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장 영업 등 유통업계의 열악한 처우가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백화점 노동자들은 어떻게 일할까요? 백화점에서 2년간 일한 경험으로 '백화점의 오늘'을 조명합니다. [편집자말] |
지난 5월의 일이다. 한 백화점 직원이 토로했다. 고객들이 환불 기간이 지난 물건을 가져와 환불해달라고 해서 힘들다고. 그러자 옆에 있던 다른 직원이 "고객들이 몰라서 그러겠어? 알면서 그러는 거야"라고 했다. 또 다른 이는 "큰소리만 내면 다인 줄 알아"라고 푸념했다.
모든 고객이 그런 건 아니지만, 구매한 지 1년이 넘은 옷을 들고 와 새옷이라면서 교환해달라는 분도 있다. 또 어떤 분은 태그를 떼어냈으면서도 "환불해달라!" 이렇게 소리를 지르기도 한다.
나 역시 '고성 공격'을 많이 당했다. 하루는 어떤 할머니께 큰 사이즈의 옷을 추천했다. 그분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매장에서 엄청 소리를 질렀다. 또 한 중년여성 손님은 내게 '파는 물건을 잘 모른다'며 큰소리를 냈다. 그런 고객이 떠나고 날 때면 매니저는 내게 "너무 신경 쓰지 마. 원래 그런 사람이야"라고 얘기해줬다.
순간 눈물이 날 것 같았지만, 차마 매장에서 눈물을 흘릴 수는 없었다. 마스크를 코끝까지 올리고 다른 손님을 맞았다. 이런 사연이라도 하소연하고 나면 유통업계 선배들은 늘상 이렇게 말했다. "옛날에 비하면 나은 거야. 그때는 완전 종 취급이었어."
백화점에게 '고객'이란
최근 카페나 영화관에 가면 '지금 응대하고 있는 직원은 누군가의 가족입니다'라는 문구를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도 이런 안내가 나온다. 백화점 역시 감정노동이 주를 이루는 곳이지만 이곳에선 어떠한 보호장치도 찾을 수 없다.
책 <백화점에는 사람이 있다>에는 한 손님에게 "이따 저녁에 칼을 들고 찾아갈 것"이라고 협박을 당한 한 직원의 이야기가 소개된다. 그날 그 직원은 매장에서 벌벌 떨고 있었다고 한다. 이 사례를 보고 왜 노동자들이 무방비로 폭언과 폭행에 노출되는지 주목해야 한다.
백화점의 제일 가치는 매출이다. 매출을 올리기 위해서 제일 우선으로 모셔야 할 대상은? 당연히 고객이다. 한편으로 매장 직원들이 고객에 갑질 피해를 입어도 백화점은 손해를 보지 않는다. 행여나 고객이 본인 과실로 파손된 물건을 교환·환불 해달라고 하거나 수선이 되지 않는 물건을 가져와서 무턱대고 해달라고 따질 때도 백화점의 손해는 없다. 여기엔 입점 브랜드 본사와 매장의 손해만 있다.
고객을 상대하는 데 스트레스를 받아 직원이 그만뒀다면? 역시 백화점의 손해는 없다. 직원을 새로 구해야 하는 매장 매니저의 손해만 있다. 백화점에게 고객은 매출은 올려주지만, 손실은 입히지 않는 '고마운' 존재다. 구조가 이러니 백화점은 굳이 나서서 고객들과 부딪히고 매장 직원들을 보호할 필요는 없다.
"더 친절하면 좋겠다"는 말... 현장에선 상처가 곪아터지고 있다
통상 고객들의 불만은 백화점 사무실로 접수된다. 사무실 직원들은 고객들로부터 받은 불만 혹은 문제제기를 매장에 전하는데, 이 과정에서 매니저는 "직원들이 더 친절하면 좋겠다" "직원 교육을 더 시켜라"는 꾸중을 듣곤 한다. 사무실 직원이 왜 이런 불만이 제기됐는지 직원들에게 묻는 경우도 있지만, 결론은 같다. 직원들에게 잘못이 없다는 것을 알아도, "더 친절해지라"는 말만 할 뿐이다. 물론 '힘내라'는 위로도 있다. 그러나 보호 조치 없는 위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다.
나와 함께 일했던 매니저 A는 매우 친절했다. 다른 백화점 동료들은 그런 A를 보면서 "난 갑질하는 진상 고객이 왔다 간 다음엔 저렇게 못 해"라고 말하곤 했다. 늘 친절한 사람은 드물다. A도 감정노동의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이며 일했을 뿐이다.
고객의 '갑질'은 부정적인 영향을 낳는다. 직원의 사기가 떨어짐은 물론이고, 매장 전체 분위기에 영향을 끼친다. 고객의 까칠한 말투와 행동은 백화점 전체 노동자의 행복도를 낮춘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를 방지하기 위해선 '사람 대 사람'으로 서로를 존중해야 한다.
동시에 노동자들이 무방비로 폭언·폭행에 노출되지 않게 백화점 측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매장마다 '직원을 존중해달라'는 안내판을 걸거나, 안내방송을 하면서 말이다. 폭언 등의 정도가 심할 경우엔 보안요원이 나서서 제지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안내방송은 언제나 "고객님들의 안전한 쇼핑을 위해 안전요원이 상시 대기하고 있습니다"라는 말만 나온다. 백화점은 안전한 쇼핑 외에도 안전한 일터를 위해 힘써야 한다.
노동자가 갈려나가는데 언제까지 백화점은 반짝반짝할 수 있을까
비교적 어린 나이에 백화점에서 일하던 내게 선배들은 "여기 일은 힘드니 다른 일을 알아보라"고 조언하곤 했다. 내가 만나 본 백화점 노동자들은 백화점에서 일하면서도 백화점을 떠나고 싶어 했다. 공교롭게도 지난 기사가 나간 뒤 포털 등에 달린 댓글 중 상당수도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네가 떠나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실제로 떠난 사람들은 꽤 많다. 상처가 나도 맨살로 버텨야 하는 상태로 굳이 버텨가며 일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일 것이다. 자연스럽게 백화점 노동자의 근속 연수가 짧아질 수록 전체적인 숙련도는 떨어지고, 백화점은 불안정해질 수밖에 없다. 숙련된 노동자가 있어야 고객들도 만족스럽게 쇼핑할 수 있다. 사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내가 직접 본 2년간의 백화점은 개선이 없어서 하는 말이다.
백화점은 당장 고객들이 지갑을 여는 '오늘'만 보고 사는 걸까. 부디 지속가능한 '내일'까지 내다보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