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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력이 '돈줄'로 언론을 옥죄고 있다. 서울시와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의원들은 2022년 TBS 지원을 중단하는 조례를 일방적으로 통과시켰다. 제작 마비 상황에 직면한 수도권 유일의 공영방송 TBS는 새로운 조례가 없으면 2023년 말 문을 닫을 위기에 처해 있다. 시민의 소중한 미디어 자산인 TBS를 이렇게 빼앗길 순 없다. 민주언론시민연합 제안으로 언론단체, 마을미디어, 5개 야당 서울시당 등이 모여 제대로 된 공영방송 TBS를 만들기 위한 '주민조례발안운동'을 시작했다. 오는 9월 26일까지 2만 5천 명의 서울시민 서명을 받는 게 1차 목표다. 권력에 빼앗긴 TBS를 주민조례를 통해 시민이 직접 되찾자는 '리셋 TBS', 그 이야기를 하나하나 꺼내 보려 한다.[편집자말]
"어떤 의미에서 서울은 한국이다. 나라 살림의 모든 것이 서울에 있다. 모든 한국인의 마음이 서울에 있다. 어떤 계급에 속하든 서울 사람들은 이곳을 단 몇 주라도 떠나 살기를 원치 않는다. 한국인들에게 서울은 오직 그 속에서만 살아갈 가치가 있는 곳으로 여겨진다."

구한말인 1890년대, 우리나라를 네 차례나 여행한 영국 왕립지리학회 최초의 여성회원 이사벨라 버드 비숍(Isabella Bird Bishop)은 자신의 여행기 <한국과 그 이웃 나라들(Korea and her neighbors)>에서 서울의 의미를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130년이 흐른 지금은 어떤가요? 서울은 여전히 우리에게 단순한 행정구역상의 수도가 아닙니다. 단지 서울에 산다는 자체만으로 타 지역 사람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월하다는 '서울 부심(負心)'을 가지게 합니다.

서울은 세련되고 똑똑하고 풍요롭다면, 지역은 촌스럽고 낙후되고 우둔한 이미지로 흔히 그려집니다. 이러한 착각의 바탕에는 서울은 '중앙'이고 지역은 '지방'이라는 차별적 인식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중앙-지방'의 우열 구조를 부추긴 언론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촬영한 1890년대 서울 정동 러시아 공시관 일대 풍경.
이사벨라 버드 비숍이 촬영한 1890년대 서울 정동 러시아 공시관 일대 풍경. ⓒ 스코틀랜드국립도서관
 
언론도 예외가 아닙니다. 거의 모든 뉴스는 서울의 날씨와 사건·사고가 차지하고 지역 소식은 대규모 재난이 아니고선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서울의 언론사들은 스스로 '전국구'라 자처합니다.

대통령실, 국회, 정부 중앙부처의 일을 전하면서 마치 대한민국 전체를 아우르고 쥐락펴락하는 양 으스댑니다. '중앙' 언론은 권위와 품격이 있고 '지방' 언론은 열등하고 변변찮다고 여깁니다. 온통 중앙의 이야기만 실리는 미디어에서 지역 주민들의 목소리는 설 자리를 잃습니다.

중앙과 지방의 차별은 서울 시민들마저 소외시킵니다. 100년 전 성곽도시였던 서울이 경제개발과 올림픽을 거치며 폭발적으로 확대되면서 서울 안에서도 중앙과 지방, 상층과 하층이 쪼개집니다. 초고층 빌딩 이면에는 어김없이 슬럼이 깃들였고 대규모 아파트 단지 너머에는 반지하와 옥탑방이 둥지를 틉니다.

그마저도 차지하지 못해 경계 밖으로 밀려난 이들은 광역 교통망을 타고 매일같이 서울을 오갑니다. 주거와 교통, 경제와 일자리, 의료와 복지, 교육과 문화에 이르기까지 서울 시민의 24시는 차별의 구조 속에서 층층이 나뉘고 솎아집니다.

서울 시민의 공영미디어 TBS, 도전과 좌절
 
 TBS 시민참여 프로그램 <시민영상 특이점>. 사진은 2022년 8월 방송분.
TBS 시민참여 프로그램 <시민영상 특이점>. 사진은 2022년 8월 방송분. ⓒ tbs
 
'전국'지 신문, '중앙' 방송이 다루지 않는, 서울 시민의 생생한 삶과 다채로운 목소리를 담아내겠다며 새롭게 출범한 방송사가 있었습니다. '서울특별시 미디어재단 TBS'가 그 공식 명칭입니다. 1990년 교통 정보를 전달할 필요로 처음 설립된 '교통방송' TBS는 시간이 지나면서 시민의 다양한 요구에 직면합니다.

2013년 8월 서울연구원이 교통방송을 비영리공익재단으로 법인화해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으면서, 서울시는 기존의 TBS를 독립법인화하고 서울 시정을 비롯해 정치, 경제, 사회 등 서울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루는 지역 특화 방송으로 만들겠다는 기본계획을 수립합니다. 이미 10년 전부터 서울시는 TBS를 더 이상 교통방송이 아닌 시민의 방송으로 전환하기로 했던 것입니다.

서울시의 계획과 함께 TBS도 재단 설립에 발맞춰 시민참여 프로그램을 대폭 강화하면서 '시민참여형 지역 공영방송'이 되겠다는 포부를 다집니다. 여기에는 서울을 여느 국제도시에 뒤지지 않는 '젊고 평화롭고 역동적인 글로벌 문화도시'로 가꾸고자 하는 서울 시민의 기대도 담겼습니다.

마침내 2020년 2월 독립법인으로 전환한 '미디어재단' TBS는 법적 운영권이 서울시장에서 재단 대표로 이전되고 직원들의 신분도 계약직 공무원과 비정규직에서 민간 정규직으로 바뀌었습니다. 과거 '교통방송' 시절과는 완전히 차원이 다른 법적·조직적 위상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시영 홍보 방송에서 시민 공영방송으로 탈바꿈한 '미디어재단' TBS의 새 출발은 한국 방송사에서 기념비적인 도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불과 3년도 지나지 않아 TBS는 사라질 위기에 처했습니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국민의힘이 장악한 서울시의회는 일부 프로그램의 편향성과 공정성을 시비 삼아 예산을 삭감하고 TBS의 존립 근거인 조례안마저 폐지해 버렸습니다. 국민의 힘 시의회가 폐지의 이유로 든 논리는 이렇습니다. '첨단 교통정보 애플리케이션이 넘쳐나는 시대에 교통방송은 필요 없다', '고액 출연료 받는 유명인의 프로그램 시청률이 너무 처참해 세금이 아깝다', '서울시나 시의회에 두게 되면 정치권력에 휘둘리니 민영화하라' 등등.

그런데 교통방송은 미디어재단으로 전환하면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고, 시청률이 낮은 것을 트집 잡으면서 수년째 라디오 청취율 1위인 프로그램은 왜 없앴는지, 특정 기업의 소유가 되는 민영화로 어떻게 방송의 독립성과 공공성을 지키겠다는 건지,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들의 일방적인 주장만으로 TBS는 하루아침에 식물방송으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방송 내용에 대한 객관적 평가도 공론화 과정도 없이, 미처 피지도 못한 시민 공영방송의 싹이 꺾인 것입니다.

다시, '시민의 힘으로 한 걸음 더'
 
 2022년 11월 1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가진 서울시의회 TBS 조례폐지안 철회 촉구 주민청원 기자회견
2022년 11월 1일 민주언론시민연합이 가진 서울시의회 TBS 조례폐지안 철회 촉구 주민청원 기자회견 ⓒ 민주언론시민연합
 
그러나 포기하기엔 아직 이릅니다. 국민의 힘 의회가 조례안을 폐지한다고 해서 TBS의 주인인 서울 시민의 권리가 사라지지는 않습니다. 십 수 년간 기획과 준비, 공론화 과정을 거쳐 재탄생한 '미디어재단' TBS는 시사·뉴스·재난방송·지역정보·시민 콘텐츠 제작지원 등 시민을 위한 공공미디어 플랫폼으로 다양한 공적 역할을 수행해왔습니다. 누군가가 잠시 시정 권력을 잡았다고 마음대로 없앨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누구도 함부로 빼앗을 수 없는 서울 시민과 시청자의 소중한 미디어 자산입니다.

이제 서울 시민을 비롯해 국내외 시청자들이 무너지는 TBS를 일으켜 세워야 합니다. 국민의 힘 시의회가 저지른 폭거를 오히려 시민 권리 회복의 계기로 삼아,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주민조례를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시민의 방송, 민주적 여론 형성과 자유로운 문화 창달에 이바지하는 미디어를 서울 시민은 가질 자격이 있습니다. 시민의 긍지와 자부심이 될 TBS를 상상합시다. 그리고 서울의 주인인 시민의 이름으로 서울시와 의회에 당당히 요구합시다.
 
  TBS주민조례 서명에 참여할 수 있는 QR코드
TBS주민조례 서명에 참여할 수 있는 QR코드 ⓒ 민주언론시민연합
 
* TBS주민조례제정추진운동에 함께하는 분들이 적는 글이며, 매주 게재될 예정입니다.
* 응원의 목소리는 큰 힘이 됩니다. 링크(https://www.juminegov.go.kr/ordn/reqDtls?pSfLgsReqOnlineSno=C20230000000553) 또는 QR코드를 통해 서명에 함께해주세요.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장입니다.


#민주언론시민연합#T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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