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명관의 유명한 소설 <고래>를 읽었다. 아니 들었다고 해야 할까. 책을 읽었다기보다는 한 편의 장대한 이야기를 들은 느낌이다. 탁월한 입담을 지닌 작가가 설화, 민담, 무협지 등의 장르를 넘나들며 독자들에게 맛깔나게, 때로는 애달프게 풀어내는 서사에서 눈을 아니, 귀를 뗄 수 없었다. 격동의 현대사를 관통하며 파란만장하고 굴곡진 삶을 살다 간 인물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책의 주요 캐릭터는 모두 여성이다. 국밥집 노파와 그녀의 딸 애꾸, 금복과 그녀의 딸 춘희. 이들 네 명의 삶은 어딘지 모르게 닮은 구석이 있다. 우선 노파와 금복. 이들은 탐욕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다. 사람들에게 갖은 무시와 천대를 받으며 살던 노파는 세상에 복수하기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하지만 그렇게 번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죽고, 이는 우연한 계기로 금복의 손에 들어가게 된다.
죽음에서 도망치려던 금복의 삶
어린 시절 동생과 엄마의 죽음을 목격한 이후, 도망치듯 고향을 떠난 금복은 한 부둣가 마을에 도착해서 생전 처음으로 고래를 보게 된다. 드넓은 바다를 유영하며 힘차게 물을 뿜어 올리는 그 거대한 동물에게서 죽음을 넘어선 영원한 생명의 이미지를 본 그녀는 그 이후 끝없이 거대함에 집착하게 된다. 노파의 돈을 밑천 삼아 각종 사업을 벌이고 점점 규모를 키워가다 마침내 평생의 숙원이던 고래 모양의 호화로운 극장을 짓는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신의 생물학적인 성을 버리고 생명의 근원이자 궁극이라고 생각했던 남성으로 거듭나기에 이른다.
금복의 삶은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것의 연속이었다. 엄마의 죽음과, 그녀를 따라다니는 사자(死者)의 망령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화려한 삶을 추구하며 과거를 잊고자 안간힘을 썼지만 그녀가 이룬 영화는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한 순간에 화재로 사라져 버린다. 점점 더 많은 돈과 욕망을 좇으며 원래 자신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파멸로 치닫는 금복을 보며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세속적 성공의 정점에서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고 죽음을 앞둔 순간, 그녀는 자신의 딸 춘희와 붉게 물든 고향 마을의 낙조를 떠올리며 눈물을 흘린다. 죽기 직전에서야 비로소 진정으로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달은 회한의 눈물이었다.
금복의 삶은 화려한 허상에 불과했지만 딸인 춘희는 그 반대라고 볼 수 있다. 말을 못 하는 데다 자폐아인 그녀는 세상과 소통하지 못하는 대신 내면에 자신만의 고유한 세계를 가꾸어 간다. 사람들로부터 소외되어 외롭게 살아가지만 어린 시절 코끼리 점보와 나눴던 교감, 고달픈 인생에 잠시나마 찾아왔던 행복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아무도 없는 공장에서 홀로 벽돌을 굽고 또 굽는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다시 찾아와서 평화로웠던 지난 시절로 돌아가길 바라는 염원에서 시작했던 행위가 나중에는 그녀의 삶이자 정체성이 된다.
언젠가부터 그녀는 아이뿐만 아니라 그녀가 알고 있던 사람들, 그녀가 겪은 일들, 언젠가 눈앞을 스쳐간 풍경들을 그림에 담아내기 시작했다. 그림은 그녀에게 커다란 위안이 되었다. 그녀는 벽돌 위에 그림을 그려 구워낸 다음 나란히 늘어놓고 앉아 하염없이 바라보는 것을 좋아했다. 그림을 보는 동안만큼은 고통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었다. 그녀는 벽돌 위에 점점 더 많은 기억들을 담아내기 시작했다. 개망초와 뱀, 메뚜기와 잠자리, 고라니 등 주변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대상에서부터 대장간의 모루, 벽돌을 실어 나르던 트럭 등 그녀의 인생을 스쳐간 온갖 물상들, 다방의 풍경과 평대역에서 날뛰던 점보의 모습 등 수많은 장면들이 그 대상이 되었다. - 515p
그렇게 쇠락한 평대의 벽돌공장에서 홀로 벽돌을 찍어내며 생의 마지막을 보내던 춘희 앞에 어느 날 어린 시절의 동무였던 코끼리 점보가 홀연히 나타난다.
그녀가 힘겹게 눈을 떴을 때, 눈앞엔 꿈인 듯 생시인 듯 코끼리 점보가 서 있었다. 그의 주변에선 여전히 하얀 광채가 뿜어져 나왔으며 그의 몸뚱이는 빛에 가려져 그저 둥근 원형의 빛만 느껴질 뿐이었다. 점보는 그녀 앞에 다가와 어서 타라는 듯 등을 내밀었다. - 529p
점보는 계속 날아갔다. 얼마나 빠른 속도인지 알 수 없었다. 그들은 곧 안드로메다 성운 근처 어디쯤을 날고 있었다. 하지만 움직임이 전혀 느껴지지 않아 마치 그 자리에 멈춰 있는 것처럼 보였다. 어느 순간, 춘희와 점보의 몸은 투명해지는 동시에 빛이 떨어져 나가듯 점점 지워지고 있었다. 그것은 마치 물속에서 설탕이 녹는 것과 같았다. 춘희가 놀라 물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린 사라지는 거야, 영원히. 하지만 두려워하지 마. 네가 나를 기억했듯이 누군가 너를 기억한다면 그것은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 - 532~533p
죽음을 맞이한 춘희는 점보와 함께 광대한 우주로 나아간다. 그녀의 세계는 육신을 벗어나 드넓게 확장되고 비로소 그녀의 엄마인 금복이 그토록 바랐던 거대한 생명의 근원으로 회귀하게 된다.
그리고 춘희가 자신의 생명을 소진해 가며 구운 벽돌은 훗날 금세기 최고의 건축물이라고 불리는 대극장 건설에 사용되고 그녀는 '붉은 벽돌의 여왕'이라는 칭호를 얻는다. 잊혔던 그녀의 존재는 화려하게 부활하고 한 인간의 생이 오롯이 담긴 벽돌은 그 자리에 남아 후대의 사람들에게 두고두고 그녀의 이야기를 전한다.
소설 뒤 남은 질문
책을 덮고도 한동안 여운이 지속되었다. 그리고 한 가지 질문이 떠올랐다.
'나는 무엇을 추구하며 살아야 할까?'
소설 속 세계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보여준다. 고요한 산골마을이었던 평대에 산업화의 물결이 밀려들면서 사람들의 삶은 급속도로 바뀌어간다. 그들은 괜히 바빠서 허둥거리고 밥을 먹어도 허기가 지고 마음이 헛헛해서 끊임없이 소비를 하지만 공허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던 소박하고 안온한 삶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물질만능주의가 횡행하고 성공지향적인 삶이 정답처럼 여겨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점점 여유와 웃음을 잃어가고 있다. 그리고 변화의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소외되는 사람들도 늘어간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나는 그 답을 춘희에게서 찾고 싶다. 세속적 기준으로 볼 때는 실패한 삶을 살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내면세계를 누구보다 아름답게 꽃 피워냈고 그것은 후대로 계승되어 사람들에게 오래도록 회자된다.
사람은 하나의 세계라는 말이 있다. 아름다운 사람이 많아질수록 아름다운 세상에 좀 더 가까워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주변이 혼탁하고 어지러워도 나다움을 지키며 자신의 세계를 아름답게 완성해 가는 것, 그 과정에서 실패하고 무너질 수도 있지만 작은 의미라도 발견하며 계속해서 성장해 가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지녀야 할 삶의 자세가 아닐까.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책 속의 문장을 덧붙이며 글을 맺는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행동에 의해 우리가 된다. - 238p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브런치스토리와 블로그에 함께 게재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