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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사생도 2기'로 6.25 전쟁에 참전한 박경석 예비역 준장. (자료사진)
'육사생도 2기'로 6.25 전쟁에 참전한 박경석 예비역 준장. (자료사진) ⓒ 권우성
 
"일제강점기 당시 공산당은 남북 분단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때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홍범도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아 비판하고 있다."

육군사관학교(육사) 교정에 있는 홍범도 장군 흉상 이전이 본격화한 가운데, 박경석(91) 장군이 윤석열 정부와 국방부의 역사의식 부족을 지적하며 한 말이다. 1일 <오마이뉴스>의 전화 인터뷰에서 박 장군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홍 장군을 독립유공자로 추앙했고 국가훈장도 추서했다"며 "그런데도 홍 장군을 표적삼아 (홍범도함) 함명마저 고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걸 보면 일본의 거부감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했다.

박 장군은 6·25 전쟁과 베트남 전쟁에서 야전을 누빈 육군 예비역 준장이다. 1950년 6월 1일 열일곱의 나이로 '육군사관학교 생도 2기'에 입교한 박 장군은 3주여 만에 6·25 전쟁이 터지는 바람에 임관도 하지 못한 채 전장에 투입됐다. 동기 330여 명 중 86명이 사망한 포천 전투에서 박 장군은 목숨을 건졌지만, 수류탄 파편에 몸 왼편을 크게 다치며 왼쪽 고막을 잃었다.

30년 군생활을 마치고 전역한 그는 87권의 저서를 집필한 작가이자 국군 창설 초기 친일파와 독립군 항쟁사를 연구해온 군 역사 연구자이기도 하다. 특히 그는 일제 만주군 간도특설대에 복무하며 조선인 독립군을 토벌하는 데 앞장선 백선엽 장군의 '친일 행적'을 추적해왔다.

다음은 박 장군과의 주요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역사 모르는 이들이 홍범도 이력 문제 삼아"
   
 '육사생도 2기'로 6.25 전쟁에 참전한 박경석 예비역 준장. (자료사진)
'육사생도 2기'로 6.25 전쟁에 참전한 박경석 예비역 준장. (자료사진) ⓒ 권우성

- 정부가 육사 내 홍 장군 흉상을 외부로 이전하기로 했다.

"그렇게 난리법석을 떨어 옮길 일인가 싶다. 홍 장군은 일제강점기에 분명히 독립운동을 했다.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역대 모든 정부에서 홍 장군을 독립유공자로 추앙했고 국가훈장도 추서했다. 홍 장군이 소련 공산당에서 활동했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없을 뿐더러 가입 이력이 문제 될 일도 아니다.

당시 공산당은 남북 분단 이후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당과 근본적으로 다르다. 소련·미국 등 연합국과 독일·일본·이탈리아 등 추축국이 적대관계에 놓여 있는 상황에서 독립운동가들은 국제정세에 따라 여러 조직을 왔다갔다 하면서 활동했다. 그때의 역사적 배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홍 장군의 공산주의 이력을 문제 삼아 비판하는 것이다."

-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 이름을 바꾼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그렇게 밝혔다. 홍 장군은 일본군을 가장 많이 물리친 항일 의병장이다. 일본으로서는 흉상 철거·이전으로 논란이 된 다섯 독립운동가(홍범도·지청천·이범석·김좌진 장군·이회영 선생) 중 자국에 가장 큰 피해를 입힌 원수가 바로 홍 장군이다. 그런데 '홍범도함'이 일본과 태평양을 항해한다고 하면 일본이 두 눈을 뜨고 볼 수 있겠나. 한국 정부가 홍 장군을 표적으로 삼아 함명마저 고치겠다는 건, 일본의 거부감을 고려한 발언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 홍 장군과 별개로 백선엽 장군을 치켜세우려는 흐름도 엿보인다.

"백선엽 흉상 설치에 사실상 찬성하는 육사 총동창회장의 주장은 그야말로 희극이다. 백선엽은 만주군 간도특설대에서 지휘관으로 복무한 사람이다. 이이제이(以夷制夷·오랑캐로 오랑캐를 다스린다)를 내세워 조선인으로서 조선인을 죽였으니 친일파인 동시에 민족반역자다. 그는 자신의 회고록에서도 '독립군을 토벌했기 때문에 독립이 늦어졌던 것도 아니다'라며 간도특설대 복무 사실을 실토했다. 그런 사람을 우리가 어떻게 전쟁영웅으로 추앙할 수 있겠나.

게다가 백선엽은 윤봉길 의사가 폭탄을 던져 척살한 일본 육군 대신 출신 히라카와 요시노리의 이름으로 창씨개명했다. 백선엽은 그 사실을 숨겨왔는데, 내가 일본으로 건너가서 간도특설대 연구가 다나카 히사히로(田中久弘) 박사를 만나서 밝혀냈다. 게다가 5·16 쿠데타 무렵 주한 미국대사를 지냈던 필립 하비브는 본국에 보낸 기밀문서를 통해 '백선엽은 다른 참모총장들보다도 더욱 부패한 것으로 유명했다'라고 보고했다. 그동안 많은 일본군 출신 장교들을 연구해왔지만, 백선엽은 영웅으로 절대 추앙할 수 없는 분명한 하자가 있다."

- 육사와 정부의 역사 인식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다섯 명의 독립운동가를 백선엽 같은 사람과 비등하게 간주하는 것에 대해 크게 분노한다. 그런 방식의 논의는 그만두는 게 낫다. 그리고 흉상 철거·이전이라는 난제는 통일 이후에나 정리될 수 있는 문제다. 다섯 독립운동가는 당시 독립운동을 하며 여기저기서 도움을 주고받았다. 그 과정에서 독립운동이라는 복잡한 맥락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해석과 견해가 앞으로도 달라질 수 있다. 통일정부가 수립되지도 않은 지금 성급하게 결론을 지으려고 해서는 안 된다."

- 이번 정부 들어 갑자기 시작된 '역사 논쟁'에는 어떤 문제가 있다고 보나.

"신문과 방송에서 홍 장군을 둘러싸고 온통 난리인데, 그가 무슨 잘못을 했길래 흉상을 치우고 잠수함 이름까지 바꾸려 드냐. 그리고 얼토당토 않은 발언으로 친일파 백선엽을 치켜세우는 주장에도 결사반대한다. 나는 육사 생도로 참전했기 때문에 6·25 전쟁 당시 상황과 내용을 아직 기억한다. 백선엽이 죽어야 한국전쟁사를 다시 쓸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가 죽었음에도 생전 그가 관여한 전쟁사가 여전히 남아 있다. 백선엽이 만든 11권의 6·25 전쟁사가 아니라, 전쟁 직후 국방부에서 작성한 한국전쟁사를 읽어봐야 한다."
 

#홍범도#백선엽#박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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