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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환경새뜸] 수달 해수욕장, 수달굴, 수달 식탁... 합강습지 보트탐사 지난 14일 세종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수달 생태조사’에는 최 대표와 황성아 가람수풀생태환경연구소 대표, 박창재 세종환경연합 사무처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보트를 타고 합강습지와 하중도, 세종시 이응다리 앞쪽까지 5km 구간을 살펴보며 수달 생태 조사를 진행했다. 또 지난 1일 세종환경운동연합과 수달과함께사는금강시민행동(준)은 합강습지 등에서 성무성 물들이연구소 소장이 참여한 가운데 ‘시민과학자 금강 어류 조사’를 진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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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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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수달의 천국이네요."
최종인 한국수달네트워크 공동대표는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않았다. 세종시에 있는 '합강습지'에서 수달의 배설물과 발자국, 수달이 강변에 파놓은 굴 등 수달의 흔적을 수없이 목격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 대표는 고무보트 앞에서 노를 저으면서도 연신 생선 비린내인 "수달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진다"면서 수달의 생태에 대한 '선상 강론'을 이어갔다.
지난 14일 세종환경운동연합이 주최한 '수달 생태조사'에는 최 대표와 황성아 가람수풀생태환경연구소 대표, 박창재 세종환경연합 사무처장 등이 참여했다. 이들은 보트를 타고 합강습지와 하중도, 세종시 이응다리 앞쪽까지 5km 구간을 살펴보며 수달 생태 조사를 진행했다. 또 지난 1일 세종환경운동연합과 수달과함께사는금강시민행동(준)은 합강습지 등에서 성무성 물들이연구소 소장이 참여한 가운데 '시민과학자 금강 어류 조사'를 진행했다.
[합강습지엔 수달이 산다] 보트 타고 조사작업
세종시 합강습지는 금강과 미호강이 만나는 하천생태계와 전월산 등 육상생태계가 만나는 곳에 있다. 두 강의 합수부에서 금강을 따라 길이 2km, 넓이 1km에 걸쳐 버드나무 군락이 형성된 이곳은 수달, 삵, 금개구리, 흰꼬리수리, 참매, 큰고니 등 멸종위기종이 서식하는 1등급 습지이며, 2018년 생태계변화관찰지역으로 지정됐을 정도로 자연생태계의 보고이다.
"아니, 여기로 한 번 와 보세요."
최종인 대표는 14일 합강습지 동쪽 끝에 위치한 미호강 보행교 밑에 보트를 내려놓자마자 도보로 미호강을 거슬러 오르며 "수달의 배설물이 여기저기에 깔려 있다"면서 일행을 안내했다. 이날 보트탐사 첫 출발지는 금강과 미호강이 만나는 지점인 합강습지 끝에 넓게 형성된 모래톱이었다. 최 대표는 보트에 오르지도 않고 이곳에 머물면서 감탄사를 연발했다.
"고라니가 이렇게 똥을 한 곳에 무더기로 쌌다는 것은 합강습지가 인간의 간섭을 받지 않는 안전한 곳이라는 징표입니다. 대부분 누군가에게 쫓기듯이, 흘리면서 똥을 싸죠. 그리고 여기, 비닐과 생선 가시가 보이죠? 이건 수달 똥입니다. 대부분 자기 영역을 표시하려고 똥을 누는데, 이건 아주 편안한 상태에서 마음 놓고 배변한 흔적입니다."
수달 똥에서 풍기는 비릿한 '생선 향기'... 외래어종 '박멸' 야생동물
최 대표는 배변의 상태만 보고 야생생물들의 심리까지 꿰뚫었다. 이날 모래톱 위에서 조사단이 육안으로 관찰한 야생생물은 거의 없었지만, 모래톱에 새겨진 흔적은 지울 수 없었다. 수달뿐만 아니라 삵과 고라니, 새들이 뛰어다닌 발자국들이 어지럽게 나 있었다. 이곳이 야생동물들의 놀이터라는 움직일 수 없는 징표였다. 이날 최 대표의 '수달 강의'도 일품이었다.
"수달 똥 주변에는 너구리와 족제비 등 많은 야생생물들이 몰려듭니다. 수달 똥에서 풍기는 비릿한 생선향기 때문이죠. 또 운이 좋으면 수달이 먹고 남은 '왕건'을 건질 수 있습니다. 수달은 항상 물고기의 앞지느러미를 꼭 먹는데, 겨울을 날 수 있는 지방을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죠. 배설을 할 때 생선 가시가 걸리지 않게 하는 데에도 기름 성분 흡수는 필수입니다."
최 대표는 "물고기를 먹다 말고 수풀 속 등에 감춰두는데, 다른 동물들이 이를 찾아 먹는다"면서 "수달은 식량을 남기지 않고 다른 동물들에게 베풀고 나누면서 공생을 하는 생명체"라고 말했다.
최 대표는 수달이 인간에게도 이로운 존재라고 말하기도 했다. 대표적인 게 외래어종 퇴치였다. 최 대표는 "수달이 가장 좋아하는 물고기는 우리에게 골칫거리인 블루길"이라면서 "수달이 자리를 잡으면 그 지역에는 블루길과 황소개구리를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수달 해수욕장, 수달 굴, 수달의 식탁... "합강습지는 최고 서식처"
이날 합강습지에 처음 왔다는 최 대표는 "습지는 쓸모없는 땅이 아니라 홍수 때 물을 머금고 유속을 줄이는 효과가 있고 야생생물들에게는 쉼터를 제공한다"면서 "전국을 돌아다녀봤는데, 합강습지는 수달 서식처로서는 그 중 최고라고 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이날 보트를 타고 합강습지와 금강이 만나는 지점을 조사하자, 수달의 흔적이 곳곳에서 돌출했다. 물가에 수풀이 우거진 곳에 난 맨들맨들한 통로. 수달이 수시로 다녀간 흔적이다. 수풀로 덮인 모래톱에 있는 축구공만한 구멍은 수달굴이다. 몇 시간 전에 수시로 들락거린 발자국과 똥이 선명했다.
노를 저어 합강습지 하류에 있는 햇무리교 앞의 하중도에 보트를 접안하고 탐사를 벌였다. 사람의 손을 타지 않은 곳이다. 멸종위기종 2급인 흰목물떼새 3마리가 자갈밭 위에 있다가 허둥지둥 날아갔다. 너구리 똥이 한 무더기 쌓여있고, 고라니 똥도 여기저기 흩어져있었다.
"여기는 수달의 해수욕장이네."
수달 2마리가 기어 올라온 흔적과 모래톱 위에 어지럽게 난 수달 발자국들을 보며 최 대표가 한 말이다. 이날 수달 조사단 일행은 하중도에서 나와 2~3km 하류 지점에 있는 '세종 이응다리' 아래쪽의 금강 좌안의 빗물 배출관 옆에 보트를 접안했다. 물소리가 요란했고, 바위 위에서 수달 똥도 발견했다.
최 대표는 "나는 물소리를 듣고 이곳에 왔다"면서 "수달은 물소리가 나는 곳에 물고기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수달도 물소리를 듣고 이곳에 와서 물고기를 잡아먹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달은 바로 아래쪽, 바위로 만든 접안시설에 70~80cm가 되는 대형 잉어의 앞지느러미와 내장을 파먹고 남겨놓았다. 이른바 금강에 마련된 '수달의 식탁'이었다.
[멸종위기 1급 어종] 수문 개방한 뒤 흰수마자와 미호종개 서식처 확산
지난 1일에도 이곳에서는 어류조사가 진행됐다. 세종환경운동연합 등이 진행한 '시민과학자 금강 어류 조사'. 윤석열 정부 들어 가속화되는 공주보, 백제보, 세종보 담수 움직임에 대비한 멸종위기 1급 어종 흰수마자, 미호종개 서식지 실태조사였다. 이날 실시한 조사는 백제보 상류, 유구천 합수부 등 세종시와 공주시 구간에 걸친 5개 지점이었고, 마지막이 합강습지였다.
성무성 물들이연구소 소장은 이날 물이 불어나고 물살이 센 상황에서도 유구천 합수부와 합강습지에서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를 관찰하는 데 성공했다. 4대강 사업 이후 금강에 세워진 3개 보의 수문이 닫혔을 때에는 사라졌던 생명체들이다. 하지만 2018년부터 순차적으로 세종보와 공주보, 백제보 수문을 열고 모래톱이 되돌아온 뒤에 발견되기 시작한 어종들이다.
성 소장은 이날 "미호강에서 처음 발견된 미호종개는 멸종위기 1급이며 천연기념물이고, 흰수마자 역시 우리나라 고유종이며 멸종위기종 1급"이라면서 "두 어종이 모두 깨끗한 모래 여울이 있어야만 살 수 있는 물고기들"이라고 말했다. 보의 수문이 닫혀 강바닥에 펄이 쌓였을 때에는 도저히 살 수 없는 물고기들인 셈이다.
세종환경운동연합은 최근 보도자료를 통해 "2021년 12월, 서울여자대학교에서 있었던 한국생태학회에서 발표한 '금강 수계 보 개방 이후의 멸종위기어류 흰수마자 분포현황 및 서식특성 조사' 포스터 자료에 의하면 금강의 흰수마자는 이번 조사지점인 미호강 최하류 합강일대에서 44개체, 세종보 직하류에서 68개체, 공주 정안천 합류지점에서 170개체, 공주 유구천합류지점에서 287개체, 공주시 만수리 지점에서 130개체, 공주 탄천면 대학리지점에서 137개체가 조사된 바 있다"고 밝혔다.
4대강사업으로 금강에서 자취를 감췄던 멸종위기 어류 '흰수마자'가 세종보 수문개방 이후 2019년 세종보 직하류에서 확인된 데 이어, 다른 지점 어류조사에서도 발견되고 있어서 그 분포 범위가 확장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관련 기사 : 멸종위기 1급 '흰수마자' '미호종개' 금강 서식지 확산 https://omn.kr/25mmt
"수문 닫으면, 수달과 흰수마자 등 멸종위기종 모두 사라질 것"
하지만 이날 성 소장과 함께 어류조사를 벌였던 환경단체 관계자들과 수달 조사에 참여했던 관계자들은 2018년부터 전면 개방됐던 세종보 재가동 움직임에 대해 이구동성으로 우려를 표명했다.
성무성 소장은 "3개보가 다시 닫힌다면 흰수마자와 미호종개는 금강에서 자취를 감출 것"이라면서 "특히 합강습지 지역은 작년에 국민 세금을 들여 미호종개 2000마리를 방사한 '복원지'이기 때문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장소"라고 말했다.
최종인 대표도 "세종보가 닫히면 이곳에 펄이 쌓일 것이고 수달은 특히 물갈퀴 발바닥에 펄이 묻으면 이곳에 남아있을 리가 없다"면서 "모래톱은 수달뿐만 아니라 모든 야생생물들이 모래목욕을 할 수 있는 천국 같은 곳인데, 다른 생명체들도 이곳에 생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우려했다.
두 조사에 모두 참여했던 박창재 세종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도 "세종보가 닫히면 이곳은 모래톱 대신 펄이 가득 들어차서 이물질을 정화할 수 없는 오염의 공간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고, 황성아 가람수풀생태환경연구소 대표도 "세종의 정중앙에 위치한 세종의 상진인 합강습지의 아름다움을 미래 세대들이 누릴 자유를 박탈할지 모른다"고 밝혔다.
지난 1일 어류조사에 참여했던 조성희 장남들 보전 시민모임 사무국장도 다음과 같이 우려했다.
"두 물이 하나 되는 합강습지는 다양한 생태계가 형성된 곳입니다. 경관도 훌륭하지만, 특히 겨울이 되면 인근의 장남들에 머물던 멸종위기 2급 야생생물인 큰고니가 이곳을 왕래하며 먹이활동을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세종보가 가동됐을 때의 모습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악취 때문에 '냄새 난다' '머리 아프다'라는 민원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왜 이걸 반복하려하는지..."
조 국장은 "금강은 흐르는 강이고 모래가 아름다운 강"이라면서 "세종보를 재가동하는 건, 금강에 깃든 많은 생명들에게 죽음을 강요하는 일"이라고 우려했다.
지난 14일, 수달 조사 동행 취재를 마치고 달려간 공주보 고마나루. 백제문화제 개최를 위해 수문을 담수하려는 공주시와 환경부에 맞선 환경단체 농성천막을 80여명이 달려들어 사정없이 찢는 장면이 연출되고 있었다. 다음날인 15일, 환경단체 활동가들은 공주보 담수로 불어나는 물속에 뛰어들어 7시간 동안 수중농성을 벌였지만, 결국 가슴께까지 차오르는 물속에서 나왔다.
지구상에서 완전히 없어질지도 모르는 멸종위기 야생생물들의 천국인 합강습지는 무사할 수 있을까? 두 차례의 조사작업을 동행취재하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물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