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체조·발레·곡예가 조화를 이뤄 종합스포츠라 불리는 '치어리딩(CheerLeading)'. 경쾌한 음악에 맞춰 커다란 몸짓으로 춤을 추는가 하면 어느 순간 유연한 동작으로 텀블링하고, 우아한 자태로 공중부양을 한다. 동료들의 등에 올라타 피라미드를 만들거나, 어깨 위로 올린 팀원들의 손 위에 두 발 혹은 한 발로 선 장면은 아슬아슬하다.
충남 예산군 소재 예화여자고등학교 1학년 김태림(16, 서울시 '블랙이글스' 소속) 선수가 요즘 주말을 반납하면서까지 열정을 쏟는 스포츠다. 해당 지역 출신으로는 처음으로 장진우 감독 눈에 띄어 지난 1월 '국가대표'로 발탁됐다.
얼마 전 4월에는 한국을 대표해 미국 플로리다주 올랜도에서 열린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아쉽게도 입상은 못했지만, 스턴트종목에서 레벨6 기술로 쟁쟁한 실력을 갖춘 세계적인 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게 소중한 경험이 됐다. 무엇보다 "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치른 경기"라서 자부심을 느꼈다며 "가장 기억에 남는 대회가 될 것 같다"는 출전소감을 전했다.
한 달 후인 5월에는 하와이 'Global DANCE & CHEER GAME' 초청경기도 다녀왔다. 여기서는 레벨4 기술로 1위를 차지하는 등 향상된 실력을 보여줬다.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낯선 치어리딩과 어떻게 인연을 맺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운명처럼 오성이 예산군치어리딩협회 회장을 만나 삶의 목표를 바꾸게 됐다.
"치어리딩이라는 스포츠가 있는지도 몰랐다. 회장님의 설명을 듣고 유튜브, 인스타에 올라와 있는 경기영상을 보는데,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감동이었다. 그때부터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고 회상했다.
오 회장은 "태림이가 '티나'팀 소속으로 치어리딩을 시작하면서부터 발군의 실력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한 댄스대회 초청공연에서도 다른 종목 심사위원들에게까지 눈에 띄는 아이였다"고 기억했다.
스포츠선수들의 실력을 좌우하는 요소는 타고난 재능도 있겠지만, 자신과의 싸움을 이겨내는 훈련을 꼽을 수 있다.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한다면 '승부욕'일 것이다. 태림씨는 초등학생 때 언니와 함께 나간 국악경연대회에서 언니만 상을 타자 국악에 흥미를 잃을 정도로 어려서부터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성격"이었다고 한다. 그즈음 알게 된 새로운 세계가 '치어리딩'이었다. 오 회장은 "국가대표선수 훈련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닌데, 태림이가 견딜 수 있게 한 힘도 이기고야 말겠다는 승부욕"이라고 거들었다.
매주 주말이면 소속팀 훈련장소인 마포구민체육센터를 향한다. 방학 때는 아예 서울에서 지낸다. 치어리딩 선수로 지내면서 힘든 점에 대해 묻자 "운동선수는 다 비슷할 것 같다. 따로 주어진 개인시간이 없다"는 답이 돌아왔지만 내심 싫지 않은 표정이다.
치어리딩 선수들은 수많은 관중들 앞에서 활발한 몸동작으로 머릿속에 있던 생각을 표현해내야 한다. 태림씨도 부단한 훈련과 경기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사람들, 그리고 주어진 상황에 확실히 더 예민해진 것 같다. 치어리딩 훈련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팀원들과 호흡이 안 맞을 경우 자칫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동료들의 움직임과 표정을 잘 살피고, 내가 역할을 제때 정확히 해야 한다. 훈련 덕분인지 몰라도 지금은 스스로보다 옆에 있는 친구들의 상황을 더 살피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친구 고효원 학생이 인터뷰 자리를 함께 해 조용히 곁을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태림이는 도덕적인 예의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불의를 보면 화낼 줄 아는 친구다. 다른 친구들을 챙겨주는 섬세함도 있다"며 "치어리딩이 태림이에게 좋은 영향을 줘 자신이 갖고 있던 좋은 모습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데 도움을 준 것 같다"고 응원했다.
세계치어리딩연맹(ICU) 주최, 대한치어리딩협회(KCA)가 주관하는 'ICU 월드컵 치어리딩 서울 2023'이 오는 10월 6~8일 열린다. 전 세계 30개 나라 3000여 명의 대표팀과 클럽팀이 출전한다. 치어리딩 역사 130년 동안 대한민국 서울에서 월드컵이 열리는 것은 처음이다.
2004년 미국 주도로 설립해 현재 119개 회원국이 가맹된 ICU는 국제올림위원회(IOC) 정회원 종목단체로, 치어리딩을 오는 2028년 미국 LA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다.
태림씨도 서울대회 준비를 위해 다시 신발 끈을 동여매 비지땀을 흘리며 몸을 만들고 있다. 5년 뒤 올림픽을 향한 시선도 또렷하다. 스스로 극복해야 할 고비와 참고 견뎌야 할 훈련과정들이 기다리고 있지만, 오 회장은 "지금 이대로만 하면 충분히 큰 선수가 될 수 있을 것 같다"며 무한한 성장 가능성을 기대했다.
"정말 좋다. 나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든다. 웃음이 끊이질 않는다. 삶의 활력소 역할을 해준다. 노력한 만큼 성과를 볼 수 있는 스포츠다." 태림씨에게 '치어리딩'이 갖는 의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남 예산군에서 발행되는 <무한정보>에서 취재한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