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다. 1004는 날개 달린 천사다. 신안군은 천사 조각상 1004개를 세우고 있다. 섬 하나에 천사가 하나다. 그 섬들에 가면 생명이 꿈틀대고 역사가 흐르며 자연이 숨 쉬고 낭만이 넘실댄다. 미래의 역사·문화·환경 자원으로 각광 받는 신안 1004섬. 그 매력을 새롭게 만나는 연중기획을 시작한다. 황호택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겸직교수와 이광표 서원대 교수가 매주 1회 집필한다.[기자말]
옥도를 둘러싼 광활한 갯벌은 낙지의 낙원이다. 낙지의 집산지인 목포에서도 '옥도 낙지' 하면 최고로 알아준다. 옥도 낙지는 통통한 다리가 질기지 않고 연하다. 주민들은 옥도 낙지가 힘이 좋아서 다른 곳에서 나온 낙지와 함께 수조에 넣으면 옥도 낙지가 잡아먹어 버린다고 말했다. 갯벌이 좋아 강하고 맛있는 낙지가 나온다는 자랑이다.

정약전은 자산어보에 낙지를 이렇게 소개한다.

'생김새는 장어와 비슷한데 다리가 더 길다. 머리는 둥글며 길다. 진흙 구멍에 들어가 있기를 좋아한다. 9~10월에 배속에 밥알 같은 알을 품고 있는데 먹을 수 있다… 색깔은 흰색이고 맛은 달고 좋다. 회 또는 국과 포로 먹기에 적합하다. 사람의 원기에 도움이 된다. 야위고 비실비실한 소가 낙지 4~5마리를 먹으면 갑자기 건강해진다.'

어려서 크기가 작고 다리가 가는 낙지를 세(細)발낙지라 부른다. 낙지를 잘 모르는 외지인들은 다리가 세 개여서 세발낙지인 줄로 안다. 낙지의 다리는 8개다. 세발낙지가 성장하면 중낙지, 가을 늦게까지 자라면 대낙지가 된다. 세발낙지의 제철은 8~9월.  
 
 낙지는 식도락가들의 인기가 높고 요리법이 다양하다.
낙지는 식도락가들의 인기가 높고 요리법이 다양하다. ⓒ gettyimagesBank
   
옥도에서 낙지잡이를 구경하는 것도 재밌다. 갯벌에 구멍을 파낸 흙을 쌓아놓은 부릇이 있다. 눈에 잘 띄는 부릇의 주변을 살피면 낙지 구멍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게 구멍에는 부릇이 없다.

바바에서 솟아오르는 갯벌 낙지의 낙원

낙지는 밤에 갯벌에 물이 차기 시작하면 구멍에서 나와 먹이 활동을 하는 습성이 있다. 옛날에는 갯벌에 들어가 발목까지 물이 차면 관솔(송진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횃불을 들고 다니며 밀물 위에 떠 있는 낙지를 주워 담았다. 요즘은 손전등을 이용한다. 낙지 잡으러 갯벌에 들어갔다가 길을 잃으면 깊은 개(바닷물이 드나드는 갯벌의 수로)에 빠져 목숨이 위태로울 수도 있으니 주의할 일이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낙지들의 먹잇감인 칠게가 활개를 치고 있다.
물이 빠진 갯벌에서 낙지들의 먹잇감인 칠게가 활개를 치고 있다. ⓒ 황호택
  
요새는 통발로 낙지를 잡는다. 통발은 길이 60cm, 지름 30cm 정도의 원형 철사 틀에 그물을 입히고 물고기가 들어가는 입구를 만들어놓은 어구(漁具). 통발을 김양식용 지주에 묶어놓거나 개에 던져놓았다가 썰물 때 그 장소에 가서 통발을 올려 낙지를 끌어낸다.

낙지 요리는 어떤 생선보다 다양하다. 낙지볶음, 연포탕, 낙지비빔밥, 낙지호롱, 낙지찜, 낙지탕…. 갈낙탕은 갈비와 낙지, 낙곰탕은 낙지와 쇠고기, 낙삼탕은 낙지와 인삼을 함께 조리한 음식이다. 해물용궁탕에도 낙지가 들어간다. 세발낙지는 나무젓가락에 감아서 참기름 장에 찍어 생으로 먹는다. 작고 빨판 힘이 약하기 때문에 그냥 손으로 잡아서 통째로 먹어도 좋다.

전국의 60%를 차지하는 전남의 낙지 생산량이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낙지 개체수를 늘리기 위해 전남 해양수산과학원은 어미낙지 교접·방사를 통한 갯벌 낙지목장 사업을 한다. 포획한 암수 낙지를 양파망에 3일 정도 같이 넣어두면 교접이 이뤄진다.

갯벌에서는 암낙지와 수낙지가 체내수정을 한 후 서로 잡아먹기도 하지만 수조에서 먹이를 계속 공급하면 공식(共食) 습성은 사라진다. 수정한 어미 낙지가 품고 있는 알은 80~120개. 수정한 암낙지를 수조에 넣고 먹이를 주다 바다에 방류한다.
  
 갯벌 위에 모습을 드러낸 지주식 김 양식장. 끝없이 펼쳐진 옥도 갯벌 너머로
멀리 보이는 섬은 장병도.
갯벌 위에 모습을 드러낸 지주식 김 양식장. 끝없이 펼쳐진 옥도 갯벌 너머로 멀리 보이는 섬은 장병도. ⓒ 황호택

옥도와 장병도 사이의 광대무변한 갯벌은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장관이다. 바닷물이 물러간 곳에 새로운 대륙이 솟아난 것 같다. 밀물 때면 이 거대한 갯벌이 바닷물 속으로 삽시간에 잠겨버린다. 장병도에서도 낙지가 많이 난다.

옥도 김은 지주식이고 물과 갯벌이 좋아 김 맛이 뛰어나다. 김은 검은색 바탕에 붉은빛을 띠고 윤기가 나야 상품 가치가 높다. 좋은 갯벌에서 자란 옥도 김은 특유의 맛과 향을 낸다. 옥도에서는 한때 가내 수공업으로 어민들이 반년(半年) 농사인 김 양식을 해 짭짤한 소득을 올렸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더 좋은 일자리를 찾아 고향을 떠나면서 일손이 부족해 김 양식을 놓은 집이 많다.

하루에 두 번 풍경이 바뀌는 작약 공원

옥도에서 작약은 육지보다 조금 이른 5월 중순경 꽃이 핀다. 여러해살이풀로 빨강 하양 노랑 꽃이 크고 아름답다. 배가 옥도 선착장으로 들어서면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언덕에 작약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1만평 공원에 작약을 12만 그루 심는 공사다. 옥도 출신인 송승학 하의면 옥도출장소장이 갯벌이 묻은 장화를 신고 매일 마을 주민 10여 명과 작업을 한다. 내년 6월에는 제1회 작약공원 축제가 옥도에서 열린다.

작약공원은 정물화(靜物畫)가 아니다. 이이남의 미디어 아트처럼 화면이 조금씩 움직여 하루에 두 번 풍경이 바뀐다. 바로 옆 갯벌에서 밀물과 썰물이 들어오고 나간다. 옥도 선착장 마을은 빨간 지붕을 이고 있다. 퍼플섬의 컬러 마케팅 성공 사례를 이웃 섬들이 따라 배우느라 바쁘다.
  
 갯벌 앞 공원에는 노란 작약 꽃이 피어 있다. 맞은편 옥도 선착장 마을은 빨간 지붕을 이고 컬러 마케팅 경쟁을 벌인다.
갯벌 앞 공원에는 노란 작약 꽃이 피어 있다. 맞은편 옥도 선착장 마을은 빨간 지붕을 이고 컬러 마케팅 경쟁을 벌인다. ⓒ 장미숙

선착장 입구에 '맑은 샘물과 갯벌낙지의 섬'이라는 표지석이 서 있다. 갯벌 섬은 보통 샘물이 귀한데 옥도에서는 맑은 샘물이 펑펑 솟는다.

섬의 능선이 임금 왕(王)자를 이루고 있고 인근 갯벌 가운데에 있는 꾸자리라는 섬이 임금 왕자에 점을 찍어 구슬 옥(玉)자를 만들었다. 옥도라는 지명의 유래다. 여행자들은 玉자를 볼 수 없지만 드론을 높이 띄워 사진을 찍으면 나타날지 모르겠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 해군기지의 함정들이 일시에 여덟 군데 물길을 통해 국제항로와 서해로 진출할 수 있어 팔구포(八口浦)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상관측 기지가 들어선 섬이다.

일본은 1897년 청일전쟁 시기부터 옥도를 일본해군의 근거지로 사용했다. 일본해군은 러일전쟁에 대비해 옥도에 팔구포 방비대(防備隊)를 설치했다. 대한제국의 도서를 무단 침탈한 팔구포 방비대는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한 '전신취급' '기상관측' '식수공급' 등 후방 기지 역할을 했다.

자은 장산 신의 하의 도초 비금도를 이으면 다이아몬드 모양이 돼 다이아몬드 제도(諸島)라고도 불린다. 서해의 보석 같은 섬들이다. 남해에서 서해에 이르는 바다의 상황을 관찰하기에도 적지였다. 옥도 망마산에 올라가면 360도로 다도해의 풍광이 들어온다.
 
 일본군이 쓰던 놀자리 마을의 우물. 지금도 물이 콸콸 나와
주민들이 농업용수로 쓴다.
일본군이 쓰던 놀자리 마을의 우물. 지금도 물이 콸콸 나와 주민들이 농업용수로 쓴다. ⓒ 황호택
 
야산을 따라 형성된 골짜기가 옥도의 풍부한 식수원(食水源). 식수 사정이 나쁜 인근 갯벌지대의 섬들은 옛부터 옥도 물을 길어다 먹었다. 스물한 살에 하의도에서 시집왔다는 박월금은 한국해양문화연구원과 인터뷰에서 "하의도에서 물 떨어지면 옥도로 와서 배로 물을 실어 갔다"고 말했다. "어른들이 '시집 와서 옥도 물 먹은 게 이뻐진 것 봐라' 그러드만. 옥도 물을 먹으면 탈이 없어. 물이 하도 좋은 게."

기상 전신 식수 공급한 러일전쟁의 후방기지

러일전쟁 발발 직후인 1904년 2월 27일 전라도 관찰사가 의정부(議政府)에 보낸 보고서에는 '옥도 갈두지 부근에 일본인 4~5명이 배에서 내려 막(幕)을 치고 거처하고, 이후에도 배 6척이 오고 계속해서 큰 배가 도착하니 막을 이룬 곳이 10여 곳에 이른다'고 급박한 상황을 올렸다.

3월 7일 일본 군함이 50척에 이르고 갈두지 부근에 포를 설치했다고 보고했다. 일본 해군의 옥도 침범을 알리는 전라도 관찰사의 장계가 속속 올라와도 망해가는 대한제국은 속수무책이었다.

곰몰 마을 뒷산을 따라 망마산을 넘어가면 110여 년 전에 일본인들이 사용한 목욕탕이 남아 있다. 욕조는 성인 3~4명이 들어가기에 충분한 크기다. 바로 위에 뚜껑을 덮어 보존하는 옹기 우물이 있다. 가까운 곳에 1936년 세운 팔구포해군정(海軍井) 표지석이 서 있다. 대일본제국해군용지(大日本帝國海軍用地)라고 새겨진 돌기둥도 나왔다. 망마산 정상에는 일본군의 포대도 있었다.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옥도에 일본해군 목욕탕을 남겨놓고 갔다.
목욕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은 옥도에 일본해군 목욕탕을 남겨놓고 갔다. ⓒ 황호택
 
옥도에는 일본 해군기지와 함께 기상관측소가 설치됐다. 1904년 근대적인 기상관측의 시발지가 옥도다. 일본군이 한 일이지만 역사와 관련된 중요한 유적임은 분명하다. 기상관측소는 1906년 4월 목포로 이전했다. 옥도 기상관측소 자리에는 '근대 기상업무의 발상지'라는 표지판과 함께 기상관측 장비들이 서 있다. 옥도에 설치됐던 무선전신소도 이때 목포로 옮겨갔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옥도에 세워진 기상관측소.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옥도에 세워진 기상관측소. ⓒ 황호택
 
작은 섬인데도 일본 해군기지 때문에 일본을 오가는 증기 여객선이 기항했다. 500여 명의 주민 중 200명 가량이 돈벌이를 하러 현해탄을 건너갔다. 일본에서 자산가가 된 재일교포들은 고향을 그리워하며 물질적 지원을 했다. 재일교포들이 옥도에 설립한 신명학원은 이웃 섬 아이들까지 교육했다.
  
 당숲에 수백년 된 나무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조상들이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라는 주민들의 집단심리가 작용했다.
당숲에 수백년 된 나무들이 보존될 수 있었던 데는 조상들이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공간이라는 주민들의 집단심리가 작용했다. ⓒ 황호택
 
옥도의 당산(堂山)은 수령이 수백년으로 추정되는 동백나무 군락과 참팽나무들로 이뤄져 있다. 당제를 지내지 않은 지 50년이 넘었는데도 당숲이 잘 보존돼 있다. 당집 터도 남아 있고 당집 아래로는 아직도 맑은 물이 나는 당샘이 있다.

하의도 옹곡항에서 옥도 선착장까지 배로 30분 정도 걸린다. 1시간 50분 걸리는 목포~옥도 직항로가 하루 두 차례 있다. 신안군은 내년 작약공원이 개화할 무렵 퍼플섬~안좌도(우목도 선착장)~옥도(갈머리 선착장)를 오가는 관광선을 준비하고 있다. 그 무렵에는 올해 심은 작약들이 활짝 꽃을 피워 옥도의 언덕을 뒤덮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해양문화유산조사보고서08-옥도》, 2012
이재언, 《한국의 섬 신안군2》, 이어도, 2021
정약전 지음/권경순 김광년 옮김, 《자산어보》, 더스토리, 2022
이태원, 《현산어보를 찾아서4》, 청어람미디어, 2018
최성환, 《바다로 간 천사, 섬이 되다》, 신안문화원, 2012


#신안 천사섬#옥도#갯벌낙지#작약공원#일본군유물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탐사보도로 한국기자상을 두해 연속 수상했다. 저서 '박종철 고문치사와 6월항쟁'은 언론 지망생들의 필독서 반열에 들었다. 시사월간지 신동아에 황호택이 만난 사람을 5년 5개월동안 연재하고 인터뷰 집을 7권 펴냈다. 동아일보 논설주간, 서울시립대 초빙교수를 지냈고 현재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 대학원 겸직교수로 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