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기 한 접시는 평생 축사에서 갇혀 지내다 도살장에 끌려간 생명의 것입니다. 생선 한 마리는 그물이나 낚싯줄에 걸려 배가 갈라지거나 토막 난 바다 생명입니다. 달걀 한 알은 병아리로 태어날 생명을 훔쳐 온 것입니다. 우유 한 잔은 평생 강제로 임신 당한 것도 모자라 새끼를 빼앗긴 소에게서 온 것입니다. 꿀 한 숟갈은 벌이 어렵게 모은 양식을 도둑질한 것입니다.
스스로 '평화밥상 연구가' 내지 '식물식(채식) 밥상 지도사'라 소개하는 이영미 전 채식평화연대 대표가 책 <이영미의 평화밥상>(호밀밭 간)에서 강조한 말이다. 우리가 맛있고 영양가 좋은 먹을거리만 생각했지, 그것이 어떤 동물의 '희생'으로 얻어진 것이라는 생각을 못했구나 하는 깨우침을 준다.
저자는 "아이의 입맛만 고려해 죽음의 밥상을 차릴 수는 없었습니다"라며 "집 밖에서는 각자 먹고 싶은 대로 먹더라도, 집에서만은 식물식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라고 했다. 그는 "살생과 폭력이 없는 밥상이 곧 평화밥상의 시작"이라며 "동물의 고통을 바탕으로 하는 음식을 먹지 않고 곡식, 채소, 과일 등 식물성 식품으로도 건강하게 살 수 있습니다"라고 강조하고 있다.
요즘 텔레비전마다 먹을거리를 다룬 소재가 많고 유튜브도 '먹방'이 인기인 시대에, 이 책은 우리가 가장 중요한 가치를 놓치고 산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저자는 "식물식은 생명의 순환이지만 동물식은 생명의 단절"이라며 "평화가 깃든 밥상에서 몸과 마음의 평화는 물론 세상의 평화가 비롯될 수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영미 평화밥상연구가는 언론사에 연재했던 글을 모아 이번에 책으로 묶어 냈다. 귀농학교를 졸업한 뒤 쓰러져 가는 시골 빈집으로 무작정 이사를 갔던 그는 농촌 마을에서 이웃과 함께 아이들을 키우며 마을 공동체를 가꾸면서 살고 있다. 그가 자연식물식이 지닌 보편적 가치를 가정과 이웃, 학교, 사회에 나누고 있는 이야기가 담겨 있는 책이다.
"좋은 책을 고르는 것처럼 음식은 더더욱 그러해야"
학교급식에서도 되도록이면 자연 식물식을 하자는 것이다. 자녀가 다니는 학교에 가서 급식 모니터링을 했던 저자는 "영양사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고기, 생선, 달걀, 우유를 먹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 일반 학부모들이 많다고 했습니다"라며 "식물식으로 식단을 꾸리려 해도 그들의 반발이 예상되어서 쉽지 않다고 합니다"라고 했다.
교육 차원에서 좋은 책을 고르는 것처럼 음식은 더더욱 그러해야 한다는 게 이 평화밥상연구가의 생각이다. 그가 생각하는 '불량식품'에 대한 설명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불량식품의 기준이 사람마다 다릅니다. 저는 고기, 생선, 달걀, 우유와 그 가공품은 인간의 폭력으로 다른 동물에게서 온 음식이기에 기본적으로 폭력성을 가진 가장 위험한 불량식품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음식문화가 줄어들거나 없어지면 성폭력, 학교 폭력, 가정 폭력도 자연스레 줄어들거나 없어질 것이라 믿습니다.
국민 기본인 행복추구권에 근거해 생존의 필수조건이 음식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식물식 밥상 지도사는 "학교, 병원, 군대 등 공공기관만큼이라도 현미 채식 선택권을 보장해주길 청원합니다"라며 "실제로 공공기관 차원에서 채식 선택권을 보장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이웃집 막내 아이 돌잔치를 식물식으로 마련했던 저자는 "주인공은 돌잡이 상에서 연필도 실도 돈도 모종삽도 잡지 않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엄마를 꼭 잡았습니다. 잔치가 끝나고 뒷설거지는 마을 어른들과 아이들이 같이 했습니다. 하늘에는 초승달이 웃고 있었습니다"라며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몇 대목을 더 들어보자.
"동물 먹을 사료를 생산하기 위해 농토에 화학비료를 뿌리고, 농약을 사용합니다. 비가 오면 땅에 농약이 씻겨나가 물을 오염시킵니다. 그리고 동물을 먹으면 조리기구나 그릇에 기름이 묻습니다. 이를 씻기 위해서 사용하는 세제는 또다른 물을 더럽힙니다. 반면 식물은 물을 정화해주며, 자연에 가까운 식물식을 할수록 물이 깨끗해집니다. 그래서 식물식을 하면 수질오염을 막을 수 있고, 더 나아가 물이 깨끗한 평화세상을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먹은 밥이 똥이 되고 내가 눈 똥이 밥이 되게 하려면, '뒷간'에서 똥을 누고 그 똥을 논과 밭으로 돌려보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로 사용하는 수세식 화장실에서 똥은 거름이 되기보다는 수질오염, 환경오염의 원인이 됩니다. 거기다 수세식 화장실은 물도 많이 소비합니다. 무엇보다도 똥은 더러운 것으로 여겨집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먹었다면 내 몸에서 나온 똥도 나쁘고 더럽지 않겠지요."
"씨앗을 받고 감사의 전화를 하니, 올해는 이웃의 농부들과 같이 '텃밭 꾸러미'를 한다고 합니다. 정성스레 채소를 가꾸는 사람들과 그것을 정성스레 먹을 수 있는 사람들이 만나, 서로의 삶이 순환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자연에서 씨앗을 맺는 모든 풀과 나무들이 그러한 것처럼요."
봄날 김밥에다 골담초꽃으로 장식했다고 '자랑'한 저자는 "식물식을 하면서 '사람과 지구를 더불어 살리는 먹을거리'는 어떤 것인지를 늘 생각하게 됩니다"라며 "고민은 '나에게 이로운 것은 다른 생명에게도 이로워야 한다', '나를 위해서 다른 생명을 희생시키지 않아야 한다'라는 생각으로 확장됩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심었다고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저자는 밭에 고추 모종을 심어 놓았더니 고라니가 잎을 다 뜯어 먹고 뿌리와 줄기만 남아 있어 뽑아버리지 않았더니 잎이 나와 고춧잎과 고추를 조금 따먹었다고 한다. "내가 심었다고 내 것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나도 내가 심지 않고도 저절로 자라는 풀과 나무의 잎과 열매, 꽃들을 먹고 있으니까요. 고라니, 두더지와 적당히 같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라며 동물과 나누는 마음을 드러냈다.
또 저자는 "청소 노동자들이 힘들게 생활하는 현실은, 누군가 더 맛있게 먹기 위해 동물을 죽이는 현실과 별다르지 않습니다. 더 편하게 살고자 누군가가 이기심을 부린 결과입니다"라며 "나도 좋고 너도 좋은, 내가 살기 위해 네가 희생되지 않아도 되는 진정한 생명 살림으로, 평화롭고 살기 좋은 참세상이 자연스레 찾아오기를 염원합니다"라고 했다.
추천글에서 황성수 전문의는 "성장기 아이들에게 동물성 식품을 먹이지 않으면 아동학대라고 지탄받는 세상에서, 저자가 어떤 고생을 했을지는 충분히 짐작이 갑니다. 식생활이 다르니 가까운 친척 혹은 지인들과 만날 때 불편을 감수해야 했지만, 저자는 이러한 간극을 조금씩 풀어나갑니다"라고 했다.
전희식 농부 철학자는 "밥과 평화를 골고루 버무려서 참밥상, 참평화를 말하고 있습니다. 텔레비전 다큐나 유튜브 영상에서 다루는 음식 담론, 평화 담론과 전혀 다릅니다. 저자의 질박한 일상을 축으로 그때그때 생생한 일화와 느낌을 기록한 책이라 흡입력이 대단합니다"라고 소개했다.
이영미 평화밥상연구가는 "결혼 후 아이를 낳으면서 육아와 교육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라며 "더불어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저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서 '무엇을 먹을 것인가'를 먼저 고민해야 한다고 끊임없이 이야기해 왔습니다. 지속 가능한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특히 아이들의 밥상과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