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위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진정한 미디어와 인문학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제주는 오름의 섬인데 키아오라 바로 뒷산이 대수산봉이고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었기에 '수산봉수'라는 팻말을 발견하고 반가웠다. '수산봉수의 제주살이'는 제주학을 배경으로 내 일상에 사회적 발언을 실어 보내는 글이다.[편집자말] |
'기묘명현'의 어릴 적 농촌 체험
북한에서 활동한 경제사학자 김광진 등은 <한국경제사상사>에서 '조광조를 중심으로 하는 신진 사림의 경제개혁사상'을 논하면서 한충(韓忠)을 주요 인물로 다뤘다. 그는 조광조의 '절친'이었기에 기묘사화로 엮여 혹독한 고문을 받은 뒤 숨졌다.
"나는 소년 시기에 농촌에서 자라면서 백성들 고난을 실제 체험하였으나 관리의 길에 들어서자 자기 근본을 잊어버리고 사람들의 뜬 말을 그대로 옮기고 있었다. 그런데 하물며 호화롭게 자라서 좋은 저택에서 진미를 먹고 사는 자들이야 어떻게 이런 실정을 알 수 있겠는가."
'기묘명현(己卯名賢)'인 한충은 내가 과거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뿐 아니라, 현재 MBC저널리즘스쿨과 제주 한미리스쿨에서 '한국의 농업사상과 농촌문제 인식'을 강연하면서 소개하는 경제사상가 중 한 명이다. 현장과 동떨어진 '탁상행정'은 예나 지금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제주로 귀촌해 자주 목격하는 것은 감귤과 월동무 등 농작물을 수확도 못 한 채 밭에서 썩히고 있는 장면이다. 가격 하락과 일손 부족 때문인데 농민 탓만 할 일은 아닌 듯하다. 농산물 수입을 포함한 수급조절과 외국인 노동자를 포함한 인력 공급은 정부나 농협의 적극 행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동떨어진 '이론과 현실' '정책과 농민'
대산농촌재단(이사장 김기영)이 24~25일 천안 계성원(교보생명연수원)에서 '대산 신용호 선생 20주기 추모 행사'로 '대산의 유산, 지속 가능한 농(農)을 위한 연대' 심포지엄을 열었다. 윤석원 중앙대 명예교수는 '신자유주의 개방화 시대 30년, 농업·농촌·농민의 변화와 과제'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한충과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했다.
양양로뎀농원에서 사과 농사를 짓는 농부이기도 한 윤 교수는 "귀농·귀촌 생활에서 얻은 가장 큰 문제 인식은 '이론과 현실' '정책과 농민'이 서로 아귀가 맞지 않고 각자 지향점이 다르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농업 부문 대응 방안으로 인공지능이니, ICT 기술이니, 사물인터넷이니, 정밀농업이니, 스마트 농업이니 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연구자나 정책당국의 한 소리를 들으면 씁쓸해집니다. 1년 농사 지어 1000만 원 버는 농민들에게는 그림의 떡인 먼 나라 얘기입니다. 이 무더위에 땀범벅이 되도록 풀을 안 매도 되고, 시원한 사무실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나 두드리면 되고, 생산만 해놓으면 팔 곳이 얼마든지 있는 농사가 어디 있습니까?"
그는 "신자유주의의 경쟁력 지상주의와 물질만능주의, 기후·환경·생태 위기는 인류의 지속 가능성뿐 아니라 농민·농촌·농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협한다"며 "새로운 농업 문명 전환 운동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 전환 사례로는 친환경 유기 생태농업, 토종종자 보급, 로컬푸드, 파머스마켓, 학교급식, 생활협동조합, 슬로푸드·슬로시티, 공정무역, 지역공동체 활성화, 지역 자산기반 커뮤니티 개발, 사회적 농업, 치유농업, 농촌체험, 도시농업 등을 들었다.
측정 어려워 무시하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
양승룡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기조 강연에서 "비농업계나 예산당국이 농업에 더 많은 지원을 하는 데 회의적"이라며 "이는 산업적 가치로 측정되지 않는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제대로 측정하지 못해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진단했다.
농업의 본원적 기능은 식품공급체계를 제공하는 것이지만, 다원적 기능으로는 환경보전 기능, 사회문화적 기능, 농촌 활력 유지 기능, 식량안보 기능을 들 수 있다. 또 주거·범죄·교통 등 도시 과부하로 발생하는 문제를 농촌이 완화해주는 도시문제 비용 절감 효과도 있다.
농업의 공익적 가치를 평가할 방법은 여러 가지 있지만, 현재 비시장재인 다원적 기능은 정확히 측정되지 않아 농업의 가치는 실제 사회에 제공하는 공익적 가치보다 평가절하돼 있다.
농업·농촌의 공익적 가치에 대한 국민의 지불의사금액은 연간 7조6000억 원, 농업총예산은 16조9000억 원 등으로 다 합쳐도 다원적 가치 추정액 263조 원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심포지엄에서는 이밖에도 마상진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이 '지속 가능한 농업·농촌을 위한 미래세대 교육', 김철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가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연대: 농의 가치 확산'을 주제로 발표했다.
'농촌전문언론인 양성' 역설하자 등록금 전액 지원
교보생명 창립자인 대산 신용호 선생이 1991년 대산농촌재단을 만든 이유도 농촌과 도시, 사람과 생명의 연대로 농(農)의 가치를 확산하려는 의도였다. 그는 평소 "농촌은 우리 삶의 뿌리요, 농업은 생명을 지켜주는 산업"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재단은 역량 강화와 자부심을 고취하기 위해 농업 연구와 연수를 지원하고 대산농촌상을 시상하고 각종 농업·농촌 가치 제고 사업을 펼친다. 차세대 농업인재 양성을 위해서는 농업리더장학생과 농업전문언론장학생을 지원한다. 32년간 재단이 집행한 예산은 450억 원에 이른다.
2009년부터 재단과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함께 뽑은 농업전문언론장학생 4명에게는 해마다 3000만 원 가까운 등록금 전액을 지원한다. 지금까지 28명이 장학 혜택을 받아 졸업생은 대부분 언론계로 진출했다.
24일 저녁에는 대산농촌재단 수혜자들이 네트워킹 토크쇼를 했는데, 마침 제자이자 1호 농업전문언론장학생이던 조형진 전주MBC PD가 출연해 반가웠다. 그는 한국 최대 곡창지대인 전북을 중심으로 지역MBC 16개사가 공동기획한 '농업이 미래다'에서 농업교육 편을 제작했다. 또 농식품부와 공동으로 '두근두근 팜팜'을 제작했고, 지난해부터는 '마녀들의 포레스트'로 청년 여성 농민들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2009년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장이던 나는 농촌·농업 전문기자·PD 양성과정이 왜 필요한지 역설하는 편지를 보냈는데 재단이 전폭 수용해 크게 고무된 적이 있다. 편지 내용 일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농촌·농업 전문기자를 둔 선진국 언론과 비교하면…
"농업에 관한 그릇된 인식은 특히 언론에 의해 확대재생산되는 측면이 강하다고 봅니다. 농업·농촌 전문기자가 전무한 게 우리 언론의 현실입니다. 농림수산부 기자실조차 농업에 관한 지식도 애정도 없는 기자들이 잠깐 머물다 가는 출입처, 회사 안에서 데스크를 보는 차장급 기자들이 바람 쐬러 나오는 곳 정도로 취급되고 있습니다.
외국 언론사들이 농업 전문기자(Agriculture Correspondent)나 농촌문제 전문기자(Rural Affairs Correspondent)를 두고, 농경제학적, 농촌사회학적 지식을 기반으로 수준 높은 기사들을 내보내는 것과 너무나 대조적입니다. 독일 프랑스 스페인 이탈리아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북유럽의 복지국가들이 모두 다 공업국인 동시에 농업국입니다. (중략)
이제 농촌은 '떠나야 할 곳'이 아니라 '머물러야 할 곳'입니다. 교육받은 청년들이 '인간이 만든 도시'를 떠나 '신이 만든 농촌'으로 내려가야 할 때입니다. 청년실업이 심각한데 농업이야말로 '출퇴근할 수 있는 블루오션'이며, 자식에게도 물려줄 수 있는 '가업'이 되어야 합니다. 농업은 '전근대적 1차산업'이 아니라 생명과학기술과 결합하는 '지식산업'이 되어야 합니다. (하략)"
IMF 외환위기 때 오히려 사원을 대거 뽑은 기억
대산을 만난 적은 없지만, 1998년 <한겨레> 경제부장 시절 보험 담당 기자가 보내온 기사를 보고 의아해한 기억은 있다. 외환위기를 맞아 기업들이 저마다 해고를 해 실업자가 넘쳐나는데, 교보생명이 신입사원 600명을 뽑는다는 거였다. 교보는 이듬해에도 600명을 뽑았고, 실업자 가정의 주부들을 생활설계사로 대거 채용했다.
전남 영암군 독립운동 가문에서 태어나 가난과 병치레 등으로 힘든 소년 시절을 보낸 그는 순전히 독학과 독서로 지식과 지혜를 함양해 시대정신을 파악하고 사업기회를 포착해 중국 다롄 등지에서 사업에 성공했다.
이육사를 만나 민족자본의 중요성에 눈뜨다
이육사를 만나 독립운동자금을 전달한 일화도 있다. 독학으로 공부한 사실을 안 이육사는 오히려 그를 격려했다.
"조선인이 조선의 말과 글로 조선의 역사와 문화를 배울 수 없는데 학교에 다닌들 무엇하겠나. 오히려 일제의 꼭두각시가 되는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이 잘된 일일세. 일제의 교육을 받은 대다수 조선 청년들이 식민지 수탈에 앞장서고 있지 않은가."
'헐벗은 동포들을 구제하는 민족 자본가가 되라'는 이육사의 당부는 나중에 대한교육보험을 설립할 때 표방한 '민족자본 형성'과 '국민교육 진흥'으로 구현된다. 소년 신용호는 5년제 중학교 과정을 독학으로 공부하면서도 1천 일 동안 열흘에 책 한권을 읽는 '천일독서'를 실천했다. 어머니가 하숙 쳐서 생계를 유지했기에 주로 하숙생 형들의 책을 빌려 본 것이다.
'여운형선생투쟁사'만 발간하고 폐업한 출판사
책을 향한 그의 집착은 해방정국에서 '민주문화사'라는 출판사 설립으로 이어지는데, 당시 낸 책이 <여운형선생투쟁사>였다. 그 책은 18쇄까지 찍을 정도로 인기를 끌었으나, 책 유통 구조가 허술하고 대금 회수가 제때 안 돼 출판사는 한 권만 내고 문을 닫았다. 그 경험은 출판 유통 혁명을 선도한 초대형 교보문고 설립으로 이어졌다.
보험 역사에 유례없는 교육보험을 창안한 것은 가난하면서도 세계 제일 교육열을 자랑하는 국민성을 포착해 보험과 접목한 결과였다. 거슬러 올라가면 교육보험은 자녀 교육을 목적으로 한 '학계(學契)'의 전통을 이은 거라 할 수 있다.
대산은 1996년 연세대 경영학과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임무를 수행한 가장 존경하는 기업인'으로 뽑혀 제1회 '기업윤리대상'을 받았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