낸시 프레이저는 <좌파의 길 – 식인 자본주의에 반대한다>에서 사회적 재생산과 상품 생산의 분리를 통해 자본주의가 구성되고, 이는 지극히 젠더화되어 있다고 얘기한다. 또한 사회적 재생산은 과거에는 사적 영역으로 은폐되었으나 신자유주의가 이러한 서비스를 상품화시켰고, 여성을 대거 저임금 서비스 일자리에 충원시켰다고도 분석하고 있다.
그 최전선에 요양보호사, 간병사 등 다양한 돌봄을 수행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있다. 이중 간병사는 주로 큰 병원 병실 안, 환자 바로 옆에 상주한다.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목욕시키고, 옷을 갈아 입히며, 대소변을 수발한다. 약이나 음식을 준비하여 환자에게 먹이기도 한다.
이들 간병사는 병원의 지휘 감독을 받으나, 주로 직업소개소를 통해 고용된다는 이유로 특수고용이나 간접고용 노동자로 위치 지어진다. 장시간 노동에 내몰리고 사회 보험 역시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지난 호 요양보호사에 이어, 이번엔 간병사를 만나보았다. 8월 1일, 서울대병원에서 간병사로 일하고 있는 문명순을 만나, 대학병원 간병사가 겪는 고충과 산재보험, 상병 수당에 관한 생각을 들어보았다.
- 안녕하세요. 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문명순이라고 합니다. 간병을 시작한 지 19년 정도 되었고,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지부 희망간병분회장도 같이 하고 있습니다. 이전에는 다른 일을 하다가 간병을 알게 되면서 보람도 느끼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며 계속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알선 업무도 같이 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간병사의 어려움도 많이 접하고 있습니다."
- 그렇군요. 먼저 간병사들의 업무환경에 대해서 듣고 싶습니다.
"저희는 24시간 환자 옆에 머무릅니다. 보통 주 6일 일하고 하루 쉬는데요, 주 144시간 일하는 걸 원칙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화장실도 제대로 못 가요. 화장실 갔다 오면 환자 놓고 나갔다 오는 게 되어버리고, 보호자들이 원할 때 대답을 못 주면 일을 못 하는 것처럼 되어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병원엔 샤워 시설이 부족합니다. 그리고 옷을 일주일치를 가져다 놓고 입는 것도 아니니 저희가 빨아서 입어야 하는데, 세탁실이 따로 마련돼 있지 않습니다. 환자를 대하기 때문에 깨끗이 해야 하고, 보호자들이 대할 때도 이런 이미지를 보여줘야 하는데 불편한 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환자 옆에서 잠을 자는데요. 갈수록 베드가 좁아져요. 그러다 보니 팔을 제대로 뻗기도 힘듭니다. 박스를 베드 옆에 두고 팔을 올려 두고 자요. 식사의 경우에도, 따로 제공되는 건 없고 장소도 정해진 곳이 없습니다. 그래서 비용 아낀다고 얼린 밥을 가져다 놓고 녹여서 먹기도 해요. 환자와 떨어져서 먹으면 옆에 없다고, 환자 옆에서 먹으면 냄새 난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 주 144시간은 정말 믿기지 않네요. 간병사 알선 과정이나 병원과의 계약 형태가 어떠한가요?
"환자의 요청이 들어오면 제가 환자 정보를 확인하고 그 환자를 담당할 인력에 연락하여 진행합니다. 노조에 가입하는 사람들의 능력과 경력을 토대로 어느 환자까지 담당할 수 있는지 파악해두고, 업무가 들어오는 순서대로 엮어서 보내준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우리 병원은 간병료에 대한 협약을 맺기는 했는데요, 4대 보험을 면하고, 직접 고용을 피하려고 경쟁을 붙이기도 합니다.
저희는 요양보호사 제도가 생기면 다 병원에 직고용되는 줄 알았어요. 이 제도를 만들기 위해 다른 나라 사례를 직접 취재하기도 했고, 생긴 후에도 희망간병연구원에다 사무실을 차려 교육하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간병노동자들이 요양보호사 시험을 보고 자격을 따면 병원에 다 직고용이 되는 것으로 생각했지만, 정부에서는 고용 관리를 민간에 다 넘겨버렸어요. 이 상황 속 많은 간병사들이 4대 보험이 되고 실업급여도 받을 수 있는 요양보호사로 이직하기도 했습니다. 간병은 특히 힘이 없다는 걸 사람들이 안 거죠. 그렇게 일을 더 많이 하면서 더 많이 벌어야 하는 조건에 놓인 사람들이 간병사로 남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 소외감이 많이 컸을 것 같아요. 코로나19 이후 돌봄 노동과 관련한 이슈가 더 부상했잖아요. 관련해서 코로나19뿐 아니라 감염 병동에서의 근무 환경에 대해 여쭤보고 싶습니다.
"결핵 병동의 경우 N95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는데 숨이 콱콱 막힙니다. 저희는 24시간 있어야 하잖아요. 감염으로부터 실질적으로 보호가 안 되는 거죠. 그리고 코로나 유행할 때, 다른 직종과는 달리 병원에서 저희 간병사한테는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았어요. 그 상황에서 그나마 위험수당의 의미로 20만 원을 달라고 요구했고, 받기도 했어요. 그렇게 되니 이전에 감염되었던 간병사들이 그냥 자기가 맡겠다면서 가기도 했습니다. 가슴 아파요."
- 대학병원에 계시기도 하니까, 간호간병 통합병동(사적 고용 간병인이나 보호자 없이 병원의 전담 간호 인력이 24시간 환자를 돌보는 제도. 환자와 가족이 간병 부담에서 벗어나 직장·가정생활을 할 수 있고 간병인 고용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경감해주기 위한 제도)에 대한 입장이 궁금합니다.
"간호간병통합병동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할 병원 형태에요. 취지는 참 좋아요. 역설적으로 저희 간병사들도 저임금이고, 혹시나 나중에 저희가 입원하게 되면 간병사를 못 쓸 테니 통합병동으로 가면 그 혜택을 우리가 볼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통합병동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지금 통합병동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도 같이 봐야 해요. 왜냐하면 증상이 가벼운 환자들만 통합병동에 들어가고, 힘든 환자들은 통합병동에 들어갔다가 결국은 일반 병동으로 나와서 저희에게 간병 요청을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래서 간병사 처우 개선과 함께, 사회보장 범위를 더 늘리는 일도 필요해요. 4대 보험에 포함한다든지, 노령 연금을 좀 더 받을 수 있게 하든지 등 정책도 같이 바뀌어야 합니다."
- 말씀하신 것처럼 간병사들을 대거 직접 고용하여 중증 환자들의 간병도 지원하고, 간병사 사회 보장도 하는 방향으로 진행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많은 간병사들은 특수고용노동자로 분류되고 있고, 산재보험 혜택에서도 제외되고 있습니다. 이번 상병수당 시범사업에서도 대상자에서 제외되었고요. 관련해서 어떤 요구를 하고 있나요?
"간병사들은 나이가 많고 빈곤층인 경우가 많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로서 자식을 위해 희생하고 살아오면서, 노후 자금 마련도 못 했죠. 그렇다고 현재 자식들도 비정규직에 제대로 된 직장을 못 구하는 경우도 많죠. 이 상황에서 노령 연금만 가지고는 생활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계속 일하는 수밖에 없는데, 언제든지 다치고 쓰러져도 이상한 것 없는 간병 노동을 하고 있으나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고 상병 수당 시범 사업에서도 제외되고 있습니다. 다쳐도 짧은 휴식밖에 못 하고 불안정한 몸으로 현장에 복귀하고 있습니다. 정부 제도에 포함되는, 인정받는 노동자로 살고 싶은 바람이 있습니다."
인터뷰 와중에도 간병사들을 찾는 보호자들의 전화가 지속해서 빗발쳤다. 한 병원에서도 간병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 이렇게 치열하고 필수적인 돌봄의 최전선에서 노동하고 있는 이들이, 적정한 노동시간과 사회 보험을 보장받아야 한다. 간병사들도 아플 때 쉴 수 있어야 한다. 이들을 포함하여 병원이라는 공간에서 일하는 모두가, 동등한 노동자로서 지금 당장 인정받아야 한다.
"간병을 할 때 어떤 생각을 하냐면요, 내가 최선을 다해 간병을 하면, 후에 인과로 내가 좋은 간병사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도 그때가 되면 과연 간병사들이 남아 있을까 이런 생각도 해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유형섭 님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선전위원입니다. 이 글은 한노보연 월간지 일터 23년 9월호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