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를 마시며 글을 쓰다보니 로스터가 되었습니다. 이야기를 섞어 커피를 내립니다. [기자말] |
저는 간혹 로스팅을 마치면 밖으로 나섭니다. 로스터기의 뜨거운 열기를 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로스팅을 마친 커피가 제대로 완성되었는지 확인하고 분석하기 위해서죠. 소나기가 그치고 뙤약볕이 떨어지자마자 매미가 울기 시작합니다.
컵을 들고 밖으로 나가는 건 저의 오랜 습관입니다. 로스팅을 진지하게 생각할 즈음부터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커핑을 하거나 맛을 보는 과정에서 더 정확하게 맛을 봐야 할 때 밖으로 나서곤 했습니다.
여름은 에어컨 때문에 건조하고 겨울엔 온풍기 때문에 건조해 비강이 충분히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면, 저는 그때마다 잔을 들고 밖으로 나서곤 했습니다. 밖으로 나가는 동안 커피는 조금 식는다 해도, 제 감각기관이 회복되는 만큼 더 정확한 이해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문밖의 커피 맛은 또 다르다
많은 커피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또 원래 많이 마시면서 분석을 하지는 않기 때문에... 무심히 지나다니는 사람들 시선에 보면, 웬 멀대같은 남자가 영업하듯 에스프레소 잔을 들고나와 주위를 둘러보는 그림이 됩니다.
하지만 저는 그저 건조하기 때문에 문밖을 나선 것 뿐이죠. 먼저 숨을 크게 들이쉬며 분위기를 전환합니다. 숨을 쉬며 입과 코가 덜 건조해진 것을 확인하고 주변의 공기가 잘 느껴질 때면 들고 나간 커피를 맛봅니다. 야외의 공기와 함께 흘러들어오는 커피의 향이 잘 느껴집니다.
때로는 길의 냄새도 섞이겠지만, 그런 것에 휘둘리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에 밖의 향이 도드라지는 날이면 한번 슬며시 웃은 뒤 전에 하던 일을 이어갑니다. 입안에서 천천히 맛을 보며 확인하고, 또 지금의 맛을 기억해 봅니다. 주변을 한번 둘러보면서 고립되어 있지 않다는 기분을 느끼는 것도 좋습니다.
다시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어디쯤에선가 매미가 울고 있는 나무를 바라봅니다.
문득 '매미는 울기도 웃기도 할 텐데 울기만 한다고 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며칠 살지는 않는다 해도, 즐거운 일도 슬픈 일도 있을 텐데 늘 운다고만 하니 매미로선 얼마나 서러울까요.
사람의 관점에서 매미의 행동은 시끄럽기만 하고 한철 떼를 부리는 것 같겠지만, 매미에게도 제 나름의 즐거움도 있을 것이고 슬픔도 있어 음의 고저가 있고 리듬의 강약이 있지 않을까요.
들고 나간 커피를 들고 나무의 곁을 조금 걷습니다. 나무뿌리 근처에 아직 날개가 돋지 않은 어린 매미가 열심히 나무를 타고 있습니다. 아직은 울지도 못하고 웃지도 못하는 갈색 매미가 나무줄기를 따라 느릿느릿 상승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대로 며칠이 지나면 나뭇잎 아래에 잘 숨어 울기도 웃기도 하겠지만, 아무튼 지금은 끙끙거리는 소리도 내지 못하고 나무를 열심히 오르고만 있습니다. 영문도 모르고 낑낑거리며 교과서를 외우던 제 어린 시절마저 떠올라 괜히 더 안쓰럽게 보입니다.
언젠가 저 매미는 숨을 쉬겠죠. 지금 제가 즐기는 이 공기를 함께 즐기며 노래할 겁니다. 그때는 일상에 지친 저보다 더 크게 즐거워하기도 하고 우리가 늘 답답한 여름이라 부르는 계절을 가슴을 활짝 펴고 최선을 다해 들이킬 것을 생각하며 괜히 응원도 해 봅니다. 그리고 인간이 누리는 조금은 긴 생이, 실은 진정한 아름다움을 퇴색시키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이제 들고 나간 한 잔의 커피가 다 떨어졌습니다. 로스팅은 잘 되었고 저는 또 다음 일을 하러 떠나야합니다. 매미는 울기도 웃기도 하면서 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