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원전 부지에 보관하고 있는 물을 방사성 '오염수'라 부를지, '처리수'라 부를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다. 일본은 방사성 물질을 걸러낸 물이니 '처리수'라 불러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내에선 여전히 삼중수소 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오염수'로 보는 입장이 우세하다. 같은 물을 두고 그것을 무엇이라 일컬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논쟁하는 이유는 이름이 가진 힘 때문이다.
'틀짓기 이론'을 제시한 사회학자 어빙 고프만(Erving Goffman)은 사건이나 사물을 어떤 틀로 바라보는지에 따라 그것을 이해하는 맥락에 차이가 생겨, 사람들의 인식과 행동도 달라진다고 보았다. 동일한 상황을 두고 '시간이 반이나 남았다'라고 할 수도 있고, '시간이 절반밖에 안 남았다'라고 할 수도 있지만, 두 가지 다른 표현은 같은 상황에 대한 상반된 인식의 차이를 나타내고, 사람의 행동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국내 언론이 후쿠시마 원전 부지의 물을 오염수라 부르는 것은 틀짓기 이론이 보여주듯, 무엇이라 '이름 짓느냐'가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좌우하는 힘이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이름 짓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언론은 영국에도 있다. 영국 언론, 가디언(the Guardian)은 지난 2019년, 앞으로는 '기후변화(climate change)'라는 용어를 쓰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기후변화'라는 말은 수동적이고 온화한 느낌을 주는데, 이런 표현은 현재의 위기상황이 인류에게 재앙을 가져올 것이라는 과학자들의 견해와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는 이유에서다. 대신, '기후위기(climate crisis)', '기후비상(climate emergency)', '기후붕괴(climate breakdown)'라는 강한 표현을 사용하고, '지구온난화(global warming)'도 '지구가열(global heating)'이라 바꿔 부르기로 했다.
국내 언론도 기후위기의 심각성에 대해 꾸준히 주목해왔다. 그러나 기후를 위기나 붕괴, 비상사태로 인식하고 조명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후문제는 해가 다르게 심각해지고 있지만, 언론이 사용하는 단어는 여전히 '변화', '온난화' 수준에 머물고 있다. 빅데이터를 분석하는 빅카인즈를 통해 지난 1년 동안 국내 언론이 사용한 단어를 기준으로 보도 건수를 확인해보니, 6월 2일 기준 '기후위기'라는 단어를 사용한 보도는 1만3937건, '기후변화'는 2만5365건으로, '기후변화'라는 말을 사용한 기사가 월등히 많았다. 물론, 이 중에는 '기후변화협약'처럼 협약이나 단체의 이름이 사용된 경우도 포함돼 있지만, 상당수 기사는 그저 제목부터 '기후변화'라는 단어로 일관하고 있었다.
언론은 안경과 같다. 사람들은 그 안경의 틀 안에서 세상을 보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의사가 환자에게 새로운 약을 사용하면 부작용으로 '사망할 확률'이 20%라고 말할지, 신약의 '성공률'이 80%라고 할지에 따라 환자에게 신약의 의미가 다르게 수용될 수 있는 것처럼, 언론이 사용하는 단어 하나가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다. 사람을 죽이는 극한의 더위를 '가열(heating)'이 아닌, '온난화(warming)' 수준으로 표현하고 있는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오염수를 함부로 처리수라 부르지 않는 것처럼, 과학자들이 인류에게 닥친 재앙이라고 외치는 기후위기에 대해서도 언론이 사용하는 말은 상황의 절박함이 담긴 것으로 신중히 선택돼야 한다.
덧붙이는 글 | 강지선은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박사과정에 있고 TBN한국교통방송 PD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