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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편집자말]
"샤이니를 보러 일본을 간다고? 굳이?"

그룹 샤이니의 열렬한 팬이었던 친구 A가 공연을 보러 일본에 간다고 했을 때 내가 보인 반응이다. BTS의 팬 '아미'가 되기 전이었다. 친구는 딱히 나를 설득하거나 이해받으려고 하지 않았다. 이제는 내가 그 말을 듣고 있다.

"콘서트 보러 미국을요?" "싱가포르를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해외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돈이 있으면 갈 수 있지만 국내에서 열리는 콘서트는 돈이 있어도 갈 수 없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속도도 빠르고 인구 수에 비해 즐길 수 있는 공연 수나 공연장의 수용인원이 적어서인지 서울에서 열리는 콘서트에 가는 것은 외국 콘서트에 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보다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것이 더 치열하다는 한국 양궁 선수들의 케이팝 팬 버전이라고 하면 이해가 쉬울까.

콘서트는 '당연하지 않다'는 생각

처음 방탄소년단의 팬이 되었던 것은 2017년이지만 내가 간 첫 콘서트는 2018년 8월의 Love Yourself 공연이었다. 방탄소년단이 주경기장에서 처음 한 역사적인 콘서트였는데 3회의 공연 중에 딱 한 장의 티켓을 겨우 구했다. 그나마도 내가 PC방에서 덜덜 떨며 한 시간 내내 로딩중이라는 표시만 뱅글뱅글 돌아가는 흰 화면을 앞에 놓고 절망하고 있을 때 티켓팅 경험이 많은 샤이니팬 친구가 집에서 잡아준 티켓이었다.

그 해에 BTS는 같은 세트리스트의 곡으로 아레나급 공연장을 돌며 월드투어를 두 달 간 했다. 뉴스에서나 들어봤지 내 삶에 들어올 줄은 전혀 몰랐던 지명들이 콘서트 개최지로 뇌리에 들어왔다. 때로는 새벽 시간대에, 때로는 심야에, 때로는 한낮에 공연 전후의 분위기가 트위터로 전해졌다.

잠실주경기장 같은 스타디움 크기의 공연장에서는 공연하는 아티스트가 면봉 혹은 성냥개비 같은 크기로 보인다. 물론 그마저도 카메라 너머의 영상으로 봐왔던 것과 비교하면 그 어느 때보다 내 가수와 가까이 있는 것이고, 내 함성이 다른 4만 명과 함께 전달되는 것만으로 느껴지는 전율이 있지만 말이다.

하지만 다른 말을 쓰는 나라에서 한국말로 된 가사를 떼창으로 들으면서 가수가 느끼는 감동이 있고 그 감동이 다시 관객들에게 전달되어 서로 에너지를 주고받는 해외 공연에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나도 저 공연장에서 공연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자꾸 올라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처음 간 해외 공연은 2021년 코로나 끝에 LA에서 열린 Permission to Dance 공연이었다. 2018년에 처음 마음이 일어났던 걸 생각하면 3년이 걸린 셈이다.

아이는 어렸고, 항공, 호텔, 공연비까지 최소 1백만 원을 넘는 돈을 나를 위해 쓰는 거였다. 버튼을 누를 마지막 한 끗이 부족했다. 공연을 가고 싶다는 마음에 주먹을 꼭 쥐다가도, 티켓팅부터 해보겠다며 마우스를 열심히 돌리다가도 끝내 클릭을 하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마침내 내가 해외 콘서트를 보겠다는 결심을 실행한 것은 2020년 4월 서울을 시작으로 장장 6개월에 걸친 투어가 예정되어 있던 Map of the Soul 공연이었다. 두 가지 변화가 있었다. 해외 투어는 돈이 있으면 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돈을 모았고, 친구B를 아미로 키워내 함께 '덕질'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LA 공연 티켓을 3회차 모두 구하고, 호텔과 항공권을 예약하고 회사의 업무 일정을 조정했지만 결국은 가지 못했다. 코로나로 인해 공연이 취소되었기 때문이다. 가기 힘든 서울 잠실 주경기장에서 열리는 공연 티켓 3장도 모두 취소되었다.

2019년 10월의 서울 콘서트 이후 따뜻한 봄날에 다시 만날 수 있을 줄 알았던 공연이 연기되다 못해 하나씩 취소되는 것을 보면서 뼈에 새긴 것이 있다면, 콘서트가 열리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는 것과 다음이라는 게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갈 수 있었는데 기회를 잡지 않았던 2018년의 내 선택을 두고두고 후회했다.

콘서트를 보러 굳이 해외에 가는 이유

이 깨달음은 콘서트에서뿐만 아니라 친구와의 약속에도 가족과의 시간에도 적용되었다. 친구와 만날 날을 잡을 때는 언제나 '빠른 날이 좋은 날'이다. 약속을 먼 날로 잡으면 변수가 끼어들 가능성이 그만큼 더 많기 때문이다.

써야할 글, 읽어야 할 책이 있어도 매주 금요일엔 가족과 함께 영화를 보는 루틴도 만들었다. 지금 이 마음, 이 관계, 이 건강은 결코 당연하지 않고 끝없이 계속되지도 않는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김혼비 작가의 산문집 <다정소감>에는 '거꾸로 인간'이라는 말이 나온다. 축구하는 40, 50대 언니들이 '나도 니 나이 땐 전반 겨우 뛰었어. 너도 내 나이쯤에는 후반까지 버틸 수 있을 거야'라고 위로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바깥 세상에서는 '나이가 많아서 난 이제 안 돼'의 의미로 쓰이는 '내 나이 돼 봐'의 거꾸로 버전에 대한 이야기를 읽고 깊이 공감했다.

싱가포르에 슈가의 단독 공연을 보러 간다고 휴가를 냈을 때 "차장님 부러워요"라고 했던 인턴 아미, 밴드 페스티벌 티켓값 대신 한 달 동안 세탁물을 세탁기에서 꺼내 건조기로 옮기는 일을 맡기로 한 딸아이가 엄마처럼 덕질하고 싶다고 한 이야기를 들으면 내가 사는 세상도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잘 할 수 있을 거야'라는 의미를 담은 '너도 내 나이 돼 봐'인 듯하다.
 
 On 뮤직비디오 촬영지를 찾아 친구와 함께 광란의 점프!
On 뮤직비디오 촬영지를 찾아 친구와 함께 광란의 점프! ⓒ 최혜선

BTS 멤버들이 차례차례 군에 입대하고 있다. 그에 맞춰 2025년 완전체 귀환을 위해 팬인 나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있다. 바로 완전체 복귀 후 열릴 월드 투어 콘서트에 세 개 대륙쯤 발자국을 찍을 수 있도록 돈을 준비하는 것, 내 가수들을 더 가까이서 볼 수 있도록 스탠딩에서 버틸 수 있는 근육을 만드는 것이다.

남들은 한 번 보면 될 콘서트를 여러 번 본다고 이상하다고 하지만, 한국가수를 보려고 외국을 간다고 입을 대지만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나는 남들과는 다른 세상에 산다.

그 세상에 사는 나는 2년 후에는 지금보다 근육량도 늘고 해외투어에 쓸 시간과 돈이 더 많아질 수 있도록 지금을 산다. 방문해 본 해외국가라고는 일본밖에 없었던 내가 더 많은 나라에 발을 딛어보고 친구B와 더 많은 추억을 쌓고 있다는 건 소중한 덤이다.

"콘서트를 보러 미국을요? 싱가포르를요? 굳이요?"

굳이 답을 듣고 싶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이것이 내 답이다. "샤이니를 보러 일본을요? 굳이?"라고 물었던 나이기에 질문을 하는 사람의 마음도 너무나 잘 이해한다. 나는 양쪽을 다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것도 덕질하며 나이 드는 사람만이 갖는 특권이 아닌가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저의 블로그와 브런치에도 게재될 예정입니다.


글쓰기 모임에서 만나 시민기자가 된 그룹. 70년대생 동년배들이 고민하는 이야기를 씁니다.
#덕질#방탄소년단#아미#해외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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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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