력, 젠더 평등의 강력한 옹호 등 기존 주류학계에서는 잘 등장하지 않는 대안들이 그 사례들의 일부다.
또한 매우 분명한 어조로 "시장을 통한 해결책만으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 책의 논조는, 확실히 이전의 많은 주류 기후정책이나 생태정책과는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지속가능한 에너지 안보와 식량안보를 확보하는데 필요한 투자는 전 세계 연소득의 2~4퍼센트 수준"인데, "시장원리에만 맡겨서는 이러한 투자가 진행될 가능성이 매우 낮기" 때문에 전환을 위해서는 "시장방식과 장기적인 사고방식 모두를 재구성"하자고 촉구한다.
기후경제학이나 생태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절대로 과격한 주장들이 아니다. 오히려 상당히 온건한 주장들을 담고 있다. 또한 강력하게 탈성장을 주장하거나 포스트 성장을 명시적으로 국가정책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대신에 도넛경제 주창자인 케이트 레이워스 방식으로 "대체로 성장에 대해 불가지론적 태도를 가져야 한다. 문제는 성장 자체가 아니라 성장하는 것이 무엇인지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기후위기 대처 위해 타협할 수 없는 것
이 책이 다른 기후대안들을 다룬 책과 달리 가장 인상적인 지점이 있다면, 분배정책과 젠더정책을 전면에 내세운 것이 아닐까? 책은 "소득 재분배는 타협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면서 두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첫째로 최고소득 제한을 강력히 주장하는데 그 방안은 경제학자 호세 가브리엘 팔마(Jose Gabriel Palma)가 제안한 팔마 비율이다. 이는 상위 10% 부자 '한 사람'이 버는 소득이 하위 40%에 속한 서민들 '네 사람'이 버는 소득을 넘지 않으면 감내할 만한 불평등이 될 것이라는 제안으로, 대체로 북유럽 복지국가들의 팔마 비율이 1이고 미국은 3이다.
또한 공유자원에 대한 사용료를 징수하여 기본소득(책 용어로는 보편적 기본 배당금)을 주어서 전환이 일어나는 동안 사회의 모든 구성원을 보호하자고 제안한다. 특히 공유자원 사용료와 관련해서 "민간부문은 사회의 모든 구성원이 관리해야 할
것으로 여겨지는 자원을 추출하고 사용할 때에는 그 사용료를 지불해야 한다. 여기에는 화석연료, 토지, 담수, 대양, 광물, 대기, 심지어 데이터와 지식도 포함된다".
이 기후와 생태에 관한 이 책이 이토록 강력하게 분배를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지속가능성의 필수 전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만약 각국이 부를 분배하기 위한 일련의 정책을 시행하고 더 나은 평등을 위해 노력한다면, '거대한 도약'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것과 같이 지속가능성을 향한 모든 전환에 요구되는 사회적 신뢰를 구축할 심리적 환경이 조성된다는 것이다".
이 책은 기후와 분배의 영향력을 가늠해보기 위해 특별히 '사회적 긴장지수'를 도입하자고 제안한다. 기후재난이 심각해지면 불평등한 사회는 어떻게 더 사회적 긴장과 갈등이 높아질 수 있는지, 기후붕괴 이전에 사회붕괴가 초래될 가능성이 없는지 등등을 추적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제공한다.
최근까지 기후대응에 관한 책들이 더 다양하게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대체로 자연과학 분야만 다루거나 또는 사회과학에 치중했다고 본다. 기후위기 원인을 파고들거나, 사회경제 대책에 집중했다. 환경정책만 다루거나 불평등만 다루었다. 또는 문제제기에 그치고 대안을 흐려버렸다.
신간 <모두를 위한 지구>는 다르다. 기후위기의 현실적 종합판이자, 위기를 막을 경제사회 정책의 종합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