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부가 육군사관학교에 있는 독립운동가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하고 해군의 홍범도함 명칭도 변경하려는 움직임에 비판 여론이 거센 가운데 대구에서 홍범도 장군의 삶을 조명하는 북콘서트가 열렸다.
지난 18일 오후 대구시민공익지원센터 상상홀에서 열린 '내가 그리던 조국이 아니었네' 북콘서트에는 <민족의 영웅 홍범도> 평전을 쓴 이동순 영남대 교수(시인)와 김언호 한길사 대표가 참석해 홍범도 장군의 생애와 현 정부의 홍범도 지우기에 대한 의견을 밝혔다. 이날 북콘서트는 <오마이뉴스>와 <뉴스민>이 공동 주최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으로 평민 출신인 홍범도 장군의 평전을 쓴 이동순 교수는 홍범도 장군이 공산주의자라거나 자유시 참변의 책임자라는 국방부의 발표에 "어느 시대 문서인지 탄식이 나올 정도"라고 비판했다.
이 교수는 "홍범도 장군이 태어나신 연도는 1868년으로 한마디로 조선시대 사람"이라며 "러시아에서 볼세비키 혁명이 일아난 것은 1917년인데 조선시대 사람이 어떻게 공산주의자가 될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 교수는 "노동자, 농민을 위하고 없는 사람을 우대하는 그런 사회에 대한 정서적인 공감은 하셨을 것"이라며 "그러나 박헌영처럼 모스크바의 공산대학에 유학을 온 것도 아니고 맑스 레닌의 유물론도 전혀 모르는 분한테 뼛속까지 빨갱이라고 하는 말은 있을 수가 없는 모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범도 장군 공산당 입당, 부하들 먹이고 입히기 위한 것"
또 홍범도 장군이 돌아가신 후 러시아의 한 신문에 '볼세비키의 충실한 전사'라는 대목을 들어 공산주의자라고 비판하는 것에 대해서도 "구소련 체제 하에 살던 분이 돌아가셨는데 돌아가신 분에 대한 미담 정도로 생각해야지 공산주의자라고 단정 짓는 것은 터무니없는 확장 해석"이라고 지적했다.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입당과 관련해 이 교수는 "당시 장군이 많은 부하를 거느리고 있었는데 부하들을 먹이고 입히고 하려면 당원이 되어야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면서 "부하들로부터 존경을 받을 수밖에 없는 역할을 하셨다"고 강조했다.
자유시 참변에 홍범도 장군의 책임이 있다는 주장에도 "홍범도 장군이 처음에 상해파를 지지하다가 방침을 바꾼 게 맞다"면서도 "이르쿠츠크파를 지지한 것은 일단 러시아 땅에 들어온 이상 그들이 시키는 대로 따르는 것이 맞고 그 다음에 우리가 요구하는 것을 그들에게 청하자는 의도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끝까지 무기 반납에 불응하다가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할 것 같다는 것을 지휘관으로서 직감했고 무기를 반납하는 쪽으로 기울게 된 것"이라며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을 당시에는 홍범도 장군이 부하들을 데리고 이르쿠츠크로 떠나가서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이 교수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나고 엄청난 비극이 발생하자 홍 장군이 급하게 돌아와서 슬피 울고 통곡을 하며 뒷정리를 하면서 시신을 수습했다"며 "생포된 600명을 석방시키기 위해 스스로 재판관을 자청해 참여하고 570명을 석방시켰다"고 말했다. 이어 레닌을 만나 나머지 30명도 석방될 수 있도록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홍범도 장군은 자신뿐만 아니라 두 아들과 부인까지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희생됐다"라며 "국방부 공식 문서를 보면 이게 어느 시대 문서인지 탄식이 나올 정도"라고 흉상 철거와 동상 이전에 대해 강하기 비판했다.
이어 그는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철거한다는데 흉상을 방치하게 놔둘 게 아니라 우리 가슴속에 모시자"며 "대구만이 아니라 삼천리 방방곡곡 우리 한국인들의 가슴 속으로 장군을 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자신이 직접 쓴 시 '하늘에서 만난 홍범도 부부'를 진행자 조영주씨와 함께 낭송을 하고 북콘서트 말미에는 최근 페이스북에 올렸다가 삭제를 당하기도 했던 '홍범도 장군의 절규'를 낭송했다.
김언호 한길사 대표 "권력자들, 결국 진실에 겁 낼 것"
북콘서트에 함께 참석한 김언호 한길사 대표는 최근 홍범도 장군의 역사를 없애려는데 대해 "가치 있는 책을 왜 내야 하는지 다시 생각을 하게 된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출판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진 두 가지 사명이 있다"며 "하나는 우리 말로, 우리 글로 책을 만드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책을 통해 역사를 바로세우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역사의 진실을 담아내는 것이 책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며 "진실은 늘 승리하고 역사의 바람직한 방향으로 작동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책 만드는 일이 저는 늘 아름답고 축제"라고 말했다.
<민족의 영웅 홍범도> 원고를 받았을 때 어떤 느낌을 가졌느냐는 질문에 김 대표는 "홍범도 장군은 너무나 신화적인 존재이고 범할 수 없는 위대한 상징 같은 것"이라며 "책에 담겨있는 콘텐츠가 중요하기 때문에 좀 무거워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책을 만들면서 저자하고 끊임없이 대화하고 우리 젊은이들에게 장군의 정신을 심어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며 "최근 권력자들에 의해 역사 공부를 많이 할 수 있게 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강조했다.
책이 잘 안팔릴까 걱정이 없었느냐는 질문에는 "좋은 책은 궁극적으로 읽힐 수밖에 없다는 믿음이 있었다"며 "독립정신을 훼손하는 무지막지한 저들의 모습이 안타깝지만 국민들이 쉽게 우리 독립정신을 허물어지게 두지 않을 것이다. 권력자들은 결국 진실에 겁을 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북콘서트에는 미리 신청한 60여 명의 시민들이 행사장을 가득 메웠고 한 참석자는 다른 참석자들을 위해 떡을 준비해 오기도 했다. 또 행사가 진행되기 전부터 줄을 서 저자 사인을 받는 등 많은 호응을 보이며 열기를 높였다.
이날 진행한 북콘서트 영상은 <오마이TV> 유튜브를 통해 다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