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인기를 얻었던 드라마 <이상한 나라의 우영우>에서 주인공 우영우는 엄마 없이 아버지와 단 둘이 산다. 옛이야기 속 콩쥐나 신데렐라처럼 어려서 어머니를 여의고 그런 건 아니다. 우영우의 생모는 국내 최고 법대를 졸업하고 유명 로펌에서 대표변호사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왜 아이를 '버렸을까'.
극중 우영우의 아버지 우광호는 법대 동기인 여자친구 태수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수미는 창창한 앞길을 포기하고 싶지 않아 임신중단을 하려 하지만 광호가 말린다. 광호는 수미에게 제발 아이를 낳아달라고, 아이만 낳아주면 자기가 알아서 키우고 절대 연락도 하지 않겠노라고 애걸한다.
결국 수미는 영우를 낳아 광호에게 넘겨준 뒤 연을 끊고 자신의 인생을 펼쳐 나간다. 한편 육아와 생계, 학업의 부담을 동시에 짊어져야 했던 광호는 어린 딸과 함께 셋방을 전전하며 근근이 생활한다. 드라마에서는 광호의 어머니가 어느 정도 도움을 준 것으로 그려지지만, 그럼에도 광호는 법조인의 길을 포기하고 작은 분식집을 운영하는 데 만족하며 살게 된다.
미혼부 광호와 '정상가족' 속 광호
만약 영우의 부모가 결혼을 하고 함께 영우를 길렀다면 어땠을까. 그들이 임신이라는 불의의 사건을 계기로 원하든 원치 않든 '정상가족' 속에 편입되었다면? 광호는 드라마에서처럼 육아에 헌신하는 아빠가 될 수 있었을까?
주위를 둘러보자. 결혼을 했든 안 했든, 임신과 출산을 계기로 학업이나 경력을 내려놓고 주양육자가 되는 쪽은 아직도 절대 다수가 여성이다. 이는 남성이 부양을, 여성이 돌봄을 나누어 맡는 가부장제 문화의 산물이다. 현실적으로 남성의 평균임금이 더 높은 사회에서 가계경제에 합리적인 결정이기도 하다. 단순히 개인의 선호와 적성에 따라 역할을 나누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광호가 아무리 다정한 성격이라고 해도, 숱한 사회·문화적 편견을 거스르고 아이와 아내를 뒷바라지하는 주양육자 아빠가 될 수 있었을까? 수미가 아무리 능력 있고 야심찬 법대생이라 해도,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주위의 손가락질을 뒤로 하고 사법고시 공부에 매진할 수 있었을까? 잘나가는 변호사로서 커리어를 꾸준히 쌓아나갈 수 있었을까?
수미가 아이를 '버리지' 않았다면 학창 시절의 꿈을 포기하고 주부가 되는 건 그녀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도 영우 엄마에게는 선택권이 있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거나, 낳아서 아이 아빠에게 보내거나, 낳지 않거나.
그러나 오늘날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버린' 죄로 영아유기죄 처벌을 받을 수 있는 여성들은 그렇지 못한 형편이다. 최근, 경찰이 '출생 미신고' 아동 사례를 집중적으로 파악하면서, 한 교회 베이비박스에 태어난 지 이틀 된 아이를 두고 온 30대 여성이 '영아유기' 혐의로 조사를 받는 사례가 보도됐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경제적으로 형편이 어려워 아기를 계속 키우기가 어려웠다"고 진술했으나, 경찰 측은 "의지만 있으면 아기를 키울 수 있을 정도의 여건이었지만 책임을 방기했다고 판단"해 그를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경찰이 '아이를 키울 의지'를 판별하고, 여성들을 무작정 '영아유기죄'의 범죄자로 몰아가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2023년 대한민국에서 원치 않는 임신을 하게 된 미혼모들 앞에 놓인 선택지는 무엇이 있을까. 광호가 영우를 기르며 그랬듯이 홀로 아이를 기르며 생활고에 시달리고 사회적 편견에 고통 받는 일? 여전히 쉽지 않은 임신중단을 음으로 양으로 시도하는 일? 혹은 아이를 낳자마자 베이비박스에 보낸 뒤, 형사 입건되는 일?
아이는 '의지'만으로 자라지 않는다
아이를 키우고 있는 입장에서 볼 때도, 이는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다. 경찰과 법원은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키울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이는 '의지'가 아니라 양육자의 시간과 체력, 노동, 인내심, 그리고 돈을 먹고 자란다.
사회가 인정한 혼인제도 하에서 서로 사랑하는 부부가 물리적·경제적 준비를 거쳐 낳은 아이를 키우는 일도 결코 쉽지 않다. 아이 하나를 키우는데도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데, 마땅한 거처가 없거나 제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상황에 놓인 경우 부모가 어떻게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까?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보내는 엄마들은 대개 의지하고 도움 받을 가족 및 경제적 기반이 없거나, 성폭력 등 원치 않는 파트너와의 사이에서 임신한 미혼모들일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 제도에서 아이를 입양 보내려면 우선 출생신고를 해야 하기에, 아이를 키울 수 없고 출생신고도 원치 않는 경우 베이비박스에 아이를 보내게 되는 것이다.
모든 아이들이 경제적으로 넉넉한 가정에서 부모의 따스한 돌봄을 받으며 자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물론 열악한 환경에서도 아이는 잘 자랄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임신과 출산을 선택하고, 아이를 책임지고 기르는 부모의 노력과 사회의 지원에 달린 일이지, 원치 않았던 임신과 감당할 수 없는 양육을 떠맡은 미혼모에게 강요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청춘도 꿈도 포기하고 미혼부가 된 영우 아빠가 그래도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영우를 출산하길 원했고, 양육 또한 감당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은 이들에겐, 사회가 다른 선택지를 함께 고민해 주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