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군은 이번 지방소멸 대응기금 사업에서 가장 높은 A등급으로 책정되어 210억의 기금을 확보했다. 함양을 발전시킬 수 있는 많은 예산을 확보한 것은 정말 좋은 일이지만,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그만큼 소멸 위기를 목전에 두고 있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청년세대의 인구감소와 유출, 일자리 부족 등 함양이 해결해야 할 사회적 문제는 막막할 정도로 산적해있다. 청년인구를 유입시키고 유출을 막는 것은 우열을 가릴 것 없이 시급한 문제다. 청년세대는 인구문제 해결에 중요한 열쇠가 되는 세대다. 현재 함양군뿐만 아니라 많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세대를 유입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혹자는 지방자치단체가 나서서 인구 유치를 위해 힘쓰는 사태를 보며 지방을 찾아온 청년들이 힘든 일을 싫어하고 지원금만 밝힌다며 비판한다. 정말 청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떤 환경에서 청년들이 행복하게 정착할 수 있을까? 이에 본지는 이미 함양에서 살고 있는 청년의 삶 속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고 청년들이 함양에서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보고자 한다.[편집자말] |
"저 정말 함양에서만 지냈어요."
경남 함양군 수동면 하교마을에 사는 스물여덟살 이다슬씨. 수동초등학교, 함양여자중학교, 함양고등학교를 졸업한 함양 토박이다. 성인이 되고서도 함양에 계속 있었다고 하니 평생을 함양에서 지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굳이 순혈주의에 비교해서 말해보자면 성골 함양청년인 셈이다.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플로리스트가 꿈이었던 이다슬씨의 목표는 1차 산업인 화훼농업과 2차 산업인 가공과 디자인, 그리고 3차 산업인 서비스 및 판매까지 융합한 형태의 6차 산업을 통해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매장을 운영하는 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하게 꽃을 디자인하는 전공이 아니라 꽃을 이해하고 배울 수 있는 한국농수산대학교 화훼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한국에서 화훼농가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생각해 21살이 되던 2학년 때 중퇴를 했다.
그렇게 다시 돌아온 함양에서 이다슬씨는 다양한 일거리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아르바이트는 도서관에서 3~4년 해보기도 하고요. 단기 아르바이트는 분식집도 해보고 카페도 해봤던 것 같아요. 공무원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것은 25살 때였어요."
함양에서 이다슬씨는 방황의 시간을 보냈다.
"제가 정말 아무것도 안 하고 함양에서만 있었다고 하니까 다른 분들이 장난으로 암흑기를 보냈다고 말을 하거든요. 그런데 정말 맞는 말 같아요. 근무를 시작하고 사회생활을 시작해보니까 그 시기가 정말 어두운 시기였어요. 함양에 있는 친구는 단 한명, 그 친구 없으면 만날 사람도 없고요. 그렇다고 다양한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고..."
함양에서만 지내는 삶은 어떤 것을 하더라도 범위가 좁다. 사회생활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더 좁을 수밖에 없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도 없고요. 저는 차가 있었다면 조금 달랐을까요? 다양한 경험을 해보지 못해서 정말 아쉬워요. 저는 독서를 좋아하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을 어디서 만날 수 있는지, 춤을 좋아하는데 어디서 배울 수 있는지 알 수 없어요. 시골은 좋아하는 것을 하기 어려운 공간인 거 같아요."
외로운 시간을 채우는 문화
만약 다슬씨가 함양에서만 있었다는 이야기를 안 했다면 풍부한 경험을 해낸 사람이라고 착각했을 것이다. 다슬씨가 다양한 경험을 한 사람이라는 느낌은 다슬씨가 함양에서 겪었던 수많은 이야기 덕분이다.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긴 시간 할 때, 책을 정말 많이 읽었던 것 같아요. 영화도 많이 봤고요. 6년 동안 특별한 경험 없이 정체기를 보냈다고 생각을 했는데 어쩌면 많은 책과 영화를 통해서 무형의 무언가가 남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 시간 동안 책과 영화, 예술, 문화에 관심을 더 많이 가졌어요."
다슬씨가 책과 영화에 집착했던 이유는 이해받고 싶은 마음이다.
"책과 영화가 제 마음을 완전히 반영할 수는 없겠지만 저의 상황이 떠오르는 문장이나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공감하고 위로를 받을 수 있었어요. 저는 스스로를 조금 미워했는데 마음 따뜻해지는 다양한 이야기를 만나면서 다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어요."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고서 만났던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에서의 활동 역시 큰 행복이었다.
"하고 싶은 것이나 꿈을 펼칠 기회가 정말 잘 없는 함양인데 모임에서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을 만나니까 자연스럽게 다양한 상상을 할 수 있었어요. 그리고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했어요. 올해 제가 행복하다고 느낄 때가 언제 있었느냐면, 사람들이 나를 알아봐 주고 애정으로 봐준다는 걸 느낄 때 행복했거든요. 모임을 하면서 많은 분이 저를 좋아해 주고 관심 가져주는 게 행복했어요. 외로웠나 봐요"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을 보며 꼭 독서모임을 해보고 싶었다는 다슬씨. 다슬씨는 현재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에서 독서모임 브로든을 운영하며 책을 좋아하는 다른 함양청년과 활발한 교류를 하고 있다. 특히, 작년 10월 진행된 '거함산 청년문화놀장'에서는 중고 책 서점 부스를 운영하기도 했다.
"정말 신기했어요. 제가 알던 함양이 아닌 것 같아 자꾸 놀라게 돼요. 책에 관심이 많은 함양사람도 있네? 글쓰기에 관심이 많은 함양사람도 있네? 저도 모르게 '함양사람'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었나 봐요. 책을 통해서 가치관이 넓어지기도 하지만 사람을 만나면서 넓어지는 게 큰 거 같아요.
한 명 겨우 만나는 삶을 살다가 갑자기 이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신기해요. 서점부스를 할 때도 책 한 권 안 팔릴 줄 알았는데 책을 좋아하는 분은 오셔서 3-4권을 구매하시기도 하고요. 책 자체에 관심도 많이 가져주시고요. 그때 준비한 책의 반 가까이 팔았거든요."
다슬씨는 함양청년네트워크 이소에서 진행했던 작년 크리스마스 파티에 대해서도 말했다.
"제가 함양에서 할 수 있는 파티는 그냥 친구 서너 명 모여 술집에 가는 거였는데, 청년들이 모이니까 나름의 드레스코드도 맞추고 칵테일도 마셔보고요. 거창하진 않더라도 책이나 영화로만 접하던 그런 크리스마스 파티를 함양에서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어요. 매년 크리스마스를 평범하게 보냈는데 이렇게 특별한 크리스마스를 보낸 것이 인생 처음이라서 기억에 남아요."
새내기 공무원으로 사회생활 시작
올해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한 다슬씨는 7월 3일 시보가 해제된다. 목표했던 공무원에 합격하고, 시보로 실무를 진행했는데 어떤 것을 느꼈을까?
"회사는 회사일 뿐이라는 말이 있잖아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들어서 실제로 공무원으로 일을 시작하기 전까지는 그냥 비즈니스 인간관계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따뜻한 곳이라서 놀랐어요.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사는지 무엇을 하고 사는지 모두 물어봐 줘요. 관심이 많은 게 신기해요. 어떨 때는 막 저 혼자 대답을 길게 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신나서 대답하면서도 속으로는 '그런데 이게 궁금하실까'하는 생각을 했어요"
처음엔 오지랖이나 가십거리처럼 생각하는 줄 알고 경계했지만 모두 애정과 관심인 것을 알고 나서는 근무하는 것이 더 즐거워졌다.
"상급자가 꼰대냐, 아니냐는 당하는 사람이 바로 느끼잖아요. 꼰대 아니고 대부분 관심과 애정인 게 느껴져요. 오히려 상급자가 더 조심하는 게 느껴지거든요. 그런데 저는 상급자가 스스럼없이 다가와 주시고 저에게 조언해주시고 가르쳐주셨으면 좋겠어요. 저는 그런 조언으로 배우는 게 많거든요. 조금 더 저를 편하게 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신규공무원으로 정식임용을 앞두고 다슬씨는 공무원으로의 정체성이 확실히 생기는 기분이다.
"시보해제를 앞두고 이제 정말 공무원으로의 역할이 나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 되면서 전과 다른 책임감과 직무를 잘하기 위한 고민이 많이 생겨요. 제가 있는 위치에서 온 힘을 다하면 조금 더 나은 함양이 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함양뉴스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