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지청천·이회영·이범석·김좌진 등 독립전쟁 영웅 5인 흉상의 철거·이전 검토 소식이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이종섭 국방부 장관은 지난 25일 국방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육사는 가능하면 (교내 기념물을) 육군 창설 혹은 육사 창설, 군과 관련된 인물들을 하는 게 좋겠다는 방향"이라면서 "이분들 중 소련공산당에 가입했던 사람도 있다"며 홍범도 장군의 소련공산당 가입 이력을 문제삼았다.
또한 이 장관은 공산주의 활동 전력이 없는 다른 인물들에 대해서도 "육사에 독립운동보다 창군 이후 군사적 분야에 대해서만 하는 게 좋겠다는 개념 설정을 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육군사관학교도 25일 별도의 입장문을 통해 "육사 교내에는 학교의 정체성과 설립 취지를 구현하고, 자유민주주의 수호 및 한미동맹의 가치와 의의를 체감할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두고 기념물 재정비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국방부, 5년 전엔 "대한제국군대→의병→독립군→광복군, 국군의 뿌리 돼"
하지만 이러한 입장은 그동안 독립군과 광복군을 국군의 뿌리로 규정하고 기념해 온 국방부와 육사의 기존 행보와 상반된다.
지난 2017년 12월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독립군과 광복군 그리고 국군>이라는 제목의 책을 발간했다. 국방부는 "국방부 공식 간행물로는 처음으로 독립군과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해 국군의 정통성을 되살린 것이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책은 "대한제국군의 정통성은 의병, 독립군, 광복군을 거쳐 대한민국 국군에까지 이어졌다. 대한제국군의 해산 이후 근 40년에 걸쳐 해산 군인이 참여한 의병과 독립군 및 광복군의 국권회복을 위한 자주독립정신이 줄기차게 계승됐다"며 국군의 뿌리를 대한제국군과 의병으로부터 찾고 있다.
또한 "국군의 정신과 정통성을 의병과 독립군을 잇는 광복군에 둔 것과 마찬가지로, 군사교육의 정통성 역시 대한제국 육군무관학교와 이를 이어받은 신흥무관학교와 사관연성소 등 독립군 무관학교, 그리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무관학교를 거쳐 육군사관학교로 이어진다는 군사교육체계의 역사적 법통을 계승하는 형식을 취한 것"이라며 육군사관학교의 뿌리에 대해서도 대한제국의 육군무관학교와 신흥무관학교가 그 연원임을 밝혔다.
2019년 2월 국방부가 발간한 홍보 책자 <대한민국 국군>에서도 국방부는 국군의 뿌리를 의병이라고 규정했다.
국방부는 해당 책자의 '대한민국 국군의 역사'라는 제목의 장에서 "강제로 해산된 대한제국 군대가 의병으로, 일제강점기 독립군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광복군으로 발전해 대한민국 국군의 뿌리가 됐다"며 군사편찬연구소와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독립영웅 5인 흉상 제작 5년 만에... 결국 철거되나
육군사관학교 역시 독립군과 광복군으로부터 육사의 뿌리를 찾았다.
지난 2017년 12월 육사는 '독립군·광복군의 독립전쟁과 육군의 역사'라는 주제로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김완태 중장은 "현재 우리 군은 일제강점기에 독립군과 광복군이 수행했던 독립전쟁을 자랑스러운 국군의 역사와 연계 및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호국간성의 정예장교 육성에 매진하고 있는 육군사관학교는 이번 특별 학술대회를 통해 독립군과 광복군의 숭고한 가치와 정신을 계승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당시 박일송 육사 군사사학과 교수는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의 효시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주제 발표를 통해 육사의 뿌리가 신흥무관학교 등 무관학교들에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같은 제목의 논문에서도 "신흥무관학교를 비롯한 이들 무관학교들은 독립전쟁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측면에서 육군사관학교의 정신적 정통성의 연원"이라고 규정했다.
2018년 3월에는 현재 논란이 된 독립영웅 5인의 흉상을 제작했고 같은 해 6월에는 최초로 신흥무관학교 설립 기념식이 최초로 육군사관학교에서 개최되기도 했다. 당시 육군사관학교 생도 1100여 명은 육사 화랑연병장에 집합해 분열의식을 거행했다.
이렇듯 국방부와 육사는 국군과 육사의 뿌리를 의병과 독립군에서 찾는 행보를 보여왔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2017년 8월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광복군과 신흥무관학교 등 독립군의 전통도 우리 육군사관학교 교과 과정에 포함하고 광복군을 우리 군의 역사에 편입시키는 노력도 필요하다"고 얘기한 이후 추진된 것으로 알려졌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2월 27일 육군사관학교 75기 졸업 및 임관식에 보낸 친서에서 "육군사관학교의 역사적 뿌리도 100여년 전 '신흥무관학교'에 이른다"고도 언급한 바 있다.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문재인 정부 지우기'에 앞장서온 윤석열 정부가 이번에는 심지어 역사 문제에 있어서도 문재인 정부 지우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까닭이다.
파장이 커지자 국방부는 26일 기자단에 문자메시지를 보내 "독립군과 광복군의 역사를 국군의 뿌리에서 배제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라며 "국난 극복의 전체 역사에서 특정 시기에 국한된 독립군·광복군 흉상들만이 사관생도들이 매일 학습하는 건물의 중앙현관 앞에 설치돼 있어 위치의 적절성, 역사교육의 균형성 측면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