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 '다단계 하도급' 등 노동-자본의 관계는, 누가 진짜 사장인지 규정해왔다. 때로는 '노동자'가 아님이 탄압의 구실로 작동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으로 모여 진짜 사용자를 밝혀왔고, 전 사회적으로 안전운임제나 8시간 노동제 등을 쟁취해왔다. 자본이 책임을 내팽개친 상태에서 책임자를 특정하고 투쟁을 조직해온 세 노동조합의 고민과 과제를, 대담회를 통해 들어보았다.
대담회는 7월 17일, 박연수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정책기획실장, 송찬흡 전국건설노동조합 건설기계분과위원장,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 위원장과 함께 진행했다.
- 각 현장 노동자들이 놓인 고용 구조가 어떻게 되나요
박연수: 화물의 경우 물류 산업을 외주화시킨 대기업을 중심으로 운송사-주선사-화물 노동자까지 내려오는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가 한 축에 있습니다. 다른 한 축으로 '떴다방'이라고도 부르는데, '화물맨'이나 '24시콜' 등 어플로 물량을 잡아 배차하는 구조가 있습니다. 어쨌거나 물량 배치 과정이나 화물 노동자들의 노동 조건을 결정하는 진짜 사장은 가려져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경우 현대글로비스나 현대자동차, 철강 산업의 경우 포스코나 현대제철 등 화주들이 진짜 사장이에요. 그런데 어플 배차 방식에서는 화주를 찾기가 특히 쉽지 않습니다. 현장에서 '똥짐'이라 부르는 게 있는데요. 어디서 누가 출발했는지도 모른 채, 사무실에 전화 하나 두고 물량을 넘기며 수수료를 떼는 수많은 영세 업체들을 거치다 보면 단가의 5~60%가 깎인 상태로 배차됩니다.
송찬흡: 건설노조 기계분과위원회에는 덤프, 레미콘 등 다양한 기종을 다루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저희도 그날그날 배차받거나, 지인 통해 배차받았던 경우가 많았어요. 그리고 '똥쟁이'라고, 중간에서 우리 임금을 갈취해간 자들을 부르는 말인데, 몇 단계의 하도급을 거치며 임금을 떼가는 경우가 빈번했어요. 건설사와 노동자 간 건설기계임대차계약서 작성을 의무화시키는 등의 투쟁을 통해, 1일 8시간 노동과 유류비 건설사 부담 등을 법제화시켜나갔습니다. 그렇게 다단계 하도급을 줄여왔는데, 현재 다시 늘어나는 상황입니다.
구교현: 라이더들의 경우 배달의민족이나 쿠팡, 요기요 등 플랫폼 대기업과 위·수탁계약을 맺는 방식이 한 축으로 있고, 동네마다 있는 일반 배달 대행사와 맺는 방식이 다른 한 축으로 있습니다. 둘 다 중개의 이름으로 플랫폼 기업들이 엄청난 수수료를 떼가는 방식이고, 이익을 얻는 자가 명확하죠. 플랫폼 기업은 라이더들이 자율권이 있다고 얘기하며 종속성을 부정해왔어요. 하지만 라이더들은 배달의민족이 일방적으로 꽂아준 배차 안에서만 배차 수락 여부를 결정합니다. 반복해서 거절하면 배차를 지연시키기도 하고요. 실시간으로 바뀌는 배달료도 플랫폼이 알아서 정하고 있습니다.
- 진짜 사장을 규명하고 투쟁을 조직하는 과정에서 취했던 전략이나 어려웠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박연수: 저희는 물류라는 공급 사슬 전체를 조직해나가면서, 이 사슬의 정점에서 노동 조건을 포함한 산업 전반을 좌지우지하는 '경제적 사용자'를 대상으로 한 투쟁을 중요하게 보고 있어요. 다른 한 축으로는 제도적 요구안 투쟁이 있습니다. 자영업자로 규정되기에 노동3권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 속, 운임 결정에 대한 법적 장치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 맥락에서 안전운임제 투쟁을 해왔어요.
안전운임제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어요. 첫 번째는 화물 노동자 내부 격차의 감소입니다. 노조로 조직되어 있거나 경제적 사용자의 지불 능력이 안정적인 조건에 놓인 노동자와 어플로 배차받는 노동자 사이 격차가 꽤 큽니다. 안전운임제가 시행된 품목은 제한적이었지만, 다른 산업에서도 이를 기준 삼아 진짜 사장한테 요구하고 합의할 수 있었고, 다른 조건의 노동자들이 같이 싸울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면서 산업의 구조 변화를 도모할 계기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장시간 노동을 줄인 거예요. 운임이 올라감에 따라 장시간 노동 문제가 굉장히 심각해졌는데, 과로와 안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연결고리가 생겼어요.
송찬흡: 저희가 건설노조 설립하면서 제일 중요하게 생각했던 게 법제도를 바꾸는 거였습니다. 법제도 변화로 특수고용노동자 노동3권 보장이나 불법 다단계 하도급 철폐를 이뤄내는 게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저희가 2007년 4개 분과가 건설노조로 합쳐지면서 노동조합 필증을 받았어요. 그런데 다음 해 노동부는 '노동조합 설립신고사항 변경신고증'을 내주지 않았습니다. 특수고용직인 덤프나 레미콘 차주들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였어요. 10년 넘게 싸웠고, 2021년이 되어서야 교부받았습니다.
이런 공격은 탄압 국면에서 다시 나타났어요. 그동안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철근콘크리트사용자연합회 등 사용자들을 테이블로 앉히며, 중앙 임단협을 통해 노동 조건을 결정해왔어요. 하지만 작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는 건설노조 부산건설기계지부가 노조가 아닌 사업자 단체라며 과징금을 부과했어요. 사용자 단체인 타워크레인협동조합은 이를 구실로 노조와 교섭하지 않겠다며 임단협을 지연시켰습니다.
구교현: 저희는 노조법상 노동자로 인정되었고, 이는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오래된 투쟁의 결과였다고 생각해요. 저희처럼 종속성이 높았던 업종에 대해 노동부가 선별적으로 노동자성을 인정한 거죠. 어쨌거나 필증이 나왔기에 플랫폼 대기업은 교섭을 거부하지는 않는데, 교섭 테이블에서 의미 있는 말을 하나도 하지 않고 있어요. 이를 어떻게 돌파할지 고민입니다. 최근엔 일반 배달 대행사 대상 집단 교섭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시흥에서 시도하고 있는데 업체들이 잘 안 나오고 있어서 선전이나 집단행동 등을 해보려 합니다.
- 노동조합 탄압을 마주하며, 노동자들이 위험 작업을 거부하지 못했던 경우가 더 늘었나요?
박연수: 윤석열 정부가 안전운임제를 일몰시켰죠. 이에 따라 운임은 2~30% 하락했고 노동 시간이 증가했어요. "안전운임제 이제 없어졌다"며 예전의 방식으로 경제적 사용자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돌아가는 방식으로 회귀하고 있어요. 교통사고로 위장된 산재가 많을 거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 드러나는 산재는 물품 상·하차 도중 발생하는 사고입니다. 이전에는 안전 운임 부대 조항으로 포함되어 위험 작업을 거부할 수 있었지만, 그런 게 없어지고 노조의 힘이 현장에서 잘 안 먹히는 현 상황에서는 거부하지 못 하고 있어요.
송찬흡: 노동조합 활동을 통해 현장 조직력을 강화해나갈 땐 조합원들도 현장에서 팀별로 같이 일했어요. 지금은 노동조합을 부정하니까 개인적으로 가서 일하고, 노조 조끼도 못 입게 해요. 하소연할 데도 없고, 임금 체불도 늘어났어요. 노동조합이 현장에서 위험 노동을 제지하거나 산재 신청도 적극적으로 해왔는데, 그런 활동도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법으로 보장된 작업중지권도 실제로 하면 내일부터 오지 말라고 하기도 해요.
- '법상 노동자다, 아니다'라며 노동자를 분리하는 전략은 탄압 국면에서 특히 잘 통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문제의식과 함께 각 노동조합이 주목하는 과제를 듣고 싶습니다.
박연수: 분리 전략은 결국 포섭과 배제를 명확히 하는 것 같아요. 법외 노조인 상태에서 법내 노조의 길이 열리는 업종과 그렇지 못한 업종 사이에서 생겨나는 균열이 저희 내부에서도 보여요. 그동안 노조가 선제적으로 비정규직이나 특수고용노동자들을 포섭하는 운동을 만들어왔던 거잖아요. 한정적으로 울타리를 제공하겠다는 자본의 전략을 넘어, 다양한 형태의 노동자들을 포괄하여 관철할 수 있는 요구안을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화물연대 차원에서는 그게 안전운임제였다고 생각합니다. 정부와 자본이 그동안 내팽개친 부분을 드러내고 바꾸자 주장하는 역할을, 저희가 계속해왔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요즘은 노동자들의 단결을 저해하는 수많은 조건이 규정되고 현장을 찢어놓는 조건에서, 우리 스스로가 거기서 벗어나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송찬흡: 올해 7월 1일부터 스카이, 살수차, 카고크레인 등 화물형 건설장비 노동자에게도 산재보험이 적용됩니다. 이처럼 탄압 속에서도 성과가 있었어요. 그리고 화물연대도 함께하고 있는 민주노총 특수고용노동자 대책회의에 참여하면서 노조법 2, 3조 개정 등 더 많은 특수고용노동자와 연대하는 투쟁을 해나가려 합니다.
구교현: 현 정부의 노동 정책을 보면 노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아도 되고, 노동자들의 기본권 요구를 방치해도 무방하다는 신호를 주는 거 같아요. 이것이 플랫폼 기업의 대응에서도 실제로 나타나고요. 최근 4대 보험을 모두에게, 제대로 보장하라고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갈아 넣어 일할 수 있는 노동환경을 플랫폼 자본이 만들어놓았잖아요. 저희는 노동 시간 규제도 적용받지 못 하고 있고, 조합원 중 투잡 뛰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모든 노동자의 노동 시간을 줄일 수 있는 규제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들이 얘기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해결하기 위해선 노동조합이 필요해요. 노동조합을 잘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윤석열 정부 스스로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조건희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8월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