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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권금성 케이블카가 가로지른 설악산 풍경.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권금성 케이블카가 가로지른 설악산 풍경. 멀리 울산바위가 보인다.
ⓒ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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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자를 태우고 오는 케이블카

2023년 2월 환경부가 설악산국립공원 오색케이블카 환경영향평가 재보완서를 조건부 협의하는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뒤 전국 국립공원에 때아닌 케이블카 설치 바람이 불고 있다.

한국교통안전공단에 따르면, 2022년 말 기준 전국에는 총 41개 케이블카가 설치되어 있다. 이 가운데 국립공원에 설치된 사례는 설악산국립공원 권금성 케이블카(1971년), 내장산국립공원 케이블카(1980년), 덕유산국립공원 무주리조트 케이블카(1990년) 등 3곳이다. 모두 환경부가 아닌 내무부, 건설부가 국립공원을 관리할 때 설치된 시설이다.

케이블카가 큰 수익을 내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기대를 받게 되면서 지자체들은 잇따라 케이블카 추진에 나섰다. 하지만 <한국일보>의 지난 4월 보도(만성적자에 환경파괴까지... 케이블카, 욕망의 행렬)에 따르면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시스템에 공개된 자료를 살펴보면 유의미한 흑자를 기록한 경우는 여수해상케이블카와 통영케이블카뿐"이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3년 개통한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는 첫해 2억 원 흑자를 낸 뒤로 줄곧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2018년 이후론 적자폭이 더욱 확대돼 매년 10억~15억 원 손실을 기록하고 있다. 지역경제를 살릴 타개책인 줄 알았던 케이블카가 '예산 먹는 하마'로 전락한 셈"이라고 지적했다. 

흑자가 발생하는 케이블카도 지역 경제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업체의 배만 불린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권금성 케이블카가 흑자를 내는 동안 과거 수학여행지로 사랑받았던 설악산 B·C지구(구 집단시설지구)는 자연스럽게 발길이 끊어졌다. 이곳은 현재 쇠락을 넘어 아예 유령마을로 전락했다.

지난 2017년 <국민일보> 보도(부가가치 창출 규모 계산조차 없는 '케이블카 진흥')에 따르면, "권금성 케이블카를 운영하는 설악케이블카 측은 당초 자연보전기금을 지원하기로 했다가 최근 철회"해 "특혜의 수혜만 받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각 지자체가 경쟁적으로 '복붙(복사+붙여넣기)'한 케이블카 사업이 정작 지역에는 어떤 혜택이나 새로운 경험도 주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업 추진 명분으로 '지역주민의 염원'만 이용당한 셈이다.

케이블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국립공원에서 가장 인기 있는 '복붙템'(복사+붙여넣기 아이템)은 바로 출렁다리다. 출렁다리는 육상국립공원뿐만 아니라 여러 산과 호수에 설치되는 인기 아이템이다. 

하지만 이 출렁다리를 무서워하는 탐방객들이 있을 뿐더러, 혹시 모를 사고가 걱정되어 주춤하는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이용자, 노약자들도 많다. 실제로 출렁다리에서는 1년에 몇 건씩 부상 또는 사망사고가 발생한다.

그런데도 2022년 기준 전국의 출렁다리 개수는 약 208개로, 2022년에만 1달에 1~2개씩 설치·개통됐다. 이제 그냥 출렁다리만으로 관광객 유치가 어려워지자 지자체들은 앞다투어 '국내 최장 출렁다리' 경쟁을 하고 있다.

복붙템의 유행은 끝나지 않는다. 케이블카와 출렁다리가 항상 부는 열풍이라면, 최근에는 '런던아이'를 모방한 대관람차, 강화유리 위를 걷는 스카이워크가 새로운 복붙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역 특색' 빠진 지역 특산품

국립공원이나 산악지역의 복붙템이 출렁다리라면, 관광도시의 복붙템은 원조를 다투는 단일 음식점과 카페(특히 사진 찍기 좋은 프랜차이즈)일 것이다.

속초시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닭강정이다. 내륙에서도 먹을 수 있는 음식이 해안 도시의 명물이 된 것은 SNS에 해당 맛집이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속초시장의 어느 닭강정 가게가 유명해지면서 주변에 많은 닭강정 가게가 생겼고 어느새 '속초=닭강정'이라는 공식이 만들어졌다.

최근 속초시는 관광객이 많다. 서울-양양 간 고속도로 개통으로 매년 1천만 명 이상이 꾸준히 방문하게 된 것이다. 2022년 기준 속초시 인구는 8만 4011명인데, 관광객은 이보다 231배 많은 1943만 명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관광객들이 몰리면서 속초 닭강정은 더욱 유명해지고 속초 시내는 물론 전국에 비슷한 닭강정 가게가 양산되었다. 가장 먼저 속초시 내에서 '닭강정 포화 상태'가 발생했는데, 2018년 <한겨레> 기사에 따르면 2㎞ 안에 85곳의 닭강정 가게가 생겼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경주 황남빵, 남원 춘향전빵, 순천 칠게빵 등이 있다. 지역 특산품으로 개발되는 빵들은 결국 '팥앙금의 굴레'에 갇혀버렸다. 팥앙금 비율과 빵 굽는 틀만 조금씩 다를 뿐 전국 휴게소의 명물이자 어느덧 고유명사화되어 버린 '천안 호두과자'를 이기지 못한다.

북붙템의 유행은 거리 풍경도 획일화했다. 강릉 안목해변에는 횟집과 커피 자동판매기 대신 바다를 감상할 수 있는 커피가게, 특히 프랜차이즈 가게가 들어섰다. 커피숍이 줄줄이 늘어선 이곳은 여느 해안 도시와 다름없는 모습으로 변했다. 과연 우리는 해안가 사진만으로 강원도와 부산시, 제주도를 구별해 낼 수 있을까?

관광지를 지키기 위해 개발을 멈춰야 한다

사람들은 진짜 보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케이블카가 이끄는 대로 전망대에 오른다. 그러나 케이블카는 높은 곳에 쉽게 올라가는 수단일 뿐이다. 도심 하늘을 가로지르는 전깃줄도 경관을 해친다며 지중화하는 상황에서 굳이 국립공원에서까지 멋진 자연경관을 가로지르는 케이블카 로프웨이(튼튼하고 긴 와이어를 철탑에 걸고 여기에 몇 명에서 몇십 명이 탈 수 있는 상자를 매달아 산 위까지 동력으로 끌어올리는 장치)와 지주(대가 쓰러지지 않도록 버티어 괴는 기둥)를 봐야 하는가. 새로운 것을 보기 위해 떠난 여행에서 왜 복붙한 관광 아이템을 경험해야 하는 걸까.

관광지가 다른 곳과 복붙하지 않는 것, 복붙할 수도 없는 것이 바로 자연경관이다. 우리가 여행하는 이유, 새로운 것을 볼 때 감탄하는 이유도 결국 일상과는 다른 경험이 우리의 오감에 신선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결국 관광 아이템의 차별성은 스토리텔링에 있는데, 각 지자체의 관광 사업은 다른 지역 하드웨어를 따라 하는 방식에 오랜 시간 멈추어 있다. 지자체의 입장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동의하거나 지지할 수는 없다. 자연을 해치고 지역 특성을 지워가며 유행 따라 복붙하는 관광 아이템이 당장 지역경제를 활성화하는 데는 좋을지 모르나, 결국 총량을 순식간에 갉아먹을 뿐 그저 '좋았던 한때'만을 남기고 순식간에 사라진다.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중단하고 백지화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각 지역의 다채로움을 온전히 누리고 진짜 관광 자원인 자연경관을 오랫동안 보전하기 위해, 케이블카가 국립공원의 경관을 감히 해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 관광지 난개발이 관광지의 차별성을 죽이는 지금의 상황에서, '개발 중단'은 자연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더 다채로운 경험을 바라는 사람들의 여행을 살리는 길이다.

덧붙이는 글 | 글 이이자희 국립공원을지키는시민의모임 정책팀장, 설악산국립공원지키기국민행동 팀장.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


#오버투어리즘#설악산 케이블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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