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현지에서 75세 사부에게 정원사 일을 배우는 65세 한국 제자의 이야기.[기자말] |
일이 더 빡세졌다. 나이든 제자가 얼마나 견디나 시험중인지 오늘은 꼭두새벽 5시 출근이다. 항상 이른 건 아니다. 이동거리에 따라 출근시간이 달라진다. 이날 작업은 키타큐슈(北九州)라는 곳이다. 70킬로미터 떨어진 곳.
규정속도는 반드시 지켜야 하니 왕복 4시간이나 된다. 그렇게 원거리 작업시간을 맞추다 보면 출근이 5시로 정해지는 거다. 아침에 일어나니 어둑하다. 대충 차리고 4시 50분에 사부댁에 도착했다. 준비를 마치고 있던 사부가 경트럭에 나를 태우고 바로 출발한다.
운전은 항상 사부가 한다. 나도 국제면허를 만들어오긴 했지만 핸들을 맡기지 않는다. 이곳은 차선이 반대여서 위험하기 때문이다. 주행은 앞차를 따라가면 되니 괜찮은데 한산한 사거리에서 회전할 때 가끔 문제가 생긴다. 상대 차선이 비어 있는 경우 무의식 중에 역 진입하게 되는 거다. 평소 우측통행 습관이 자연스레 나온다. 이건 운전실력과 별개다. 사람 습관 무섭다.
사부가 일찍 일어나서 피곤할테니 눈을 더 붙이란다. 시간이 이른 데다 몸도 피곤해서 비몽사몽간에 기타큐슈에 도착했다. 주택가에 자리잡은 아담한 장방형 정원. 지대가 꽤 높은 곳이다. 계단을 올라 정문을 들어서면 오른쪽으로 바로 현관이다.
일본에서 풍경을 보시려거든
이 집은 전정(前庭, 집채의 앞에 있는 뜰)이 없다. 전정이 없으니 어프로치도 안 보인다. 현관을 지나 10미터쯤 앞으로 가면 주정(主庭)이 펼쳐진다. 아래 쪽 도로에서 보자면 담 너머로 정원의 스카이 라인만 겨우 보이는 구조다. 본의 아니게 정원주만을 위한 풍경이 됐다.
일반적으로 정문에서 현관까지 구획이 전정이다. 그 통로나 주변까지 따로 떼어 어프로치라 부르기도 한다. 인간관계도 어프로치가 잘 돼야 뒤끝이 순조롭지 않던가. 정원에서도 어프로치는 집의 인상을 좌우하는 중요한 장소라서 특히 신경을 쓰는 곳이다. 어프로치를 지나 현관에 다다르면 현관을 포함한 비가림 공간을 현관포치라 부른다. 현관포치도 그집 분위기에 따라 다양하게 장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용어는 공부의 시작이다. 어느 분야든 관련 용어가 있다. 현장에서 무슨 소린지 알아들으려면 부지런히 익혀두지 않으면 안 된다. 사전을 옆에 두고 공부하는 중이다. 관련 용어는 카타카나 투성이다. 외래어와 식물이름을 카타카나로 표기하게 돼 있으니 많을 수밖에 없다.
문물이 들어올 때 용어가 따라 들어왔으니 어쩔 수 없다. 게다가 이 사람들은 군정시절을 겪으며 미국 편향이 두드러진다. 일상용어는 물론 정원 관련 용어도 영어식 일본어가 판을 친다. 주차장이라는 말이 있는데도 카포토라는 용어를 저항감없이 쓴다. 둘은 같은 표현이되 뉘앙스가 다른 거다. 주차장이 시골 한적한 마을이라면 카포토는 도시 냄새가 난달까. 삶이 풍부해 질수록 표현이 다양해지는 거다.
흑송이 메인답게 응접실 약간 비켜선 오른쪽에 당당하다. 왼쪽으로 사루스베리(원숭이도 미끌어지는 나무, 백일홍)가 서 있고 그 아래쪽에 철쭉 가리코미가 있다. 가리코미는 보통 둥근달이거나 깎두기인데 이곳은 넓은 부정형 원으로 사루스베리를 받쳐주고 있다. 비울 곳은 비우고 채울 곳은 채워가며 몇 가지 수종의 나무로 구색을 갖춰놨다. 정원 외곽은 카시나무가 점점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다.
이 사람들 정원배식(나무배열)의 기준은 예로부터 부등변 삼각형이라는 큰 원칙이 있다. 대상이 되는 세 그루의 나무를 각각의 크기와 거리를 달리해 밸런스를 자연스럽게 맞추는 일본적인 구성이다. 앞에서 보는 모습도 부등변 삼각형이 돼야 하고 위에서 심은 위치로 봐도 부등변 삼각형이 돼야 한다. 입체적 부등변 삼각형인 셈이다.
어느 정원이나 꼭 같은 것은 아니다. 설계자의 의도나 현장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부등변 삼각형은 나무 배식은 물론 정원에 바위를 배치할 때도 쓴다. 일본에서 풍경을 보시려거든 부등변 삼각형 모양자를 하나 준비하시라. 어디서든 맞춰볼 수 있다. 풍경뿐이 아니다. 부등변 삼각형은 꽃꽂이에서 조차 통용되고 있는 조형구성의 만능 치트키다.
메인트리를 정하면 부목(副木)을 사선방향으로 심고 제3의 나무(対라 부른다)를 반대쪽에 심어 부등변 삼각형을 만든다. 세 그루의 나무는 위치는 물론 크기까지 부등변 삼각형이다. 부목은 메인트리의 1/2에서 2/3까지로 하고 제3의 나무는 부목의 1/2이다. 이렇게 부등변 삼각형으로 비중을 조절해서 자연에서 옮겨온 듯 균형을 잡게 된다.
세 그루의 나무를 돋보이게 한다든지 혹은 결점을 감추기 위해 아래 쪽 나무 뿌리근처에 작은 나무들을 심는다. 사부정원에서 내가 처음 작업했던 달덩이나 두부깎기가 그에 해당한다. 이 나무들도 이름이 있어서 각각 마에오키(앞에 둠), 히카에(조연;뒤에 둠)라 부른다.
또한 뒷쪽으로 미코시라는 배경나무를 심어 비로소 한 세트의 풍경이 완성된다. 물론 이건 기본중의 기본이다. 기본을 중심으로 수많은 응용이 만들어진다. 프로에게는 기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응용일 것이다.
한 세트의 풍경이 완성되면 그것을 메인으로 하고 다시 다른 세트들을 부등변 삼각형으로 배치해가면서 하나의 일본정원이 만들어진다. 그러니까 부등변 삼각형은 자연적인 균형을 대표하는 일본적 양식이다.
이 원칙이 지켜지지 않으면 어수선하고 산만해 보인다. 아무리 손질을 잘해놔도 이 사람들에게는 이뻐 보이지 않는 거다. 아름답게 느껴지려면 짜임새가 중요하다. 부등변 삼각형은 자연에서 얻은 짜임새다. 그 짜임새들이 곳곳에서 어우러지면서 비로소 그림같은 정원이 탄생한다.
부등변삼각형은 불규칙이라는 뜻이다. 세 변의 크기변화에 따라 다양한 모양이 만들어 지는 거니까. 그런데 부등변만 강조하다보면 불규칙을 지향하면서 다른 규칙에 사로 잡히게 되는 건 아닐까. 부등변이라는 규칙! 핵심은 규칙을 피하라는 뜻일게다. 부등변 삼각형도 수많의 자연의 모습중 하나일 뿐이니까. 자연에서 규칙은 부자연스럽다.
창의적인 일이 훨씬 재미있다
이 집도 30년 된 고객이란다. 흑송 전정이 주목적이다. 들른 김에 정원에 산재해 있는 철쭉 가리코미들도 다듬어 줄 계획이다. 정원에 도착하면 작업을 위해서 외부 콘센트를 찾아 전기줄부터 늘인다. 오늘은 사부와 나무 종류에 따른 역할 분담이다. 사부는 소나무 손질을 맡았고 나는 정원 여기저기 포진해 있는 철쭉 둥근달을 맡았다.
물론 소나무 손질이 정밀한 작업이라서 시간도 많이 걸리고 어렵다. 어려운 일은 사부몫이다. 여기저기 작업하다보니 바리캉 작업이 모양을 만드는 일이라 꽤 창의적이다. 소나무 손질은 어렵기도 하거니와 같은 작업의 반복이라 지루하다. 뭔가 창의적인 일이 훨씬 재미있다.
사루스베리 아래 부정형 가리코미를 다듬는데 특히 재미있었다. 외곽이 부드러운 굴곡으로 이루어진 데다 윗면 조차 평면이 아니었다. 작품을 창조하는 조각가처럼 손에 든 바리캉이 리드미컬하게 움직였다. 시간이 걸려도 힘든 줄 몰랐다. 완성해놓고 보니 또 얼마나 근사하던지.
작업에 사용하는 바리캉은 2가지다. 전기를 사용하는 것과 배터리를 사용하는 것. 전기 바리캉은 정원손질의 기본 도구다. 힘도 좋고 편리하다. 배터리 용 바리캉은 이제 막 포장을 푼 새 것이다. 양날이라 편리한데다 날도 작고 가벼워서 섬세한 작업이 가능하다. 금방 멈출 것 같더니 거의 2시간이나 버틴다. 전기로 모양을 다듬고 배터리로 마무리하니 딱 좋다.
어느 정원이나 마찬가지지만 요즘 정원관리는 소나무 순집기와 철쭉전정이다. 소나무 손질은 대개 봄, 가을로 나누어 진행된다. 봄철보다 가을이 손질도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린단다. 철쭉은 꽃이 진후 바로 자른다. 꽃눈이 생기기 전에 잘라야 다음해 꽃을 볼 수 있다. 사부는 고객별로 시기별로 모든 정원손질 일정이 머릿속에 좍- 정리돼 있다.
나무들을 다듬고 난후 발생한 부산물들을 마대에 담아 경트럭에 옮긴다. 도구까지 정리하고 나면 최종 마무리는 블로어가 담당한다. 블로어(현장에서 무브라 부른다)청소는 대개 내 몫이다. 늘 하는 일이라 요령은 잘 알고 있다. 정원전체를 조망하며 어디에서 시작해 어떤 방향으로 몰고가서 어디서 마무리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요즘은 익숙해져서 타짜의 백선생처럼 척보면 견적이 나온다.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입구에서 뒷쪽으로 하는 게 힌트다. 블로어 청소까지 마친 정원은 마치 이발소에서 다듬은 상고머리처럼 깔끔해진다. 이 사람들이 왜 정원사를 불러 손질하는지 알게 되는 순간이다. 때가 되면 머리를 깎듯 때가 되면 자연스레 정원을 손질하게 되는 것이다.
관습이란 묘한 것이다. 정원을 손질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머리를 기르는 나라 사람들(이 있다고 치자)은 깎은 것이 이상하 듯이 항상 깎는 나라 사람들은 긴머리가 부자연스럽다. 단지 그것 뿐이다. 이 사람들은 손대지 않은 정원은 뭔가 께름칙해서 견딜 수가 없는 것이다.
오늘 돌아오는 길에 사부에게서 들은 얘기 하나. 시에서 간단한 정원 관리 일을 노인들에게 교육시켜 일자리 만들기로 운영하고 있다. 그 일을 담당하는 곳이 실버센터라는 곳이다. 역사가 오래된 곳은 30년이 넘는단다. 요즘도 우후죽순처럼 여기저기 많이 생기고 있는 모양이다. 정원 없는 집이 없으니 일거리도 많을 수밖에 없다.
대개 센터 관계자가 나와서 견적을 내고 노인들을 투입하는 과정을 거친다. 투입된 노인들은 관록있는 전문가들이 아니니 실수가 생긴다. 놔둬야 할 것과 잘라야 할 것을 제대로 구분않고 막 자른단다.
그들이 아무리 잘 자른들 60년 된 사부 눈에는 막 자르는 걸로 보일 수밖에 없는 거다. 자르는 팀과 청소하는 팀이 다르니 일의 연결도 매끄럽지 않다. 결국 원성이 자자해 이런 말이 생겼단다. 시르바센타 고와이요!(실버 센터 무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