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타파>와 '세금도둑을 잡아라' '정보공개센터' 등(어벤져스 팀)에서 제기한 검찰 특수활동비, 특정업무경비 및 업무추진비가 공개돼 연일 화제입니다. 이번에 공개된 자료의 기간은 2017년 1월부터 2019년 9월까지입니다.
올해 4월 23일 확정된 법원의 판결은 다음과 같습니다.
- 특수활동비(특정업무경비)의 집행일자(현금수령일), 집행금액(수령한 현금액수)를 공개
- 특정업무경비의 집행일자, 집행장소, 집행금액 등 지출증빙서류를 공개
-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과 카드사용내역, 영수증을 공개, 다만 업무추진비 집행정보에서 카드번호/승인번호, 행사 참석자 등의 성명/직책 등의 개인정보는 비공개
법원의 판결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특수활동비에 대한 상세한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습니다. 역시 예상대로 집행자료 전체가 존재하지 않고, 백지 영수증, 지급증 미존재 등 공개 판결을 무시하는 행태를 보였습니다. 심지어 2017년 1월부터 4월까지 자료는 통째로 빠져 있습니다. 자료자체가 없다고 발뺌하고 있습니다. 황당한 행태입니다.
업무추진비 영수증, 가려진 상호... 구내식당은 '선명'
언론보도에서는 특수활동비 현금지역내역과 사용처 부분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검찰의 업무추진비 공개 내역에 대해선 크게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기사에선 검찰의 업무추진비 공개 행태를 분석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공공기관들은 매월 업무추진비를 공개합니다. 여기엔 일시, 금액, 사용목적, 사용처 상호, 참석자 숫자 등 상세한 내용이 담깁니다. 검찰도 일부 내용을 홈피에 분기별로 공개하고 있지만 집행일자, 사용목적, 금액만 공개하고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상호(식당)명 등은 비공개해 왔습니다.
이번 소송으로 검찰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이 투명하게 공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는데 결과는 정반대였습니다.
이번에 공개된 영수증에는 상호가 가려져 있고, 절반 이상이 사실상 내용을 제대로 알아볼 수 없는 '백지 영수증' 상태였습니다. 여기서 재미난 것은 구내식당 이용내역은 선명하게 공개돼 있다는 점입니다.
공직자들의 업무추진비 사용내역은 엉뚱한 데 쓰이기도 합니다. 공무원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각종 사이트에 '공무원 맛집'으로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입맛이 까다로운 공무원들이 고르는 식당이라면 믿을 수 있다는 것이지요. 믿기 어렵겠지만 한 언론사에서 업무추진비 맛집을 기획기사로 다루기도 해 크게 화제가 된 적도 있습니다. 그만큼 일반인들의 관심이 많은 자료입니다.
다른 기관에선 상상하기 힘든 백지영수증... 추정 가능한 이유 셋
그러면 검찰의 업무추진비는 왜 식당 상호를 비공개했을까요? 검찰이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는 상태이지만, 추측하자면 가장 큰 원인은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일 가능성이 큽니다. 김영란법은 공직자·언론인·학교법인 직원들이 3만 원 이상의 식사를 대접받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검찰간부들은 소위 말하는 일반식당에서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언론인들과 법원 근처를 가면 검사들이 자주 간다는 곳을 소개 받을 수 있는데, 대부분 일반인들이 가지 않는 고급 음식집입니다. 4명이 12만 원으로 회식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곳입니다. 검찰 간부들은 언론인들과 회식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식당 상호 등이 공개되면 김영란법 위반 얘기가 바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일반 고위 공무원들도 회식을 하는 경우, 김영란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이럴 때는 참석자 숫자를 부풀리는 꼼수를 쓰기도 합니다. 가령 4명이 30만 원의 식사비가 나왔다면 8명이 참가했다고 쓰는 것이지요. 업무추진비 지출이 1회 한도 50만 원 이하면 참석자 명단을 적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업무추진비 공개내역에 유독 '49만 원'이 많은 것도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현직 대통령의 업무추진비가 포함돼 있다는 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유독 술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스스로 술을 좋아한다고 여러 차례 밝혔습니다. 특히 이번 사안엔 윤 대통령이 서울 중앙지검장으로 있을 때 사용한 업무추진비가 대거 포함돼 있습니다. 검찰청이 현직 대통령과 검찰 간부들이 자주 이용하는 식당 등을 공개하는 것이 부담스럽겠지요.
검찰의 '특권 의식' 때문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타 기관을 상대로 정보공개소송을 승소했는데, 상호를 가리거나 빈 영수증을 제출하는 건 상상하기 힘듭니다. 소송인이 검찰 고발, 감사원 감사 등으로 추가적인 압박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검찰의 경우 감사원이 감사를 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국회에서 자료제출 요구를 하더라도 수사 등 여러 이유로 미제출 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번 소송을 주도한 하승수 변호사(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는 "이렇게 영수증을 부실하게 제출하는 것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에 해당할 수 있다. 수년에 걸쳐 소송을 수행했고, 영수증 수수료를 83만 원이나 냈는데 이런 빈 영수증을 제출하는 것에 분노한다"라며 "반드시 국회 국정조사 등을 통해서 그 실상을 밝혀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검찰은 이번 기회로 타 기관처럼 업무추진비 등을 자발적으로 공개하고, 투명성을 갖추는 계기가 돼야 할 것입니다. 스스로 투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타 기관을 수사하는 것이 얼마나 신뢰성을 갖출지 의문입니다.
덧붙이는 글 | 2002년부터 기록관리 및 정보공개 활동가로 살고 있습니다. <대통령기록전쟁> <십대를 위한 인권 사전> 등의 책을 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