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영업 등 유통업계의 열악한 처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백화점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할까요? 백화점에서 2년간 일한 경험으로 '백화점의 오늘'을 조명합니다. [편집자말] |
빛이 있으면 어둠도 있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들은 화려한 것에 매혹돼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유심히 살펴보지 않는다. 백화점도 마찬가지다. 반짝반짝하고 행복한 외형으로 포장돼 있지만, 꺼풀을 벗겨내면 슬픔과 비극이 도사리고 있다.
내가 일하던 경기도의 A백화점 직원용 엘리베이터는 10층에 자주 멈춰 서 있었다. 왜일까. 그곳에 직원 전용 흡연실이 있어서다. 엘리베이터 안은 늘 담배 냄새가 짙게 배어 있었다. 백화점에서 일하기 전까지 직원의 상당수가 흡연자라는 사실을 몰랐다. 왜 직원들이 그렇게까지 담배를 피우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 백화점에서 일하면서 알게 됐다. 그 이유를.
내가 겪은 백화점 노동자들은 다소 거친 면모가 있었다. 직원식당에서 식당 직원들에게 시시콜콜한 일로 투정을 부리거나, 함께 일하는 직원들간에 고성이 오가기도 했다. 간혹 손님을 향해 욕을 하는 경우도 있었는데, 내가 아는 직원은 고객이 매장에 들어올 때마다 나지막하게 욕을 하곤 했다. 처음엔 왜 이러는지 몰랐지만, 백화점 일이 손에 익으면서 알게 됐다. 극도의 스트레스에 노출된 노동자들은 상당히 예민해진다는 것을.
이런 경향성은 학계의 연구 결과에서도 파악할 수 있다. 2018년 고려대학교의 한 교수팀이 백화점·면세점 화장품 판매 노동자 2806명을 조사한 적 결과, 전체의 6.1%가 우울증을, 2.4%는 공황장애로 진단 및 치료를 받았다고 한다. 이 수치는 비슷한 연령대의 여성보다 3.5배, 12배 더 높은 수치였다.
수많은 사람들은 '감정노동이 사람의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백화점의 문제는 예의 바르고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손님들의 방문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아 보인다. 유통업계에는 잔인하고도 복잡한 구조적 문제가 얽혀 있다.
언제든 가기 좋은 백화점은 누군가에겐 휴식 없는 일터
사실 백화점은 참 좋은 곳이다. 백화점 내 식당가는 브레이크 타임이 없어서 언제든 방문하기 좋으며, 급하게 옷을 사러 갈 때도 매장이 문을 닫았는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그런데 뒤집어 보면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브레이크타임 없이 쉬지 못 한다는 이야기다.
백화점은 대개 오전 10시 30분에 개점해 평일엔 오후 8시, 주말(금요일 포함)과 공휴일엔 오후 8시 30분에 폐점한다. 직원들은 이 시간 동안 무조건 매장에 있어야 한다.
백화점 직원들은 운영 시간보다 훨씬 더 오랫동안 백화점에 상주하고 있다. 직원들은 오픈 전에 출근해 다른 지점으로 보낼 물건을 물류 기사에게 보내야 하며, 새로 들어온 물건을 검수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거친다. 보통 직원들은 오전 9시에서 9시 30분 사이 출근하고, 물건이 많이 들어오는 날에는 훨씬 더 이전에도 출근한다. 아침엔 굉장히 바쁘다. 깔끔한 매장 환경을 위해선 오픈 전까지 필수적으로 정리를 마쳐야 한다.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으면 사무실 직원들로부터 지적을 받는다.
퇴근은 어떨까. 직원들은 잔업이 있거나, 마감 시간에 맞춰 손님이 왔을 경우 집에 가지 못한다. 일찍 끝나야 오후 8시인 백화점의 특성상 노동자들은 미용실에 가거나 병원에 가는 등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하기 힘들다.
'직원을 많이 두면, 노동 시간이 줄어들지 않을까요?'라는 의구심이 생길 수 있다. 하지만 매출이 많지 않은 매장의 경우, 매니저 혼자서 운영할 수밖에 없다. 혼자 매장을 볼 때는 제대로 쉬지 못한다. 밥도 먹을 수 없어 카운터 뒤에 쪼그려 앉아 작은 간식으로 떼워야 한다. 나 역시 손님이 너무 많아 바쁘거나 혹은 매장을 혼자 봐야 하는 날엔 그런 식으로 허기를 채웠다.
매장을 비우고 자리를 뜰 수도 없어 화장실도 참았다. 직원을 두는 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직원 월급은 본사가 주는 것이 아니라 매니저가 본사로부터 받는 급여에서 직원의 몫을 떼어 주는 것이다. 이러한 구조에서 매니저가 적자까지 내며 직원을 고용할 수는 없다.
'직원을 더 두면 되잖아요'라는 질문
아웃도어 매장은 겨울옷과 방한용품을 팔면서 엄청난 수익을 벌어들인다. 반면 여름에는 혼자서 일해도 될 만큼 한가하다. 그러나 사계절 내내 같은 인원이 있다. 겨울에만 직원을 두고 여름에 해고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같이 일해 숙련된 직원이 있는 것이 더 도움이 되기도 하고, 직원을 필요할 때만 구하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백화점에는 이들이 인건비를 감당하면서 여름에 빚을 내 장사를 하고 겨울에 그 빚을 메운다는 말이 정설처럼 남아 있다. 한 아웃도어 브랜드 매니저는 3월이 되고 나서부터 "이제 빚더미의 시작이야"라고 내게 한탄했었다.
윤석열 정부가 '최장 주69시간 노동' 정책을 내놓자 우리 사회는 크게 반발했다. 그런데 백화점 노동자들은 이미 하루에 최소 11시간, 일주일에 77시간 이상을 일하고 있다. 식당가의 경우 오후 10시까지 운영하는데, 이 사람들은 하루 12시간 노동을 하는 셈이다.
백화점은 휴식에 각박하다. 하지만 이마저도 아울렛을 비롯한 쇼핑복합시설에 비하면 나은 편이다. 쇼핑몰은 보통 오전 10시에 개점해 오후 10시에 폐점한다. 게다가 연중무휴다. 이들의 비정상적인 노동 시간이 주 69시간을 규탄하는 세상과 함께 존재하고 있다.
외환위기 이전 백화점은 저녁 7시 30분에 폐점하고 일주일에 하루를 쉬었다. 그러나 현재 과도한 경쟁으로 대기업은 문을 닫지 않고 백화점을 운영하고 있다. 백화점은 12월에는 쉬지 않으며 명절 연휴에도 당일만 쉰다. 수많은 매장이 명절 일주일 전부터는 30분씩 연장 영업을 하는데 연장을 통해 엄청난 수입을 거두는 것도 아니다. 한 매니저는 연장 영업을 하던 중에 "인건비도 안 나오겠다"며 "사무실 직원들은 죄다 주 5일제를 하는데 왜 우리만 이렇게 일해야 하냐"라고 탄식했다.
2013년에 개정된 '유통산업발전법'에는 대형마트의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 휴일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백화점과 면세점은 이 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법으로 휴식을 보장받지 못하기에 백화점 노동자들은 버젓이 '쉴 권리'를 빼앗기고 있다.
근데 나는 최근 방문한 백화점에서 놀라운 현수막을 발견했다. "본사는 권한이 없다고 한다! 백화점은 응답하라!"라고 적힌 현수막은 ▲일방적 연장영업 폐지 ▲공동휴식권 보장 ▲정기휴점 확대 ▲직원용 시설환경 개선 ▲고객 응대 근로자 매뉴얼을 요구하고 있었다.
매우 놀랐다. 매출을 위해 부조리를 묵인하는 백화점에서, 대기업에 맞서 현수막을 건 노동자들의 투쟁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더불어 '연장 영업의 문제점을 많은 사람이 공유하고 있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프랑스의 대규모 점포는 무조건 일요일에 쉰다. 또한 이탈리아에는 노동자의 과도한 노동 시간을 막기 위해 무조건 일요일과 공휴일을 휴일로 지정한다. 이에 반해 한국의 유통업계 처우는 너무나도 열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