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상담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나영 상담가가 '부모가 궁금한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편집자말] |
열한 살 자람이는 자기 입맛에 맞는 반찬이 있으면 개인 접시를 가져와 수북이 담아둡니다. 자기가 먹을 거라면서요. 하도 그러기에 "그러면 다른 가족들이 못 먹잖아, 같이 먹어야지"라며 제지하기도 하고, 다른 가족들에게 먼저 먹어도 되는지 물어보고 먹으라고 할 정도입니다. 얼마전에도 물회를 먹는데 회를 많이 달라고 하더군요. 아이 아빠는 자신의 것을 다 아이 몫으로 주고 풀만 먹더라고요. 어느 부모가 자식 먹는 게 아깝겠냐마는 저는 그 모습이 좀 불편했습니다. 가족을 배려하는 모습이 부족해 보여서요. 늘 이렇게 배려를 해줘서 자기만 아는 것 같고 제 입장에서는 큰아이 눈치도 보입니다. 밥 먹을 때마다 신신당부해요. 집에서만 이럴 수 있는 거라고, 남의 집에 가서 이러면 안 된다고요. 배려가 배려인 줄 모르고 뭐든 받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아이의 이런 태도를 그냥 보고만 있어도 되는 걸까요?
먹을 것에 욕심이 많은 아이, 이러한 케이스는 두 가지 관점으로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먹는 것에 집착하고 식탐이 많은 아이의 문제입니다.
두 번째는,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아이의 행동에 대한 문제입니다.
식탐이 많은 아이라면
아이가 음식에 집착하는 이유는 몇 가지가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원래 먹는 것을 좋아하고 잘 먹는 아이일 수 있고, 가족 내의 분위기가 음식을 빨리 먹는 분위기이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형제, 자매, 혹은 남매 관계에서 경쟁하듯 먹는 습관이 자리잡히면 그럴 수도 있구요. 이와 같은 이유라면, 가족 내의 식사 습관을 한번쯤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가족 모두 음식을 천천히 먹는 습관을 들이도록 해야합니다.
그리고 미리부터 나누어서 배분해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좋아하는 음식만 가져가 쌓아 놓고 먹는 아이들에게는 식판에 반찬을 담아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하면 동생에게 늘 음식을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언니에게도 공평하게 느껴질 테구요.
그런데 자람이가 음식에 집착하는 이유가 심리적인 문제는 아닌지 잘 살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정서적 허기를 먹는 것으로 달래는 아이들도 많습니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코르티솔이라는 호르몬의 혈중 농도가 증가합니다. 그런데 이 코르티솔은 식욕을 증가시키고 비만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어른들도 화가 나면 아이스크림 한 통을 다 비우거나, 매운 떡볶이나 마라탕을 먹으면서 스트레스를 푼다고 하잖아요. 이처럼 식욕과 심리적 스트레스는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사연 속 자람이도 무언가를 먹을 때 느끼는 포만감과 만족감으로 마음의 불안이나 정서적 결핍을 해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가 지나칠 정도로 음식에 집착하거나, 배가 충분히 부른 상태인데도 음식 앞에서 조절을 하지 못한다면, 자극적인 음식이나 야식을 찾고 과체중이 되는 경우라면 음식으로 위안을 받는 마음의 문제가 무엇이 있을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심리적 결핍의 원인을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위안을 얻을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고민해 보기도 해야 합니다. 신나게 놀 수 있는 활동을 찾아주거나, 아이의 관심사를 귀기울여 들어주세요. 저녁 식사 후 가족이 함께 산책이나 운동을 하는 등의 방법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사연 속에서 아이 아빠는 잘 먹는 아이의 편을 들어주는데, 엄마는 그런 아이가 너무 이기적으로 보여 훈육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계신 것 같아요. 식사 예절이나 태도에 대한 훈육과 가르침은 어느 정도 필요하지만, 음식에 대한 집착을 고쳐보겠다고 큰소리로 야단을 치거나 무안을 주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식욕은 매우 근본적인 인간의 기본 욕구이기 때문에, 그 문제로 상처를 받거나 주눅이 들어버리면 자존감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마음을 먼저 헤아리면서 "우리 자람이가 이걸 진짜 좋아하나 봐. 맛있나 보다. 충분히 있으니까 천천히 먹어도 돼." 이런 메시지를 전해주며 나누어 먹고 천천히 먹을 수 있는 방법을 지도해 주시면 됩니다.
욕심이 많고 이기적인 아이라면
아이가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자신의 욕구만 채우려는 행동을 하는 것은 타인의 입장에서 내 행동을 볼 수 없기 때문이고, 그것은 아이가 가진 '공감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공감 능력은 유아기 때 발달합니다. 부모가 아이의 행동과 욕구에 반응하고, 따뜻한 정서 표현으로 아이의 마음을 읽어주고 이해해주면 아이의 공감 능력은 자연스럽게 성장이 됩니다.
아이의 공감 능력은 '너는 왜 다른 사람의 마음은 모르고 네멋대로만 하니?'라는 식으로 다그친다고 생겨나지 않습니다. 우선 평소에 부모가 아이의 말과 행동에 어떤식으로 반응을 하고 있는지부터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이의 이야기를 귀기울여 들어주고, 아이의 생각과 감정에 대해 자주 이야기를 나누어주면, 그렇게 이해받는다고 느끼며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에는 공감능력이 싹트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생겨납니다.
타인의 마음과 생각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키우기 위한 방법이 하나 있는데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거나, TV를 같이 보거나, 어떤 상황을 마주할 때 이런 질문을 자주 던져주는 것입니다.
"저 사람은 지금 어떤 기분일까?"
그렇게 타인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궁금해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준다면, 다른 사람의 입장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자라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사회는 오래 전부터 누군가 어떤 잘못을 저지르거나 예의 없는 행동을 할 때,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았길래'라는 비난의 말을 쉽게 합니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다보면 내 아이가 '가정 교육을 잘 받은' 바르고, 타인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자라기를 바라게 되곤 합니다.
아이의 행동과 태도가 예의 있고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넓은 마음을 가진다면 물론 좋겠지요. 하지만 그 마음은 혼내거나 비난을 한다고 해서 자라나는 것은 아닙니다. 부모의 바른 태도를 보고 자란 아이가 예의를 배우고, 존중받은 아이가 남을 존중할 줄도 압니다.
상담실에 오시는 부모님들께 제가 자주 하는 말이 있어요.
"아이를 가르치기 위해 훈육은 해도 됩니다. 그런데 화는 내지 마세요."
"엄격한 건 필요할 때가 있지만 분노를 터뜨리시지 마세요. 아이는 '화나면 그래도 되는구나' 하는 것만 배웁니다."
"아이를 가르치고 싶으실 때는, '만약 내가 아이라면 어릴 때 우리 엄마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면 좋을텐데...'를 한번 생각한 뒤 말을 골라보세요."
아이에게 화 내기 전 3초, 한 번쯤 떠올려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기자의 개인 브런치에도 게재됩니다.
https://brunch.co.kr/@writeurmi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