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의 사망이 잇따르는 가운데, 업무 중 언어·신체 폭력에 무방비로 노출된 교사들의 마음 건강 상태가 심각한 수준의 우울을 겪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아래 전교조)와 녹색병원이 지난 8월 15일부터 8월 23일까지 교사 직무 관련 정신건강 실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조사 교사의 16%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이는 국민건강영양조사로 집계되는 일반인구 통계(3~7%)의 2배가 넘는 수치로 분석된다.
또 교사의 66.3%가 언어폭력을 겪었으며, 가해자는 63.1%가 학부모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가해 대상이 '학생'이라고 답변한 54.9%(중복 답변 허용)보다 높은 수치다. 해당 설문조사에는 총 6024명이 참여했고, 답변 신뢰도가 높은 3505명을 대상으로 결과를 분석했다(중고등학교 교수 40.7%, 초등교사 32.5%, 유치원 교사 9.2%, 특수교사 7.7% 등 참여).
"벼랑 끝 내몰려"... 폭력 무방비 노출, PTSD에 갇힌 교사들
"분석을 하면서도 계속 되짚었다. 이게 맞나? 과다하게 된 것은 아닌가? 통계 코드를 짜며 실수한 건 아닌가? 계속 살폈지만 동일한 결과가 나왔다." - 윤간우 녹색병원 과장
실태조사를 진행한 직업환경의학 의료진들은 조사 결과를 앞에 두고 '놀랐다'고 입을 모았다. 실태 조사를 제안한 임상혁 녹색병원장은 5일 서울 서대문구 전교조 대회의실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10년 전에도 비슷한 조사를 했다며 "지금 조사 결과를 보니 깜짝 놀랄 정도로 심각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참혹한 결과들과 함께 제2, 제3의 피해 선생님들이 계속 생길 수 있기에 빨리 대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진단이 필요한 수준의 '심각한 우울'을 호소한 교사는 38.3%로, 이 또한 일반 인구 대비 4배 가량 높은 수치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를 분석한 윤간우 녹색병원 과장은 "다양한 서비스직군이나 의료진 대상 조사도 많이 했지만 이정도 수준은 아니었다"면서 "상담이 빈번하고 폭력에 상시 노출된 선생님들 사이에서 우울증 빈도가 높았다"고 설명했다.
윤 과장은 "유치원, 초등, 특수 교사 등은 학부모 상담이 많았고, (그래서) 상담으로 비롯된 스트레스도 이 직군에서 훨씬 높게 나타났다"면서 "중고등학교는 행정업무 때문에 연장 근무가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실제 교사 업무 영역별 부담 비율을 보면, 학부모 상담과 민원으로 인한 부담이 37.5%로 가장 높았고, 학생 생활지도 및 상담이 28.4, 행정업무가 23.5%로 뒤를 이었다.
언어(42.3%), 신체(51.1%), 성희롱(47.5%), 원치 않는 성적 관심(49.9%) 등 등 업무 중 폭력에 노출된 교사들 다수는 외상후스트레스장해(PTSD) 위험군에 포함됐다. 윤간우 과장은 "교사들은 (폭력을 당한 이후) 훈련 또는 주변의 지원이 없는 상황에서 무방비로 노출되어 스트레스 만성질환으로 연결되고 있었다"고 짚었다.
김성보 전교조 서울지부장은 실태조사 결과가 "교사 개인의 문제가 아닌 제도의 문제임을" 드러내고 있다고 봤다. 김 지부장은 "벼랑끝에 몰린 선생님이 많다는 것은 공교육의 붕괴 위험이 높다는 것이고, 우리 교육은 이렇게 물리적 붕괴에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교조 "위기학급 실태 전수조사 필요"
임상혁 원장은 당장 교사들에게 '위험을 피할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 원장은 "과도한 악성 학부모 민원과 상담은 피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기본적으로 위험으로부터 벗어날 권리, 피할 권리가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간우 과장은 "일반 산업에선 오래 전부터 (노동자들의) 정신건강 보호를 위해 제도적 장치나 사업주 노력들이 이뤄졌고 일부 문화로 자리잡고 있으나, 교사 직군은 (그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면서 "토론회와 회의를 거쳐 구체적인 방안을 마련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보 지부장은 악성 민원과 상담, 과중한 행정업무로부터 교사를 벗어나게 할 제도적 뒷받침을 위해선 인력과 재정 투입이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김 지부장은 "정부와 국회가 할 일은 (사태 해결을 위한) 사람과 재정을 긴급히 투입하는 것"이라면서 "위기학급 실태를 전수 조사하고 특별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이날 발표된 설문 조사 가운데 주관식 답변도 1700여 개가 수집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한민 전교조 서울지부 정책실장은 "(답변 중 다수인) 가장 큰 바람은 '더 이상의 폭력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