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의 역사를 바로 알고, 가족에게 좋은 탐방 기회를 주셔서 감사하다. 이렇게 가꿔주신 멋진 대한민국에서, 저도 한국인으로써 자긍심과 애국심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마음도 들었다. 탐방 후기의 마지막 문장은 김주열 열사께 감사하다는 말을 올리겠다."
이는 김주열(1944~1960) 열사 관련 역사 탐방을 했던 한서연 학생(중2)이 쓴 "역사탐방 후기" 일부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가 경상남도교육청 후원을 받아 2022년 벌이고 펴낸 <김주열열사 역사탐방 백서>에 보면 이같은 글들이 많이 실려 있다.
320여쪽 분량의 백서에는 어린이를 포함한 참가자들이 찍은 사진과 함께 김주열 열사에 대한 그림도 실려 있다. 안내는 주로 김영만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고문과 이춘 작가 등이 맡았다.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는 청소년을 비롯한 가족들의 신청을 받아 김주열 열사의 역사 현장을 안내해오고 있다. 국립3·15민주묘지를 비롯해, 3·15의거발원지, 오동동문화광장, 3·15의거탑, 김주열열사 시신인양지, 당시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무학초교 담장, 마산용마고 김주열열사 소공원, 팔랑재 동서화합 8장승 등이다.
최둘레(창원)씨는 2011년 9월 경남도 기념물(제277호)로 지정된 김주열열사시신인양지를 둘러보고 "민주화운동의 역사 현장이 문화재로 지정된 곳이 국내에서 최초라고 하니 더 자랑스러웠다"며 "지금까지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의 끈질긴 노력으로 이뤄낸 성과라 생각하니 고맙기 그지없다"고 했다.
가족들과 김주열 열사의 고향인 남원을 둘러본 노승용씨는 "중학생인 첫째와 초등학교 4학년인 둘째한테는 아직 어려운 내용일거라는 생각이 있었지만 각자 느낀 바를 이야기하는데 월씬 성숙한 후기를 말하는 것을 보니 이번 탐방을 정말 잘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노형래 학생(중1)은 "김주열 열사의 흔적들을 살펴보니 많은 생각들이 머리 속에 맴돌았다"며 "3·15 부정선거와 이승만의 욕심만 아니었다면 김주열 열사와 의거에서 희생된 모든 사람들이 자신들의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었을 것 같다. 한번 권력의 맛을 보고 나면 쉽게 떨칠 수 없다고 하는데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노형준 학생(초4)은 "많은 곳을 가서 김주열 열사와 3·15의거에 대해 배우니 똑똑해지는 것 같은데, 마음이 무거워지기도 한다"고, 이영희(창원)씨는 "현재 김주열 열사는 역사 속에 살아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했다.
네 명이 함께 했던 신성재씨는 "마산, 남원에서 1박 2일 일정을 통해서 김주열 열사의 그 높은 뜻과 열정을 하나 하나 확인할 수 있었고, 민주화 된 오늘의 대한민국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며 "우리는 그 열정을 이웃과 나누고 평생교육, 사회활동을 통해 그의 얼을 전파하는데 최선을 다할 생각을 다짐하게 되었다"고 했다.
중학생 아들, 친구들과 함께 했던 고성순씨는 "대학시절 민중가요를 가슴 벅차게 불렀던 기억이 잠시 스쳐갔다"며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 만에 하나 천에 하나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나 역시 김주열 열사처럼 이 땅을 지키기 위해, 이 땅의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일어설 수 있기를 바랐다"고 했다.
김민제 학생(초2)은 "무학초교 담당을 가보았다. 구멍이 나 있었다. 총알자국이라고 했다. 김주열 열사가 거리에서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게 정망 용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소감을 썼다.
양연우 학생(초6)은 "당시 김주열 열사의 사진과 수많은 희생자 분들의 사진을 보니 숨이 잘 쉬어지는 것 같지가 않고 답답하나 느낌이 들었다"며 "우리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가족과 친구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였던, 희생하여 보다 더 나은 나라를 만들어주신 김주열 열사와 시위에 참가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하고 죄송하다"고 했다.
이순일 김주열열사기념사업회 회장직무대행은 "우리 사회가 어떤 인물과 사실을 상징하고 기념하는 일은 우리 사회에 그 분이나 그 역사적 사실을 본받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런 인물이나 역사적 사실은 우리 시민의 정신적 자산이요 나아가 시민의 자랑이 된다"며 "코로나19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탐방에 나서 주신 청소년, 어린이를 포함한 참여자께 감사를 드린다"고 인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