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혜빈이는 착하게 산 죄밖에 없는데 도대체 왜... 피고인(최원종) 측 변호인 측이 공소사실 확인을 안 해봤대.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이 벌어진 지가 언젠데 이제 와 확인을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의 범인 최원종(22)의 첫 공판이 끝나고 그가 호송버스에 올라타는 모습을 본 희생자 유족들이 오열하며 소리쳤다. 희생자 고 김혜빈(20)씨 부모님은 "지금껏 (공소사실) 확인을 안 해봤다니 말이 되냐", "시간 끄는 방법이 그것뿐이냐"라며 울분을 토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눈물을 흘리던 희생자 고 이희남(65)씨 남편은 걸음을 제대로 옮기지 못해 아들의 부축을 받아야 했다.
수원지법 성남지원 제2형사부(강현구 부장판사)는 14일 오전 1호 법정에서 살인, 살인미수, 살인예비 혐의로 구속기소된 최씨의 첫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최씨 측 변호인은 이날 공소사실 인정 여부를 묻는 재판부에 "수사기록 열람 자체를 하지 못했다"며 다음 재판에서 공소사실과 관련해 의견을 내겠다고 답했다.
범행 읊은 검사, 가빠진 유족들 호흡
방청석에서 앉은 희생자 가족·친척·친구 10여 명은 재판 시작 전부터 서로 팔짱을 끼고 손을 잡으며 재판을 지켜봤다. 검사가 "피고인의 범행으로 2명이 사망했다"고 말하자 고 이희남씨 남편은 터져나오는 눈물을 참지 못하고 힘겹게 호흡을 가다듬었다. 울음을 삼키는 고 김혜빈씨 부모님의 입술도 파르르 떨렸다.
갈색 수의를 입은 최씨는 마이크를 잡을 때를 제외하면 굳은 표정으로 정면을 응시한 채 별다른 표정 변화를 보이지 않았다. 최씨는 재판부가 '국민참여재판을 원하지 않냐'고 묻자 "네"라고 짧게 대답하기도 했다.
재판부의 인정신문(피고인의 성명·생년월일·직업 등을 확인하는 절차)이 끝나고 검사가 공소사실을 설명하는 동안에도 최씨는 굳은 표정으로 바닥을 응시했다. 검사는 "승용차를 운전해 인도를 걸어가던 피해자를 승용차로 들이받아 사망하게 했다", "피해자들을 무작위로 칼로 찔렀으나 사망에 이르지 않아 미수에 그쳤다", "칼을 소지한 채로 객차 안을 돌아다녔고 사람들을 살인하려 했으나 못하고 돌아왔다" 등 최씨의 범행을 설명했다.
최씨는 지난 8월 3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에서 차량을 몰고 인도로 돌진해 5명을 들이받고, 차에서 내려 백화점에 들어가 9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고 있다. 그 과정에서 고 김혜빈씨와 고 이희남씨는 최씨가 운전하던 차량에 치였고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 끝내 숨졌다.
"끝까지 싸워 꼭 죗값 치르게 하겠다"
피고인 측의 공소사실 미확인을 이유로 20분도 안 돼 공판이 끝나자, 유족들은 피고인 대기실로 향하는 최씨에게 "야 이 XX야", "이게 뭐야 이게", "이럴 거면 뭐하러 나왔어"라고 소리쳤다. 일부 유족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피고인 측 변호인을 향해 "당신들 뭐하는 사람들이냐", "이렇게 변호하니까 좋냐"라며 따져 물었다.
공판이 끝나고 법원 교도관실 앞에서 취재진과 만난 희생자 유족들은 최씨와 변호인을 향해 분노와 슬픔을 쏟아냈다. 고 이희남씨 남편은 "사람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실행에 옮겨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을 당했는데도 재판이 한 달 가까이 미뤄졌다.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막히고 분노가 치솟는다"라며 "죄 없는 희생자들은 아무 말을 하지 못하고 살아남은 자의 슬픔은 너무나도 크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라며 흐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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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장] 서현역 유족이 던진 휴대폰에 머리맞은 최원종 '서현역 흉기난동 사건'으로 목숨을 잃은 피해자의 유족이 14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서 진행된 첫 재판이 끝난 후 호송차로 이동하는 피고인 최원종에게 휴대폰을 던지며 울부짖었다. 최씨가 날아온 휴대폰에 머리를 맞자 교정직원들이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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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건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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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김혜빈씨 아버지는 "범인이 비공개 재판을 요청하고 변호인도 2명에서 4명으로 늘리는 등 사과도 인정도 하지 않고 감형받을 준비만 하는 느낌이 많이 들었다"라며 "오늘 처음 범인과 대면했는데 마음 같아선 숨통을 끊어놓고 감옥에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그래도 법원을 믿고 혜빈이 친구들과 함께 끝까지 싸워서 꼭 죗값을 치르게 하겠다"라고 말했다.
이후 호송버스에 최씨가 올라타자, 고 김혜빈씨 유족들은 범인에게 휴대폰을 던지고 소리치며 길바닥에 앉아 한참을 오열했다. 떠나가는 버스를 따라가며 유족들은 "우리 혜빈이 착하게 산 죄밖에 없는데 너가 도대체 왜..."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재판부는 수사 기록을 확인해야 한다는 피고인 측 요청에 따라 다음 공판기일을 10월 10일로 지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