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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9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에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일부개정법률안'(윤준병의원 대표발의, 이하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 문제는 오래 전부터 학계와 시민단체에서 제기되었다.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의 의결로 1894년 경복궁을 점령하여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한 침략자 일본군과 맞서 싸운 전봉준 장군 등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독립유공자로 추천·서훈될 길이 열린 것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9월 20일 독립보훈 업무를 맡고 있은 국가보훈부는 2차 동학 서훈을 반대하는 입장을 아래와 같이 밝혔다.
 
"동학농민혁명 2차봉기 참여자에 대한 독립유공자 포함 여부를 정무위에서 논의하고 있고, 현재 학계 다수에서도 동학 2차봉기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9일 문화예술법안소위에서 여야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법률로 강제해 입법한 것은 독립유공자 서훈 체계를 무력화한 것임.

독립유공자 및 국가유공자의 경우 엄격한 보훈심사를 거쳐 유공자로 인정하는 반면, '동학농민명예회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대상자를 심사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으로, 보훈 관련 법안을 무시하고 형평성도 간과한 과도한 특혜를 주는 포퓰리즘 법안임."
 
위의 국가보훈부 입장에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부합되지 아니한 내용이 있어서, 독립운동사 전공 역사학자이며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로서 반박하고자 한다.

첫째, 보훈부는 "현재 학계 다수에서도 동학 2차 봉기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라는 입장을 냈다.

이 입장은 궤변, 즉 이치에 맞지 않는 말이다. "현재 학계 다수"는 누구를 지칭하는가. 보훈부가 지칭하는 "현재 학계 다수"는 보훈부 산하에 있는 독립유공자 서훈 공적심사위원회에 소속된 공적심사위원들(역사학자들)을 지칭하는 것 같다. 2021년 6월 25일에 동학서훈 문제를 논의하는 제1공적심사위원회 회의 때에 17명이 참석하였고, 같은 해 9월 9일 제2공적심사위원회 회의 때에 10명이 참석하였다.

문제는 제1공적심사위원회와 제2공적심사위원회가 단 한명의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도 참여할 수 없는 인적 구성이었다는 데에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현재도 제1공적심사위원회 안에 있는 1분과(의병, 3·1운동), 2분과(국내항일), 3분과(해외항일)에 단 한명의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가 참여하지 않고 있다. 제2공적심사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역사학자는 자기가 전공한 분야가 아니면 깊숙이 알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이러한 공적심사위원회의 구성원들에게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서훈과 독립유공자 인정 여부를 물었다는 것 자체가 불공정하다.
 
왼쪽부터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관장, 김윤덕 의원, 주영채 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
▲ 김윤덕 의원실 동학 대표단 예방 왼쪽부터 이윤영 동학혁명기념관장 관장, 김윤덕 의원, 주영채 동학농민혁명 유족회장, 박용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서훈국민연대 상임대표
ⓒ 이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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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8월 5일 동학농민혁명 전공 역사학자들은 "늦었다. 그러나 이제라도 동학 순국선열을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기를 바란다"라는 성명서를 냈다. 수많은 학술 논문과 저서에서 이미 2차 동학농민혁명을 항일투쟁 즉 독립운동이라고 논증하였다. 1998년부터 2023년 지금까지 대학의 한국독립운동사 개설서로 쓰이는 <한국독립운동사 강의>(한울)에서는, 한국의 독립운동이 갑오의병(1894)과 2차 동학농민혁명(1894)에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쳐왔다. 이처럼 역사학계 전문가의 역사적인 평가가 끝났다.

1980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부터 2022년 현재 9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까지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한 항일 구국 투쟁 즉 독립운동으로 기술하고 있다. 2021년 10월 5일 전국의 역사교사들(38명)은 '상식과 정의가 통하는 나라를 원한다'라는 제목으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 대한 서훈 촉구 성명서'를 발표하였다. 역사교사들은 9종의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나오고 있는 "전봉준 공초'의 내용을 성명서에 아래와 같이 소개하고 있다.

"심문자: 전주 화약 이후 다시 군대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인가?
전봉준 : 일본이 개화를 구실로 군대를 동원하여 왕궁을 공격하니, 충군애국의 마음으로 의병을 일으켜 일본과 싸워 그 책임을 묻고자 함이다."


역사교사들은 위의 사료를 통해, "2차 동학농민군이 일제의 국권 침탈에 맞서 항일무장투쟁을 기치로 내걸고 일본군과 싸웠음을 확인하고, 이를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라고 밝혔다. 계속해서 역사교사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을미의병(1895) 참여자는 계속 서훈하면서, "을미의병과 같은 시기에 일어난 2차 동학농민혁명(1894∼1895) 참여자는 단 한명도 서훈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고 개탄하며 시정을 촉구하였다. 

둘째, 보훈부는 "19일 문화예술법안소위에서 여야 합의없이 일방적으로 법률로 강제해 입법한 것은 독립유공자 서훈 체계를 무력화한 것이다"라고 밝혔는데, 이것도 사실이 아니다. 2023년 7월 6일에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열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문화예술법안 심사소위원회 회의에서 이미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이 심도 있게 논의·심사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여야 위원들의 활발한 의견 개진과 심사를 국민 누구나가 확인할 수 있다(「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회의록」(문화예술법안심사소위원회, 2023년 7월 6일), 17∼25쪽 참조할 것).

셋째, 보훈부는 "'동학농민명예회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대상자를 심사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는데, 사실이 아니다.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은 서훈 대상자를 "심사절차 없이 무조건 유공자로 인정하는 것"라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에는 "위원회가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한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로서 공적이 뚜렷한 사람에 대해"서만 문체부장관이 "서훈 또는 표창을 추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아울러 문체부장관은 "'상훈법'에 따라" 서훈 대상자를 추천할 수 있다고 단서 조항을 달고 있다.

넷째, 보훈부는 "'동학농민명예회복법' 일부개정법률안은 과도한 특혜를 주는 포퓰리즘 법안이다"라는 입장을 냈다. 이 입장은 전형적인 궤변이다. 지금까지 보훈부는 전봉준·최시형 등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한 적이 없다. 그러면서 보훈부와 공적심사위원들은 을사의병과 무관한 을미의병(1895) 143명을 포상하였다. 

을미의병 시기 일본군과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이 236명이었고, 관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이 60명이었다. 전사자가 총 296명이었다. 전사자가 대략 3백여 명이었다.(김상기, 「한말 일제의 침략과 의병 학살」, <역사와 담론>제52집, 호서사학회, 2009, 4, 93쪽.; 김상기, 「전기의병의 일본군에 대한 항전」, <한국근현대사연구>20, 한국근현대사학회, 2002, 50쪽).

이에 반해 2차 동학농민혁명은 참여자와 전사자의 규모에서 을미의병을 능가하였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했는데, 희생된 농민군 사망자가 3만 명, 부상당한 뒤 사망한 자를 포함하면 5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았다(나카츠카 아키라, <현대 일본의 역사인식>, 모시는사람들, 2014, 235쪽). 2차 동학농민혁명의 전사자가 을미의병 전사자보다 100배를 능가하였다.

현재(2023년 3월)까지 서훈을 받은 전체 독립유공자는 1만7748명이다. 의병(을미의병·을사의병·병오의병·정미의병) 참여자 중엔 2715명이 서훈을 받았다. 그 가운데 을미의병 참여자는 143명이다. 서훈을 받은 143명은 을사의병·병오의병·정미의병 참여와 무관한 을미의병만 참여한 이들이다. 

똑같은 항일무장투쟁인데, 을미의병은 서훈했다. 잘한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2차 동학농민혁명에 대해서는 서훈 조치를 하지 않는가? 이는 형평성과 공정성에 지극히 반한 것이었다.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은 "과도한 특혜를 주는 포퓰리즘 법안"이 아니다. 보훈부가 지금까지 전봉준 등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 서훈에서 배제해 온 것을 바로잡는 법안이다.

1895년 을미의병 서훈이 합당하다면, 2차 동학농민혁명(1894) 참여자도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 양반 유생이 주류를 이룬 을미의병은 서훈에서도 우대를 받아왔다. 농민 출신이 대다수를 이루고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서훈에서 차별과 천대를 받아왔다. 이제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에게도 서훈의 기회를 주어야 한다. 유족이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474명에 불과하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독립유공자로 서훈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 형성은 법률('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등의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2004)) 제정과 2019년 2월 국가기념일 제정으로 완결되었다. 결자해지는 보훈부가 해야 한다. 보훈부는 현재 국회 문체위에서 심사 중인 '동학농민명예회복법 개정안'에 협조하기를 바란다.

태그:#전봉준, #동학농민혁명, #국가보훈부, #을미의병, #전봉준 공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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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 한국사학과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과 우리말로 학문하기 모임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고려대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와 한글학회 연구위원을 역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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