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약 30년 전인 1991년 제주도 서귀포시에 살았던 청년 양용찬은 "제주가 제2의 하와이가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삶터로서의 제주를 원한다!"라는 말을 남기며 분신하였다. 제주도개발특별법(이하 특별법)이 상정된 바로 그 해였다.
특별법은 제주 관광개발이 쉽게 추진되도록 각종 절차를 간소화하는 것이 주 내용이다. 1991년 마지막 날 날치기로 국회를 통과했으며, 지금은 '제주특별자치도 설치 및 국제자유도시 조성을 위한 특별법'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리고 같은 해 '제주도개발특별법 반대를 위한 범도민회(제주참여환경연대의 전신)'라는 임시 조직이 만들어졌다. 지식인과 학생, 해녀 등이 모여 특별법 제정 반대에 나섰는데, 구호는 '도민 주체 개발'과 '개발 이익 환수'가 중심이었다. 특별법에 따른 관광개발 과정에서 도민과 도민 자본은 외면되고 개발 이익이 밖으로 빠져나간다는 것을 제주도민들이 일찌감치 간파한 것이다.
베릿내마을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도민들이 특별법의 본질을 이렇게 빨리 간파한 배경에는 중문관광단지가 있다. 제주 관광개발의 상징이 된 중문관광단지 땅에는 원래 '별이 내린 내(하천)'라는 뜻을 가진 베릿내마을이 있었다. 단지 안에 천제연 3단폭포가 있는데, 바닷가에서 이를 바라보면 마치 별이 내리는 것처럼 보여서 붙은 이름이다. 베릿내마을은 1970년대 중문관광단지 개발 과정에서 사라졌다. 마을 사람들은 박정희 군사정권의 시퍼런 서슬에도 용감하게 저항했지만 결국 땅을 뺏기고 흩어졌다. 남은 사람들은 중문관광단지 골프장에서 잔디를 관리하게 되었다.
골프장은 베릿내마을에만 들어선 것이 아니다. 특별법이 통과된 후 가장 먼저 펼쳐진 난개발 관광사업 역시 골프장이었다. 현재 30개에 달하는 제주도 골프장이 대부분 1990년대와 2000년대에 만들어졌는데, 대부분 한라산 아랫자락에 있다.
제주도는 물이 땅속으로 잘 스며드는 화산 지질이라서 도민들은 지하수가 바닷가에서 용출
1) *(하단 설명 참조)하는 이른바 용천수에 의존해 살아왔다. 그래서 제주도의 해발 200~600m 사이 중(中)산간 지역에는 마을이 거의 없었다. 거주지와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여기서 농사도 짓지 않고 방목만 했다. 이곳에는 소(小)화산인 오름, 오름에서 용암이 흘러나와서 형성된 곶자왈, 용암이 넓게 퍼진 뱅디 초원이 자리를 잡았다. 그러나 지하수 관정
2) *(하단 설명 참조)을 뚫고 굴착기도 사용하는 시대가 오자 이 지역은 개발의 최적지가 되었다.
무엇보다도 관광개발을 하려는 자본에는 싼 땅값이 큰 매력이었다. 개발허가를 받는 즉시 땅값이 급등하기 때문에 허가만 받아놓고 다른 개발업자에게 되파는 '먹튀'도 성행했다. 허가 권한은 제주도지사에게 집중되었다. 2010년대부터는 중국 자본이 엄청난 자금력으로 제주도 곳곳을 사들여 관광개발에 나섰다. 서귀포시는 서귀포에 남아있는 마을 소유의 '마을공동목장'에 대한 소개글을 중국어로 번역하면서 적극적으로 매입 환영의 뜻을 중국 자본에 밝혔다.
투기 세력들이 집중되면서 땅값도 급등했다. 제주도는 오랫동안 유일하게 부동산 관련 규제가 적용되지 않는 '비규제지역'으로 남아있었는데, 그동안 도민들이 거주하는 아파트 가격까지 가파르게 올랐다. 지자체와 국가의 세금 수입은 올라갔지만 전국에서 평균임금이 가장 낮은 제주도의 아파트 가격은 서울 다음 수준으로 급등했다.
진짜 관광을 시작할 때
사람들은 흔히 "제주도는 관광의 섬이다. 관광산업이 없으면 제주도는 망한 거다"라고 한다. 잘못된 생각이다. 제주도민 제1의 소득원은 여전히 감귤이다. 또한 제주도 관광산업의 수입 절반은 신라·롯데·JDC
3) *(하단 설명 참조) 등 면세점에서 나오는데, 주로 본사로 가고 제주에는 수입이 거의 남지 않는다. 다른 사설 관광지나 대규모 호텔 등의 수입 역시 대부분 서울의 본사로 송금된다.
관광업은 소득과 고용의 측면에서도 매우 불안정하다. 게다가 부동산 개발이 필요한 특성상 대규모 자본만이 감당할 수 있다. 그래서 관광개발의 혜택은 주민에게 돌아갈 수 없다. 관광개발을 위해 쏟아부은 막대한 세금들은 많은 기회비용을 동반한 것이었다. 제주도가 특별자치도로서 관광개발을 30여 년간 해왔는데 전국에서 평균임금이 가장 낮고 비정규직 비율이 가장 높은 지금의 상황이 '관광개발'의 한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더구나 이러한 관광개발로 인해 제주도의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환경과 토지는 급격히 훼손되고 있다. 중산간 지역의 오름과 곶자왈, 초원에서 흡수되어 형성된 지하수는 제주도에 없어서는 안 될 생명수다. 제주도민은 물을 98% 지하수에 의존한다. 그런데 여기에 대규모 골프장과 리조트를 만든 것이다.
골프장 잔디에 뿌리는 비료와 농약은 화산 지질인 제주도의 땅속으로 아주 빨리 스며들 수 있어서 제주도 골프장은 모두 물을 막기 위한 차수막을 깐다. 물이 내려가지 못하니 지하수 함양
4) *(하단 설명 참조)이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이뿐만 아니라 골프장은 지하수를 끌어올려 관개용수를 사용하고 심지어 '골프텔'이라는 대규모 숙박시설에까지 지하수를 끌어올려 사용한다. 제주의 지하수 수위는 계속 낮아지고 있으며 지하수에서 염분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면 제주도 관광을 없애자는 이야기냐? 이렇게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관광' 자체가 아니라 '관광개발'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관광개발은 제주도의 자연환경과 제주도민의 자립환경을 해치면서 진행되었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제주도민들은 1차산업인 농어업의 생산물을 2차산업으로 가공하여 부가가치를 높이고 3차산업인 관광업을 포함한 서비스업에서 판매하는 '6차산업(1차+2차+3차=6차)'을 대안으로 강조해왔다. 차(茶) 브랜드 오설록은 제주에 차밭을 만들고 차로 만든 제품을 '오설록 차박물관'에서 판매한다. 전형적인 6차산업이다. 그렇지만 그 수익은 대기업이 가져간다.
기업이 아닌 제주도민이 주체가 될 수 있도록 도민 자본으로 2차산업인 농수축산 가공업을 육성해야 한다. 여기에 관광까지 어우러지면 큰 수익을 낼 수 있고, 혹여 관광시장이 불안정해져서 일시 중지될 때도 산업이 견딜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관광개발 수혜자의 반발과 여전히 지역개발을 주도하고자 하는 국가의 보이지 않는 힘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제주도가 제2의 하와이가 되는 것을 반대한다"는 양용찬 열사의 말을 되새긴다. 하와이 와이키키 해변에 노숙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경제활동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런데도 관광개발로 치솟은 집값을 감당하지 못해 노숙을 택한 것이다. 남의 일 같지 않다. 제주도의 유명 해변인 월정리 바닷가에는 건물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함덕 해변은 이미 해운대처럼 변해버렸다.
관광개발의 결과가 '하수도는 처리 못하고 쓰레기는 넘치고 도로는 교통지옥이 되어 버린 제주도'라면 그 개발은 죽음의 길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제주도민과 관광객 모두를 위한 진짜 관광을 시작할 때다.
1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솟아나는 것
2 지하수를 퍼 올리기 위하여 땅속을 파 설치한 관 모양의 우물
3 국토교통부 산하 시설로 제주국제자유도시개발센터가 운영한다.
4 강수가 지하수로 유입되는 것 덧붙이는 글 | 글 홍영철 제주참여환경연대 공동대표. 이 글은 참여연대 소식지 <월간참여사회> 2023년 7-8월호에 실립니다. 참여연대 회원가입 02-723-4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