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장갑과 무릎 보호대를 찬 이태원 참사 유가족들이 국회를 향해 삼보일배를 했다. '둥둥둥' 북소리와 함께 죽비 소리가 울릴 때마다 유가족들은 빗물로 젖은 땅에 절과 기도를 올렸다. 국회 신속처리안건(패스트트랙)으로 지정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의 통과를 촉구하며 이들은 거세지는 빗줄기와 끈적이는 습기를 삼보일배로 통과했다.
10·29 이태원참사 유가족협의회·시민대책회의가 22일 오전 10시 29분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애오개역까지 3km 삼보일배 행진을 했다. '10·29 이태원참사 특별법을 제정하라'는 피켓을 든 시민들과 4대 종단(천주교·개신교·불교·원불교) 종교인이 유족들을 뒤따랐다. 10시 29분은 이태원 참사가 발생한 날(10월 29일)을 뜻한다.
이날 서울광장 분향소에서 애오개역까지 3km를 행진한 유가족들은 오는 23일 오전 10시 29분 애오개역에서 마포역까지, 24일 오후 1시 59분 마포역을 출발해 국회 앞에서 300일 추모문화제를 진행한다.
특별법 통과 촉구 삼보일배... "형제들의 억울함을 밝혀주소서"
이날 삼보일배는 이태원참사 300일(8월 24일)을 앞두고 진행됐다. 이정민 유가족협의회 운영위원장(고 이주영씨 아버지)은 삼보일배에 앞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국회 농성 중 단식과 행진으로 이뤄낸 신속처리안건(6월 30일)은 그걸로 끝이었고, 행안위 위원들은 논의조차 하지 않고 특별법을 방치하고 있다"며 "우리가 지키고 이뤄내야 할 특별법을 위해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담아 한 걸음 한 걸음 국회로 향할 것"이라고 말했다.
기자회견 후 행진단 80여 명은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시작으로 삼보일배에 나섰다. 유가족들은 흰 면장갑과 검은 무릎보호대를 찼고, 그 양옆으로 피켓과 현수막을 든 시민들이 줄지어 섰다. 스님이 죽비를 한 번 치자, 행진단은 무릎을 꿇고 3초간 절을 올렸다. 삼보일배 중 그치고 내리기를 반복하던 빗줄기가 다시 굵어졌다. 50m에 이르는 대열 선두에 있던 시민대책위 소속 박민주씨가 목소리를 높였다.
"참사 당일 이태원에 인파가 몰릴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국가는 그 어떤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159명의 젊은 청춘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거리의 구조 요청이 묵살된 이유, 재난 안전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이유, 유가족들의 모임을 정부가 막아섰던 이유에 대한 해답이 필요합니다."
삼보일배를 시작한 지 15분쯤 지나자 유가족들의 머리카락이 빗물과 땀에 젖어 축 늘어졌다. 진회색 법복을 입은 한 스님의 무릎과 손은 아스팔트 바닥에 쓸려 새까매졌다. 정면에 광화문광장 이순신 장군 동상이 보일 때쯤 양한웅 조계종 사회노동위원회 집행위원장이 마이크를 들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내 아이가, 내 형제가, 내 친지가 그곳에서 어떻게 죽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겁니다. 9월 초까지 특별법을 반드시 통과시켜 우리 자식과 형제의 억울함을 밝혀주소서."
"너무 보고싶다"... 사흘간 삼보일배 후 '300일 추모문화제'
청계천 광장까지 500m를 전진한 행진단은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잠시 쉬는 동안 서로에게 휴지를 건네며 얼굴을 흠뻑 적신 빗물과 땀을 닦아냈다.
이정민 위원장은 "삼보일배가 쉬운 게 아니다"라며 "힘들고 고통스럽지만 행안위에 묻혀 있는 특별법을 끄집어내서 통과시키겠다는 가족들의 간절한 염원을 담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선미 유가족협의 부위원장(고 박가영씨 어머니)은 울음을 삼키며 "참담하다"라고 말했다. 최 부위원장은 "아이들이 왜 그렇게 됐는지, 어디서 그렇게 됐는지, 마지막에 어떤 모습이었는지 그것만 알았으면 좋겠다. 참사 300일이 다가오는데 딸이 너무 보고싶다"고 말하며 눈물을 닦았다.
박미화씨(고 조경철씨의 어머니)는 무릎보호대를 다시 동여매며 "아들한테 지금 해줄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다. 할 수 있는 건 다 해주려고 사흘간 일정에 모두 참여하기로 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