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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은 한국 현대사에서 매우 큰 영향을 준 인물이기 때문에 수많은 영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지고 평가되는 인물이다. 이를 뒷받침해줄 수 있는 각종 사료도 많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도 이같은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그런데 이중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대중연설가'로서 김대중에 관한 것이다.

지금 김대중의 대중연설을 살펴보는 이유는 그에 대한 막연한 회고와 감상을 유도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의 대중연설은 40대 기수론에서 보듯 정치권의 세대교체, 명사정치에서 대중정치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는 점에서 한국 정치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또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과정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그의 대중연설은 한국 정치사, 현대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것을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대중정치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김대중의 대중연설
 
 7대 대선 당시 연설하고 있는 김대중.
7대 대선 당시 연설하고 있는 김대중.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의 대중연설은 명사(名士)정치에서 대중정치시대로의 전환을 상징한다. 1955년 결성된 민주당은 제2공화국 장면 정부 시절을 제외하고는 오랜 기간 야당으로 활동하게 된다. 당시 민주당 정치는 몇몇 유력 인사들이 당의 운영 전반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명사정치로 불리운다. 명사정치는 당시 야당정치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핵심 키워드다.

명사정치는 열악한 정당정치 현실 속에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당시 한국 정치는 전체적으로 발전이 지체돼 있었지만, 야당의 상황은 여당과 비교하기 힘들 정도로 어려웠다. 각종 권력으로부터 소외돼 있던 야당이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국민들의 지지였는데, 이를 조직화할 수 있는 수단과 경험이 부족했다.

그 결과 야당은 몇몇 명망가들의 명성과 자원동원능력에 의존하게 됐다. 이러한 배경을 갖고 있는 정치인들은 명망가 출신이었다. 소위 명사정치가 잉태하게 된 배경이었다. 

정당정치의 경험이 짧은 상황에서 아직도 정치사회적으로 봉건적 문화가 많이 남아 있던 시절이다보니 명망가 출신 정치가들은 여러 면에서 한계를 보여주었는데 그 중의 핵심은 일반 국민들로부터 괴리한 감각과 태도였다.

1961년 5.16쿠데타 이후 1960년대 한국 정치는 5대, 6대 대선에서 알 수 있듯이 박정희와 윤보선의 대결구도였다. 이때 박정희가 서민적 정체성을 내세우고 이것이 일정 정도 효과를 발휘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야당은 명사정치의 한계로 인해 외연 확장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당시 야당정치의 한계를 극복하고 대중정치로의 전환을 대표한 인물이 김대중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증명하는 것이 그의 대중연설능력이었다. 40대 기수론을 통해 세대교체 바람이 불었던 신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비주류인 김대중은 탁월한 의정활동과 대중연설능력을 인정받아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승리했다.

그러나 당시 판세는 박정희 후보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1968년 1.21사태와 푸에블로호 나포, 1969년 EC-121기 격추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북한의 무력공세에 의해 전쟁위기론이 장기간 지속될 정도로 안보불안이 심각했다. 그결과 반공안보론을 내세운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세가 상당했고 이는 1969년 3선개헌 국민투표를 통해 확인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야당의 약화는 지속돼 회복하기 힘들 것이란 비관적인 전망이 나오기도 했는데 김대중은 특유의 대중연설능력으로 국민들과의 교감을 넓혀갔고 정책선거를 주도하면서 선거 판세를 박빙의 상황으로까지 만들어내는 능력을 보여줬다. 당시 김대중의 활약을 대표하는 것이 바로 1971년 4월 18일 장충단공원 유세연설이었다. 이날 연설은 100만에 가까운 인파가 몰렸을 정도로 7대 대선의 절정이었다.

민주화운동 과정에서도 큰 역할을 한 김대중의 연설
 
 1969년 효창공원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대중.
1969년 효창공원 유세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대중.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제공
 
김대중은 이제까지 야당의 주요 정치인들이 보여준 것과는 다른 차원의 대중연설을 했다. 당시 텔레비전은 매우 귀했기 때문에 라디오로 정보를 접하던 대부분의 국민들에게 당시 야당의 대중집회는 새로운 정보를 얻는 소통의 장이자 익명의 사람들과 동질감을 느낄 수 있는 정서적 교감의 장이기도 했다.

김대중은 이러한 국민 일반의 정서를 잘 파악해 1시간이 넘는 장시간의 대중연설을 통해 국내외 각종 정보를 알기 쉽게 전달하기도 했고, 울분에 찬 사람들의 정서를 대변하면서 폐부를 찌르는 울림을 주기도 했다. 또한 다양한 유머를 통해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하는 등 다양한 역할을 했다. 그래서 김대중의 대중연설은 재밌고 유익했고 감동적이었다. 이러한 대중연설은 그 전에는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는 명사정치에서 대중정치로의 전환을 상징했다. 이제 야당은 대중들과 호흡하면서 대중을 정치전면으로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은 대선 한 달 뒤에 있던 1971년 5월 8대 총선에서 유진산 파동으로 심각한 위기에 처한 신민당의 구원투수로 나서서 신민당의 대약진을 이뤄냈었다. 이때도 이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그의 대중연설능력이었다.

김대중의 대중연설능력은 권위주의 정권이 보기에도 두려운 대상이었다. 그래서 당시 군사독재 정권은 김대중의 대중연설능력을 용공 음해의 하나의 근거로 내세울 정도였다. 쉽게 말하면 김대중은 말을 워낙 잘해서 사람들이 그의 말에 설득되기 쉬운데, 색깔이 의심스러운 자들 중에서 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근거로 김대중의 사상도 의심스럽다는 것이 이 음해의 논리였다.

김대중은 유신 정권 초기 1차 망명기간 중에서도 미국과 일본에서 각종 연설을 통해 반유신민주화를 위한 국제연대활동에서 큰 성과를 거두었으며 1979년 4월에는 아서원연설을 통해 김영삼이 신민당의 총재가 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 서울의 봄때도 2차 미국 망명기간 중에도 김대중의 대중연설은 큰 호응을 얻었다. 그래서 군사독재정권은 김대중이 일반 국민들과 접촉하는 것을 최대한 막으려고 했던 것이다. 이처럼 김대중의 대중연설은 정치사적인 의미가 크다.

김대중의 대중연설, 시청각 자료로 확인할 수 있게 하다
▲ 김대중의 예언 "박정희씨가 승리하면 선거 없는 시대가..."
ⓒ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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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김대중의 대중연설능력 및 이것의 역할, 영향력 등은 그것의 실제 가치와 위상만큼 제대로 알려지지 못하고 평가받지도 못하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시기 김대중의 연설은 텍스트로만 존재하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텍스트는 연구자료로서는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문화콘텐츠로 활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요즘처럼 IT기술 발달로 다양한 콘텐츠가 개발되고 유통되는 시대에 김대중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음성 및 영상 자료가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은 매우 아쉬운 대목이다.

그래도 절대적으로 보면 상당한 양의 연설 자료가 음성 및 영상으로 남아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상황이다. 이러한 배경에서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은 김대중 대통령 탄생 100주년(2024년 1월)을 맞이해 2024년 8월까지 순차적으로 김대중의 역사적 연설 20여 개를 선별해서 공개하기로 했다.

시기로 보면 주로 1970, 1980년대 자료이며 1990년대 자료가 일부 포함될 예정이다. 형태로 보면 음성과 동영상이 반반으로 구성될 것 같다. 음성 및 영상 자료를 시기적으로 구분해서 보면 1970년대까지는 음성 자료만 남아 있다. 동영상 자료는 1980년대부터 남아 있으며 2차 미국 망명 시기(1982.12.~1985.2.)와 1987년 민주화 이후 시기에 주로 집중돼 있다.

이 시리즈의 첫 순서로 1971년 4월 18일 7대 대선 서울 장충단공원 유세 연설을 공개했다. 다음 기사에서는 이 연설의 역사적 의미 등에 관해서 자세히 설명하도록 하겠다.

* 이번에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이 공개한 '1971년 김대중 장충단 연설' 영상자료는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 유튜브 페이지(클릭) 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P2NoAlLxJE4&list=PLM3KYQ3ld15FS1VbLvJotxYLv2e-EPntP

덧붙이는 글 | 사회학 박사이며 김대중 연구자입니다. 김대중 재평가를 위한 김대중연구서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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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학 박사이며 연세대학교 김대중도서관에서 사료연구 업무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김대중에 대한 재평가를 목적으로 한 김대중연구서인 '성공한 대통령 김대중과 현대사'(시대의창, 2021)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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