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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석 모란공원> 입구 민족 민주열사, 통일열사, 노동열사를 비롯해 우리현대사에서 자신을 희생한 분들이 잠들어 있는 숙연한 공간이다.
<마석 모란공원> 입구민족 민주열사, 통일열사, 노동열사를 비롯해 우리현대사에서 자신을 희생한 분들이 잠들어 있는 숙연한 공간이다. ⓒ 하성환

소외된 이들을 대변하기 위해 나선 사람 

<사랑하는 당신에게>

"다시 광야에 섰습니다.
험한 세월, 모진 풍파 모두 뒤로 하고
한 번도 가본 일 없는 낯선 길 앞에 섰습니다.
(중략)
지금 우리 앞에 놓인 이 새로운 길은
어쩌면 더 큰 희생, 더 큰 시련, 더 많은 고통만이 예정된
고난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나는 외롭지 않습니다.
비록 우리의 청춘은 짧았고 기쁨보다 고통의 시간이 더 길었지만
무엇보다 소중한 것은 사랑하는 당신과 지금 함께 있다는 것이고
이 낯선 길도 함께 가리라는 것입니다."


노회찬 의원이 2004년 국회의원 당선 직후 아내 김지선님에게 쓴 편지 일부다. 이 편지를 읽은 아내 김지선은 "내가 무서운 사람하고 사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회고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이 갖는 온갖 특혜와 특권을 생각하면 노회찬 의원은 통상 국회의원에 당선된 것과 정반대의 삶을 살아갔다. 국회 입성을 "지배 계급을 대표하는 선수들과 사생결단의 격전을 치르는 전투장"으로 여겼다.

그가 2012년 국회의원이 되었을 때 제일 먼저 시작한 공식행사가 국회 환경미화원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하는 일이었다. 홍보용 사진 찍기가 아니라 '투명 인간'처럼 살아온 우리 사회 '난쟁이들'의 권익을 대변하기 위해 자신이 국회의원이 되었음을 공식화한 사건이었다.

그는 2004년 3월 20일 KBS 심야토론에서 '삼겹살 불판' 발언으로 시청자들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50년 동안 시커매진 불판에 삼겹살을 매번 구워먹었다"며 기성 정당, 기성 정치를 통쾌하면서도 신랄하게 비판했다. 실제로 노회찬 의원이 주도해 창당한 민주노동당은 17대 총선(2004년)에서 선거 구호로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을 내세웠다. 진보정당다운 구호였다.

80년대 지하 노동자조직 '인민노련'을 비롯해 세상을 바꾸고자 꿈꾸었던 혁명 투사가 90년대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열망하며 진보정당을 창당했다. 대망의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자 계급의 권익을 대변하는 '민주노동당'(2000년) 창당 당시, 노회찬은 인생의 꿈 절반을 이뤘다며 무척 기뻐했다. 국회 초선의원이 된 후 법사위, 정치개혁 특위 위원으로 활동하며 숨 가쁘게 법안을 마련하고 정치 약자인 소외된 이들의 삶을 보듬고 소외된 현장을 찾았다.

2005년 3월 8일 세계여성의 날을 축하하며 장미꽃 송이와 편지를 써서 전했다. 봉건 질서의 잔재이자 가부장제의 상징인 호주제 폐지에 앞장섰고 공룡재벌 삼성에 맞서 '삼성 X파일 사건과 떡값 검사 7명의 실명'을 만천하에 폭로했다.

장애인 차별금지법 제정에 앞장섰고 한글날 국경일 제정과 '한글판 국회의원 선서문'을 최초로 실천했다. 새벽 네시에 6411번 버스 첫차를 타고 강남 빌딩으로 출근해 청소를 담당했던 우리 사회 '투명 인간들', 바로 소외된 이들의 상징인 '6411번 버스'(2010년)를 상기시키며 진보정당이 그동안 그분들에겐 '투명정당'이었다며 참회했다.

노회찬 의원! 그는 국회의원이 되어서도 특권을 거부했다. 거꾸로 정치사회 약자들을 위해 법안 투쟁에 골몰했고 실제 소외된 이들의 삶을 대변했다.

그런 노회찬은 지난 2018년 7월 23일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그는 직접 남긴 유서를 통해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000만 원을 받았다"고 고백했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것이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유서에서 "나는 여기서 멈추지만 당은 당당히 앞으로 나아가길 바란다"며 "국민 여러분이 정의당을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린다"고 적었다. 실로 노회찬에게 진보정당은 자신의 확장된 자아였다. 그는 2000년 진보정당을 창당했을 때 인생의 꿈의 절반을 이뤘다고 기뻐했다. 나머지 절반은 진보정당이 집권해 '평등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진보정치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노회찬 의원 묘소 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노회찬 의원 묘소. 7월 둘째 주 어느 젊은 여성이 옆 벤치에 가방을 내려 놓은 채, 무더위 속에 노회찬 의원 무덤 주위를 정돈하고 있다.
노회찬 의원 묘소경기도 마석 모란공원에 있는 노회찬 의원 묘소. 7월 둘째 주 어느 젊은 여성이 옆 벤치에 가방을 내려 놓은 채, 무더위 속에 노회찬 의원 무덤 주위를 정돈하고 있다. ⓒ 하성환

평생을 불평등과 차별, 불의에 맞서 싸운 투사! 고 노회찬 의원은 사민주의 대중정치인으로 죽산 조봉암 선생에 비견되는 인물이자, 100년이 지나도 나오기 힘든 참 정치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사회에서 '진보정치', '진보정당'을 이야기할 때 우리가 노회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이다. '젊은 노회찬'이 나와 그분의 꿈이 실현되길 기원한다.

#노회찬 의원#마석 모란공원#노회찬 평전#직업전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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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동기는 일제강점기 시절 가족의 안위를 뒤로한 채 치열하게 독립운동을 펼쳤던 항일투사들이 이념의 굴레에 갇혀 망각되거나 왜곡돼 제대로 후손들에게 전해지지 않은 점이 적지 않아 근현대 인물연구를 통해 역사의 진실을 복원해 내고 이를 공유하고자 함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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