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과 신뢰.
2015년 문재인 당대표 재임 때 구성됐던 '김상곤 혁신위원회'에 당시 현역 의원 가운데 유일하게 참여했던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혁신위 성패 여부의 관건을 이렇게 말했다. 혁신위에 전권이 주어졌느냐보다, 혁신위와 지도부, 당내 구성원들이 혁신 과제를 어떻게 추진하고 안착시킬지에 대한 토론이 활발히 이뤄지는 게 중요하단 얘기였다.
우 의원은 "(전권을 받은) 혁신위가 (추진)하는 것이라고 (당이) 다 받은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의원정수 확대 요구는 거부당했고, 사무총장제·최고위원제 폐지도 거센 반발을 겨우 뚫었다고 했다. 또 "'김상곤 혁신위'가 바꾼 게 아니다. 혁신위가 내놓고 '최고위(문재인 지도부)'가 수용해서 바꾼 거다. 그 과정에서 많이 부닥쳤다. 굉장히 노력해서 (서로) 설득을 했다"고 강조했다.
'김은경 혁신위(아래 혁신위)' 역시 설득에 힘써야 한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혁신위에서 만드는 안이 조금 과도하더라도 총선을 위해서 의원들이 수용해야하는 안이라면 최고위를 설득하고 그 토론에서 이겨야 한다"며 "(김상곤 혁신위는) 몇 시간을 설득했다"고 말했다. 혁신위가 1호 혁신안으로 내놓은 '소속 의원 전원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및 체포동의안 가결 당론 채택'에 대해서도 "불가피한 고강도 처방"이지만 "혁신위가 책임감 있게 의원들의 불안이나 위기의식에 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 의원은 혁신위가 '설득의 시간'을 거쳐서 총선 공천 시스템과 당의 노선도 재정립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래야 윤석열 정부와 제대로 싸울 수 있다고 했다. 그 길이 당내 갈등 해법이자 민주당의 총선 승리 전략이라고도 했다.
자신이 이태원 참사 유족과 함께 행진하고, 이날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반대 단식에 들어간 이유 또한 '윤석열 정부와의 싸움'에 집중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친이재명계'인 그는 최근 '못다한 일을 하겠다'던 이낙연 전 대표에게도 그러한 '싸움'을 함께 하자고 말했다.
"국민 신뢰 잃어... 이재명 평가 아닌 민주당 평가"
- 지난 19일 이재명 대표가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했지만, 직후 여론조사를 보면 민주당 정당 지지도는 거의 그대로다.
"중간에 있는 사람들(중도/무당층)이 이재명 대표를 그만큼 신뢰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이 대표가 (추가) 체포동의안이 왔을 때 법원에 나가서 사람들이 '진짜 하네' 할 때 효과가 나타날 거다. 어쨌든 우리 당이 신뢰를 많이 잃어버렸다. 위기다. 원인은 두 가지 다 있다. 첫째, 검찰이 지독하게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 둘째, 그러면 딱 단결해서 싸워야 하는데 대선 패배 이후 우리가 분열해서 당내 권력을 갖고 다투니까 국민들 보기엔 못마땅하다.
외부 요인을 극복하려면 싸움을 제대로 해야 한다. 가령 (윤석열 정부가) 핵 폐기수 같은 일을 굴욕적으로 하는 태도를 국민들이 매우 지탄하는데, 민주당은 정말 사생결단으로, 진정성을 갖고 싸우지 않으면 안 된다. 제가 이번에 단식하는 이유다. 내부 문제는 혁신. 그래서 혁신위가 구성됐다. 다만 혁신위를 통해서 내부 논쟁을 하면서도 위기 극복을 위해 하나로 단결해야 한다. 또 외부에서 싸움을 세게 하는 게 내부(단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 최근 페이스북 글에선 2021년 전당대회 돈봉투 의혹, 김남국 의원의 가상자산(코인) 의혹과 관련해 '이재명 대표가 과단성을 보이지 못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우리 내부 갈등의 이유에는 당대표가 위기에 대응하는 태도의 문제도 있다. 돈봉투 사건은 국민들이 볼 때 굉장히 심각한 사건이다. 전당대회에 돈봉투가 왔다 갔다 했다는 건 당 전체가 신뢰를 잃어버릴 수 있는 사안이다. 송영길 대표의 기자회견을 기다릴 게 아니었다. 비상 의원총회를 소집해서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야 대응방안을 단일하게 만들어 갈 수 있었다. 그런데 하지 않았다. 김남국 의원 문제도 되게 복잡하지만 신속하게 대응하는 태도를 보여야 했다. 국민에게 제일 중요한 건 태도다."
- 당의 현 주소를 점검하기 위해서라도 '이재명 1년'을 평가해야 한다는 이들이 있다.
"평가하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개인에 맞출 것은 아니다. 이재명 개인 평가가 아니라 민주당 평가다. 민주당이 어떤 노선을 취했고, 외부 공격에 어떤 자세를 취했는지, 그 속에서 지도부가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이렇게 보면 이미 다 평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 민주당 노선은 어땠을까. 얼마 전 이태원 참사 유족이 단식에 들어가면서 '우리를 대신해 싸워야할 이들이 국회의원인데 무엇을 하고 있나'고 절규했다. 지난해 말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을 촉구하며 단식하는 노동자들도 '정치가 해결해줘야 한다'고 호소했다.
"매우 부족했다. 우리가 탄핵으로 정권을 받았는데 왜 실패했나? 너무 오만했다. 탄핵세력을 묶어서 민심이 요구한 개혁을 빠른 속도로 해야 했는데 '저쪽은 다 무너졌고 국민들이 우리를 많이 지지하니까 그것만 믿고 가도 된다' 이러다 보니까 1년 동안 정부 구성도 제대로 못하고, 개혁 하나 못하고... 남북관계에서 상당한 성과가 있었음에도 탄핵이 요구하는 수준의 개혁을 해내지 못하면서 우리를 지지했던 많은 세력이 떨어져 나갔다.
요즘 노동, 사회경제 분야에서 많은 요구가 온다. 다수당이니까. 그때 제일 부끄러운 것이 '지난 5년 동안 왜 못했지?'다. 우리가 다수인데 국회의원들이 정말 총력을 모아서 하는가. 아주 부족하다. 그런 점에서 노조법 2·3조로 단식한 분들이나 이태원 참사 가족들의 이야기는 민주당에 대한 비판이다. 정말 달게 들어야 한다."
김상곤 혁신위의 교훈
- 결국 민주당은 혁신을 요구받고 있다. 2015년 '김상곤 혁신위'에 참여했던 유일한 현역 의원으로서 2023년 '김은경 혁신위'는 그때와 무엇이 같고, 무엇이 다르다고 보는지 궁금하다.
"그때는 친문(문재인)/비문, 지금은 친명(이재명)/비명 계파 갈등이 극심하다는 게 공통점이다. 또 그때나 지금이나 총선을 앞두고 있는 상황인데, 굉장히 전망이 어둡다. 저쪽이 잘못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지지가 우리한테 오지 않고 있다. 결국 사람들이 민주당에 신뢰를 주지 않으면 어렵다. 투표하러 안 나온다. 지금이 그 상황이다. 우리한테 기회가 있었지만 5년 만에 뺏긴 무능한 세력, 다수 야당임에도 내부단결은 못하고 맨날 집안 싸움만 하는 세력을 누가 신뢰하겠나?
다른 점은, 그때와 달리 지금은 검찰이 아주 지독하게 (민주당을) 탄압하고 있다. 또 당의 도덕성이 굉장히 훼손됐다는 점에서 과제가 늘었다. 계파 갈등과 어두운 총선 전망을 극복하고, 국민들이 어떻게 다시 민주당을 신뢰하게 할지, 검찰의 탄압 속에서 도덕성 문제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혁신위의 중요한 과제다."
- 첫 혁신안으로 나온 '의원 전원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불가피한 고강도 처방. 검찰이 우리만 수사하고, 저기(여권)도 수사할 게 많은데 그냥 내버려두는 속에선 굉장히 억울하다. 구속될 만한 사유인가에 동의가 잘 안 되는 것도 있고, 감정을 자극하는 장관의 태도를 보면 '이건 탄압이다' 이렇게 봤는데 노웅래, 이재명, 윤관석, 이성만까지 오면서 우리한테 '방탄 정당' 이미지가 씌워진 것을 부인하긴 굉장히 어렵다. 정말 힘든 일이나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다만 불체포특권은 행정부의 부당한 권력행사를 막기 위한 국회의 헌법적 권한이다. 군사독재정권이 국회의원을 탄압한 시기에는 불체포특권이 역할을 했다. 그런데 지금은 '검사독재'라고 할 만큼... 노동자들의 분신이 언제 적 얘기인가? 경찰이 노동자를 때려서 피투성이로 만드는 것을 언제 봤는가? 또 야당만 집중적으로, 일방적으로 수사하고 야당 대표를 300회 넘게 압수수색했다. 혁신위는 지금의 민주주의 위기를 성찰하고, 균형과 견제라는 차원에서 어떻게 제도를 개선해 나갈지까지 고민해야 한다."
- 오늘(26일) 최고위가 '혁신위 제안을 존중한다'고 했지만, 의원들이 반발할 수 있다는 의미로 들린다(관련기사 : '불체포특권 포기' 혁신위 요구에 민주당 "존중한다" : https://omn.kr/24jm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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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위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한 의원들에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혁신위에 전권을 다 준다고 해도 결국 제도를 바꾸는 것은 최고위에서 결정한다. 혁신위는 최고위를 설득해야 한다. 김상곤 혁신위 할 때도 최고위랑 정말 밤늦게까지 토론했다. 김은경 혁신위도 최고위를 설득하고, 그 토론에서 이겨야 한다.
또 지금 같은 탄압 국면에서 불체포특권 포기가 굉장히 걱정스럽고, 그걸 포기하면 다 공격이 들어올 것 아니냐는 반론에 부닥칠 수 있다. 그러면 그 해소방안도 같이 고민해야 한다. 혁신위가 딴 나라 사람들이 아니고 같은 위기 의식 속에서 이 혁신안을 냈다는 것을 설명하면서 '어렵지만 통과시켜보자'고 한다든가, 보완방안을 내든가 하면서 책임감 있게 의원들의 불안이나 위기의식에 답해야 한다. 김상곤 혁신위는 우리끼리 작전 짜고 그랬다."
- 공천 규칙이 이미 확정됐지만, 혁신을 말하면서 공천 문제를 안 다룰 순 없다. 그래서 '혁신위의 최종 목표는 비명계 공천 학살 아니냐'는 의심도 있다.
"그러니까 혁신위가 어려운 과제를 맡은 거고, (당 내부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 비명계의 핵심적인 사람들을 찾아가서 동의를 구하고, 친명계를 찾아가서 동의를 구하는 그런 작업을 활발하게 해서 오해를 줄여야 한다.
공천 문제는 손을 안 댈 수가 없다. 지난 10년 동안 시스템 공천이 안착했지만, 그럼에도 거기에 무슨 문제가 없는지, 효과적으로 작동하는지 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김상곤 혁신위도 선출직 공직자 평가 하위 20%를 공천에서 배제하기로 할 때 우리 안에서 권역별 20%냐, 전국에서 20%냐를 두고 한참 논쟁하다가 전국 기준으로 했다. 그 결과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렵다'는 호남 의원들의 불안감이 탈당 원인이 됐다. 이후 '감점+비공개'로 했는데,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알 수 없다. 또 새로운 인재를 영입하는 기준들까지 고민해야 한다."
"윤 대통령과 싸우는데 집중을... 이낙연, 함께 하자"
- 혁신의 목표는 결국 2024년 총선 승리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심판 선거', 민주당은 '윤석열 정권 심판 선거'가 될 것이라고 외치지만 현재까지 여러 지표들을 보면 정당 지지도도 엎치락뒤치락 중이고, 정권 견제론과 정권 지원론은 팽팽하다.
"경기·서울은 지금처럼 가기 어렵다(총 107석 중 88석, 82.2%가 민주당 – 기자 주). 충청, 강원, 영남 다 마찬가지다. 따라서 내부 갈등을 최소화하려면 비명계가 '나를 의도적으로 날린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시스템 공천을 정비하고, 또 하나 당의 지지도를 올려야 한다. 당의 가치와 노선을 잘 정비해 다수 의석을 갖고 정기국회에서 어떤 일에 집중할지 등을 잘 정돈할 필요가 있다."
- 그러면 총선을 낙관할 수 있을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제일 중요하다. 우선 당내 갈등은 그만하고 윤석열 대통령과 싸우는 데에 집중하자. 이재명 대표의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당대표 문제를 정리하지 않고 어떻게 하냐'고 하는데, 시간을 좀 줘야 할 것 아닌가. 당대표가 자기 소신껏, 당의 노선을 바로 세워서 정기국회 때 화끈하게 대응해서 당을 좀 추스르고 효율적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게 다같이 사는 길이고, 총선에 대비하는 길이다."
- 최근 미국에서 돌아온 이낙연 전 대표가 비명계의 구심점이 되면서 당내 갈등이 더욱 격해질 것이라고 걱정하는 이들도 있는데.
"(이낙연 전 대표는 앞으로) 비명계의 구심점이 되는 게 아니라 (이미) 구심점이다. 그런데 이낙연 선배가 막 갈등하고 그러면서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지금은 나라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하면 어떻게 할 건가. 또 이태원 참사 특별법 같은 걸 안 하면 부모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26일 본인의 페이스북에서 '못다 한 일을 하겠다'고 했던) '못다 한 일'은 이낙연 선배가 그런 걸 같이 하는 거다. 같이 손잡고 총선 치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