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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단 철수를 결정한 가운데 5일 오전 전북 부안군 행사장 야영지 내에 영국 국기가 내결려 있다.
2023 세계스카우트잼버리 참가단 철수를 결정한 가운데 5일 오전 전북 부안군 행사장 야영지 내에 영국 국기가 내결려 있다. ⓒ 연합뉴스
 
33년 전인 1990년 내가 영국에 처음 왔을 때는 영국인들이 한국을 거의 몰랐다. 한국 뉴스는 북한 미사일 문제가 거의 다였고 영국인들이 한국 하면 떠올리는 첫인상은 '6.25 전쟁'을 겪은, 잘 알려지지 않은 나라 정도였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지난 지금, 영국인들 눈에 비친 한국의 모습은 과거와 너무나 다르다. 영국 젊은 세대는 거의 다 케이팝(K-POP)에 빠져있고 기성세대는 <기생충>, <미나리> 등 한국 영화와 드라마를 좋아한다. 지난 8월 1일부터 12일까지 한국에서 열린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대회도 영국인들로부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한국의 역량을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 기회는 '위기'가 되고 말았다.

영국에서는 이번 대회에 세계 참가국 가운데 가장 많은 4500여 명이 참여했다. 내가 사는 영국 중부지방 레스터셔주에서도 40여 명이 갔다. 나의 영국인 이웃인 41세 아론씨는 잼버리 섹션리더로 참가했고, 내 아내 친구의 10대 딸은 잼버리 대원으로 다녀왔다.

이번 기사에선 새만금 잼버리 대회에서 섹션리더로 참여한 아론씨와 지난 25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싣는다.

"한국 잼버리 대회, 기본 의식주도 열악... 음식 문제로 아예 굶기도"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에서의 아론
경기 용인 한국민속촌에서의 아론 ⓒ 아론 제공
 
- 자기소개 먼저 해 달라.

"8살 때 처음 스카우트 운동에 합류했으니 올해 33년이 된다. 그동안 여러 가지 유용한 기술을 배웠다. 예를 들면, 원시림 숲속에서 생존하는 법, 미개지 생활에 필요한 각종 기술, 맨손으로 불 켜는 방법, 밧줄 사용법, 미개지 개척하는 법 등이다. 지난 1년 반 동안에는 내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잼버리 섹션 리더를 맡아 왔다. 이전 7년 동안은 섹션 보조리더였다."

- 스카우트 섹션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

"스카우트 대원 24명을 지도하고 관리하며 도움을 준다. 내가 지난 33년 동안 익힌 여러 가지 기술도 가르쳐 준다. 특히 이번 한국 잼버리 대회에 (내가 맡은 대원을 포함해) 레스터셔 지역 대원 40여 명이 참가했다. 그들을 많이 도와주고 여러모로 지원했다."

- 올해 한국에서 개최하는 세계 잼버리 대회 소식은 언제 처음 들었나?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 참가하게 됐나?

"2년 전인 2021년 11월 그룹 리더가 2023년 대회는 한국에서 열린다고 알려줬다. 나는 한국에 한번도 가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순간 너무 기대됐다. 배우자도 적극 지원해 주겠다며 한국 잼버리 대회에 참가를 권유했다. 바로 그날 밤 참가신청을 했다. 심사를 거쳐 지난 2022년 2월 마침내 한국 대회 참가신청이 받아들여졌다. 너무나 기뻤다."

- 한국 잼버리 대회 참가가 확정되고 나서 무엇을 준비했나?

"가장 중요한 건 한국어와 한국문화 공부였다. 특별히 앤(필자의 영국인 아내)에게 많은 조언과 유용한 도움을 받았다. 그전에 나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었는데 한국 역사도 많이 배웠다."

- 2023 잼버리 대회에 참여하며 한국에 얼마나 머물렀나?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18일까지 머물렀다. 대회가 8월 1일부터 12일까지였으니 며칠 일찍 가고 며칠 더 머문 것이다."
 
 ㅈ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6일 숙소인 서울 시내의 한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대원들 발에는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ㅈ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6일 숙소인 서울 시내의 한 호텔로 들어가고 있다. 대원들 발에는 벌레에게 물린 자국이 선명하다. ⓒ 연합뉴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를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2023 새만금 세계스카우트잼버리에 참가한 영국 대원들이 6일 전북 부안군 야영장에서 철수를 위해 짐을 옮기고 있다. ⓒ 연합뉴스
 
- 이번 잼버리 대회 시설과 환경을 둘러싸고 말이 많았다. 직접 겪어본 현장은 어땠나?

"주최국인 한국 정부와 한국스카우트의 준비 부족을 절감했다. 캠프를 설치한 새만금 지역은 간척지라 그런지 미세모래가 너무 많았다. 배수구가 없어서 배수도 잘 안 됐고 물웅덩이가 곳곳에 즐비했다. 그 물웅덩이 주변에는 모기가 넘쳐났다.

더구나 기온이 섭씨 35도를 넘나드는데 뙤약볕 모래밭이라 햇빛을 피할 데가 거의 없었다. 더위를 한껏 먹은 나와 대원들은 모기와 각종 벌레에 물린 기진맥진한 몸을 이끌고 그늘을 찾아 여기저기 헤맸고, 거의 탈진 상태가 됐다.

화장실 또한 턱없이 부족했다. 그나마 있는 화장실은 너무 더럽고 지저분해서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기본적인 화장지와 휴지통도 너무 부족했다.

교통시설도 엉망이었다. (셔틀)버스도 왕복은 없고 편도만 있어서 너무나 불편했다. 그나마 편도 버스가 직행이 없어서 식사를 한 번 하려면 가까운 곳도 먼 곳으로 빙 돌아가서 시간이 엄청 걸렸다. 그런 버스도 드문드문 왔다. 오랜 기다림 끝에 버스가 와도 앉을 자리가 하나도 없어, 피곤하고 녹초가 된 몸으로 45분 이상 서 있어야 했다.

음식 역시 문제였다. 알레르기가 있는 대원들이 사전에 미리 음식을 요청했는데 준비가 안 돼서 아예 굶는 대원들도 즐비했다. 또 젓가락을 제공 안 해줘서 반찬을 먹기가 힘들었다. 밤에는 너무 덥고 모기와 벌레가 많아 몸은 아주 피곤한데도 거의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솔직히 기본적인 의식주가 너무나 열악해 아주 힘들었다."

"서울서 만난 한국인들 감동... 흥미진진한 시간, 고마웠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방문해 수문장 교대의식을 관람하고 있다.
2023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에서 조기 퇴영한 영국 스카우트 대원들이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경복궁을 방문해 수문장 교대의식을 관람하고 있다. ⓒ 연합뉴스
 
 아론씨와 템플스테이 중 만난 불자들
아론씨와 템플스테이 중 만난 불자들 ⓒ 아론
 
-  '악몽'과 같은 시간을 보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사막에서도 선인장이 핀다'는 말처럼, 어려운 가운데 잠시나마 긍정적이고 즐거운 순간들이 있었나?

"나는 41살이라 그런 대로 견딜 만했다.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대원들을 한 장소에서 쉽게 만나 가족처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더위, 불결한 시설, 습기, 그늘 부족, 불편한 교통, 음식 문제 등이 있었지만, 개인적으로는 참가한 걸 후회하진 않는다. 영국 스카우트가 조기 철수한다고 했을 때 좀 서운하기도 했다. 나는 가급적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이라서. 젊은 영국 대원들도 어려운 환경에도 불구하고 잘 견디며 서로 도와주는 팀 정신을 보여준 것 같아 고맙다.

영국 대원들이 조기 철수 후 서울에서 만난 한국인들은 우리들을 너무나 친절하고 다정하게 맞아줬다. 감동적이었다. 어떤 한국인들은 내게 다가와 영어로 '미안하다'며 사과하고 용서를 빌어 좀 당황하기도 했다.

서울의 한 식당에서 만난 20대 한국 젊은이들도 인상적이었다. 그들은 나와 우리대원들을 보고 다정하게 손을 흔들며 격려해줬다. 우리도 고맙다며 함께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그 젊은이들이 식사를 마친 우리에게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케이크를 선물했다. 우리가 그들에게 고맙다며 소주를 사줬다. 초면인데 마치 오랜 친구처럼 술잔을 함께 나누었다. 너무나 즐거운 추억이었다. 그 외에도 거리에서 만난 많은 한국인들이 한결 같이 우리들을 친절하게 대해 줬다.

마지막 날 케이팝 콘서트는 나보다 젊은 대원들이 아주 좋아했다. 물론 나 역시 케이팝 공연 하는 가수들의 강력하고 활기찬 에너지를 강렬하게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가장 좋았던 건 1박 2일 템플스테이였다. 절에 머무르는 동안 너무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지금도 정말 그분들에게 고맙게 생각한다."

- 마지막으로 한국인들과 한국 정부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한국에서 흥미진진한 시간을 갖게 해줘서 고맙다. 한국 잼버리 경험은 특이했지만 어쨌든 지나고 보니 놀라웠던 것 같다. 한국에서 만난 모든 분들이 한결 같이 친절하고 다정하게 대해 주셔서 다시 생각해도 너무나 감사할 따름이다. 한국이 영국에서 너무 멀어 아쉽다. 지리적으로 가까우면 자주 방문하고 싶은 나라다. 그래도 나는 최소한 한 번이라도 방문했으니, 아직도 한국을 한 번도 방문 못한 다른 영국인들보다는 행복한 사람이다."
 

#영국#잼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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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영국통신원, <반헌법열전 편찬위원회> 조사위원, [폭력의 역사], [김성수의 영국 이야기], [조작된 간첩들], [함석헌평전], [함석헌: 자유만큼 사랑한 평화] 저자. 퀘이커교도. <씨알의 소리> 편집위원. 한국투명성기구 사무총장, 진실화해위원회, 대통령소속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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