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포커스>는 언론계 이슈에 대한 현실진단과 언론 정책의 방향성을 모색해보는 글입니다. 언론 관련 이슈를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고 토론할 목적으로 민주언론시민연합이 마련한 기명 칼럼으로, 민언련 공식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기자말] |
요즘 날씨를 어떤 표현으로 단정 지어 말할 수 있을까? 이상스럽다거나 변덕스럽다는 표현으로는 한참 부족해 보인다. 기상청이 7월 26일 '장마 종료'를 선언했지만, 당일 일부 지역에선 '호우 특보'가 발효될 정도로 큰비가 내렸다. 한 달 넘게 이어지던 장마가 이제 끝났구나 한숨 돌릴까 싶었는데, 낮 최고 기온이 35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는 중이다.
낮 동안 햇볕이 피부를 공격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는 표현에 수긍이 갈 정도로 무섭게 무덥다. 한쪽은 뜨겁고, 다른 한쪽에선 대야로 물을 퍼붓는 것처럼 강한 비가 쏟아지기도 한다. 무덥고 습해지면서 불쾌지수가 높아지고 더 덥게 느껴지는 상황을 반복한다. 밤 최저기온이 25도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 열대야까지 기승을 부리면서 이제까지 알던 날씨와는 완전히 달라졌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는 요즘이다.
'지구 열대화 시대'가 시작됐다
기후 위기는 특정 지역, 특정 국가에 피해를 집중시키는 문제가 아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올해 7월이 역사상 가장 더운 달이 될 것이라는 세계기상기구(WMO)의 분석을 언급하면서 기후 위기에 대한 국제적 노력을 주문했다. 전 세계적으로 폭염과 폭우가 계속 계속되는 상황을 두고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 시대가 끝나고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 시대가 도래했다"고 말했다. 지구가 따뜻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끓기 시작했다는 의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재앙이 세계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유럽 지중해 일대 연안에는 고온으로 인한 산불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극도로 건조한 날씨에 강풍이 불면서 산불 발생 최적의 조건이 되고 있다. 이탈리아 일부 지역에선 기온이 47도를 넘어섰다고 한다. 미국 플로리다 바다 온도가 38.4도로 측정됐다. 뜨겁기 정도가 목욕탕 온탕 정도라는 의미다. 이미 그 지역 산호 같은 경우 집단폐사 된 게 확인됐다. 아시아 지역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에선 폭염 때문에 가축이 줄줄이 폐사해 식량 위기 가능성이 거론됐다. 일본 오사카는 낮 최고기온이 39.8도에 달했다.
뜨거워진 지구에 대한 경고가 새롭지 않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지금 상황은 시작일 뿐이라는 점에서 심각함을 더한다. 앞으로 더 덥고, 더 오래 더워질 전망이다. '더워 죽겠다'라는 말이 흔한 관용구만은 아니란 소리다.
기후 위기를 대하는 언론의 자세
기후재난은 사회적 불평등과 연관성이 높다. 지금처럼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시기에는 온열 질환에 대한 주의와 대비가 필수적이다. 폭염은 태풍 피해와 달리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특징이 있어서 '침묵의 살인자'라고 불리는 기후재난이다. 온열 질환 사망자 상당수가 병원에서 발견되기보다 가정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아 집계가 쉽지 않다. 그런 탓에 심각성을 부각하기도 쉽지 않다. 게다가 질환자 대부분이 고령자이거나 저소득자, 만성질환자 등 취약계층에 집중된다. 폭염을 피하거나 이겨낼 수 있는 조건 혹은 환경이 피해 정도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기후재난으로 인한 인명피해를 '사회 불평등'의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여름철 평균기온과 폭염일수 모두 증가 추세다. 폭염 피해에 취약한 계층을 위한 사회적 안전망을 세심하게 짜고 냉난방 지원 등을 강화해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시원한 물을 자주 챙겨 먹고 더운 곳에서 장시간 일을 하지 않아야 한다는 식의 개인 태도의 변화만 강조할 것이 아니다. 기업과 정부가 인식과 정책을 기후재난을 대비해 선제적으로 바꿔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언론은 기후 위기에 대한 인식의 공유와 정책 의제 설정에 중요한 책무를 안고 있다. 언론은 요즘과 같이 이상기후가 쉽게 감지될 때 기후 위기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효과가 있다. 자주 발생하거나 심각해진 기후재난의 특성과 내용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다. 기후재난에 대처하는 개인의 태도 변화를 중요하게 강조하면서 동시에 국가적 정책과 기업의 적극적인 관여가 없다면 피해를 예방하기란 쉽지 않다는 관점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
언론은 기후재난을 사건·사고 다루듯 단기적 피해 사실에 집중하기보다는 장기적인 대책 마련이 필요함을 짚어주어야 한다. 피해 규모에 주목하고 빠른 복구에 단기적인 관심을 몰아세우는 보도는 기후재난을 특정 지역, 특정 사람의 일로 여기게 만들기도 한다. 기후 위기로 인한 피해는 예외가 없다. 언제든 내가, 내 가족이 피해를 당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할 보도가 필요하다. 기후 위기에 대한 대중의 인식 변화를 지속하게 하고 경제적‧정치적 대응을 촉구하게 보도해야 할 이유가 분명해지고 있는 '지금'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김수정(민주언론시민연합 정책위원)입니다. 이 글은 민주언론시민연합 홈페이지(www.ccdm.or.kr), 미디어오늘, 슬로우뉴스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