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양평고속도로가 김건희 여사 특혜 의혹으로 뜨겁던 지난 10일, <조선일보>는 '단독' 타이틀을 달고 정동균 전 양평군수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보도했다.
<민주당 前양평군수, 예타 통과 앞두고 원안 종점 땅 258평 샀다>라는 기사 제목만 보면, 마치 민주당 소속 정동균 전 양평군수가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땅을 산 것처럼 보인다. 해당 기사 제목만 읽은 사람들은 민주당을 향해 "내로남불"이라며 불쾌감을 느낄 수도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조선일보> 기사는 기자가 부동산을 잘 몰랐거나, 만약 알고 있었다면 대단히 악의적인 보도라고 비판 받을 수 있는 내용이다.
진입로가 없는 맹지, 무조건 주변 땅을 사야하는 이유
정동균 전 군수가 20년째 살고 있는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384-5번지 주택의 지적도를 살펴봤다. 지적도 상으로 집과 연결된 도로가 없었다. 한 마디로 '맹지'였다.
'맹지'는 진·출입로나 도로가 붙어 있지 않은 땅을 말한다. 도로가 없기 때문에 건축허가가 나오지 않는다. 당연히 도로가 있는 땅과 비교하면 가격은 수십 배 이상 차이가 난다.
과거에 지은 집들 중에는 미등기 주택이 많다. 도로가 없는 '맹지'에 건축을 했던 탓에 허가를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도로가 없는 '맹지'라면 건축허가 자체가 불가능해 매매도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유튜브에는 '맹지 탈출' 노하우를 가르쳐주는 부동산 관련 영상이 많다. 맹지 탈출의 기본이자 가장 손쉬운 방법은 도로가 붙어 있는 주변 토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그런데 쉽지 않다. 토지 소유주들이 맹지를 탈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신의 땅이 필요하다는 것을 악용해 높은 금액을 부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터무니없는 가격을 불러도, 맹지 탈출엔 필요하기에 어쩔 수 없이 사기도 한다.
과거와 달리 전국 곳곳의 마을마다 통행로를 두고 분쟁이 급증하고 있다. 평소에 도로로 알고 다녔던 마을 길 중에도 사유지가 많다. 옛날에는 친인척이나 아는 사람이라 편의를 봐줬지만 지금은 통행료를 요구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만약 통행료를 내지 않으면 도로에 펜스나 장애물을 설치해 아예 봉쇄한다. 사유지라 경찰이나 지자체도 어찌할 방법이 없다.
따라서 도로가 없는 맹지에 집이 있다면, 무조건 도로가 있는 주변 토지를 구입해야 한다. 앞선 사례처럼 통행료를 요구하거나 심할 경우 도로를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부동산 관련 상식 중 가장 '기초'이다.
'맹지탈출'을 부동산 투기로 만든 <조선일보> 왜?
정동균 전 양평군수는 50년 전 양평읍에 살다가 초등학교 때 옥천으로 이사를 왔다. 그의 아버지가 처음 구입한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아신리 384-17번지 주택은 '지상권(타인의 토지를 사용할 수 있는 물권)'만 있는 주택이었다. 토지는 다른 사람 소유이기에 계약 기간이 끝나면 나가야 했다.
정 전 군수는 2000년에 바로 옆에 있는 384-5번지의 집이 매물로 나오자 구입해 현재까지 살고 있다. 그런데 이곳은 지적도에 나온 것처럼 맹지였다. 다만, 집 앞 토지가 공터라 통행에는 지장이 없었다. 주변에 오래 알고 지낸 이웃들이 많아 통행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을 것이다. 시골에서는 흔한 일이었다.
그러던 중 지난 2021년 3월, 집 앞을 가로막고 있는 3개 필지 소유주였던 김씨가 정 전 군수에게 자신의 땅을 살 것을 권유했다. 정 전 군수는 혹시 발생할 도로 분쟁을 우려해 384-10번지, 386번지, 384-2번지(도합 258.4평)을 은행 대출을 받아 구입했다.
<오마이뉴스> 취재에 따르면, 정 전 군수에게 토지를 판 전 토지주 김씨의 딸은 "들어가는 입구가 맹지인 걸 모르고 샀었는데, 땅을 다시 팔려고 보니 살 사람은 바로 뒷집(정동균 전 군수 집)밖에 없다고 생각해 사모님에게 부탁했다"며 "정치, 고속도로 이런 거 다 모른다. 진짜 사정해서 그 땅을 팔았고 사모님도 어거지(억지)로 산 거다. 그건 사실"이라고 강조했다(관련기사:
정동균 전 군수 "투기 아냐"... 전 토지주도 "내가 사달라 했다")
정 전 군수의 주택 위치를 볼 때 땅을 구입한 이유는 '부동산 투기'보다는 '맹지 탈출'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또한 큰 도로와 떨어져 있는 마을 안쪽 맹지라 고속도로 개통으로 엄청난 지가 상승을 기대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정 정 군수도 "서울-양평고속도로 종점과 전혀 무관하다"면서 "여기서도 종점까지 가려면 한 20분은 가야 한다"라며 종점을 노린 부동산 투기 의혹 보도를 강하게 부인했다.
그렇다면 왜 <조선일보>는 정 전 군수의 땅이 '맹지'라는 사실을 쏙 빼놓고 '부동산 투기'처럼 보도했을까? 정 전 군수는 "서울-양평 고속도로 특혜 의혹이 계속 불거지자 사실 호도, 국민 현혹이 도를 넘고 있다"면서 국면 전환용임을 의심했다.
前양평군수 아내, 예타통과 직전에 종점 땅 샀다(7.11)
양평 대안 노선, 文정부가 맡긴 민간 용역업체가 처음 제안(7.11)
[기자수첩] '우리 땅'은 괜찮고 '너희 땅'만 문제라는 민주(7.11)
원안 종점에 3000평..."김건희 특혜" 주장한 민주당 前 군수의 내로남불(7.10)
"양평고속道 원안 종점 인근 땅 1만m²... 민주 前군수가 땅 주인"(7.9)
[단독]민주당 前양평군수 일가, 고속道 원안 종점 일대 大지주였다(7.9)
2년 전 민주당, 김부겸 총리 땅에 IC 만들어주려 노선 변경 요구했나(7.7)
'김건희 특혜'라던 양평고속도 노선, 2년전 민주당서도 요구했다(7.7)
실제로 <조선일보>는 서울-양평고속도로 논란이 불거진 이후 김건희 여사 일가 특혜 의혹보다는 민주당 인사들의 행보를 중점적으로 보도하고 있다(관련기사:
김건희는 어디 가고 또다시 민주당 탓... <조선>의 눈물겨운 물타기). 해당 언론은 지난 7일 <'김건희 특혜'라던 양평고속도 노선, 2년전 민주당서도 요구했다>를 시작으로 정 전 군수와 민주당을 겨냥한 기사를 내놓았는데, 대다수가 애초 해당 의혹이 왜 불거졌는지, 규명돼야 할 것은 무엇인지 등 본질을 흐리는 내용으로 채워졌다.
정 전 군수는 서울-양평고속도로 특혜 의혹과 관련해 전수조사를 통한 국정조사를 촉구했다. 이번 기회에 주변 토지 소유주들을 전수조사해 투기 의혹을 파헤치는 것도 진실 규명에 가까워지는 명확한 길 중 하나로 보인다.
덧붙이는 글 | 독립언론 '아이엠피터뉴스'에도 게재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