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서경(1977년생) 개인전 '버들 북 꾀꼬리'가 삼성 리움미술관에서 12월 31일까지 열린다. 미술관은 이 작가의 예술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초기작부터 최근작까지 130여 점을 선보인다. 그녀는 전통음악 악보나 기호 등을 동시대 미술과 결합해 현대미술을 모색한다.
그녀는 동양화 기법에 기반을 둔 평면, 조각, 설치, 영상, 퍼포먼스 작업을 한다. 그런데 이런 방식이 서구미술계에서도 먹혔다. '아트바젤'에서 매년 수여하는 '발루아즈 예술상'을 2019년에 수상했다. 이후로 그녀는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 미국 필라델피아 현대미술관 등 유수의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았다. 그녀에 대한 국내외 평론도 활발하게 일고 있다.
그림이 음악이 되는 '풍경화'
강서경은 전시장을 캔버스 삼아 우주 만물이 공존하는 풍경화를 그린다. 그녀는 그림에 대해 '나와 함께 사는 다른 이들의 존재, 그들의 움직임을 인지하고, 더불어 인연을 맺고, 미술관 본관에 풍경과 장면을 만들고 또 거기 설치된 오브제로 연주하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다시 말해 전시장 설치물을 하나의 어울림으로 연주한다는 의도를 비친다.
이런 작가의 숨은 뜻은 아마도 관객이 전시장 숲을 거닐면서 미술은 음악처럼 감상하라고 권하는 것 같다. 이런 점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퍼포먼스(Activation)'가 3일간 10월 26일, 27일, 29일(10시~12시)에 리움 미술관에서 워크숍으로 열린다. 누구나 참가할 수 있다.
이번 제목은 '버들 북 꾀꼬리', 이는 한국 전통가곡('이수대엽') 가사인 "버들은 실이 되고 꾀꼬리는 북이 되어"에서 왔다. 새 중에서는 꾀꼬리를, 나무 중에서는 수양버들을 작가가 선호하는 모양이다. 버드나무 아래 꾀꼬리 소리가 흐르는 풍경이 주변의 설치물과 접하면서 정다운 소리를 낸다고 할까. 현대미술은 소리로 그리는 게 추세인데 그런 분위기다.
미술관 로비 영상, '버들 북 꾀꼬리'
로비에 설치된 위 영상은 이미지, 사운드, 모바일이 공존하는 공감각 세상을 그린 것이다. 작가는 이에 대해 "이번 전시는 수만 명의 꾀꼬리가 풀려 있고, 함께 모여서 서로 다름을 이야기하고 그걸 나눌 수 있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미술가로서 고민해온 그런 여정을 '북'을 치며 함께 모일 수 있는 장소로 보여주고 싶었다"라는 설명이다.
이 미디어 풍경이 관객에게 말을 걸고 그들의 손을 잡아당기고 그들의 호기심을 일으키면서 그들에게 수양버들 사이로 노니는 꾀꼬리가 지저귀는 소리를 들어보라고 유인하는 것 같다. 사실 현대미술 감상에서 관객은 중요한 주체다. 그런 점을 살폈는지 관객을 작품과 연관시키고 그래서 관객이 스크린 안으로 들어와 놀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할머니 서사, 창작의 동력
위 작품은 작가의 초기 대표작이다. '그랜마더 타워'라는 제목이 특이하다. 색실을 가지고 그걸 철사에 휘휘 감아 쌓아 올리는 기법을 쓴다. 이런 방식이 이후 작업에도 단골 메뉴가 된다. 왜 할머니 등 한국적 소재가 작품에 등장하느냐는 질문에 작가는 이렇게 답했다.
"저는 어려서부터 미술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그림을 어떻게 그릴지 보다, 그림이 뭐지 무슨 생각으로 그리지를 고민했어요. 제가 한국화 전공이다 보니 우리 옛 기록들 그들의 생각들 추적하게 되고 저도 모르게 우리 문화와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를 제 작품에 담겨 있더라고요. 저는 그림이란 시대의 움직임과 풍경을 공감각적으로 풀어내는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업실에서 이런저런 실험을 하지만, 때로 병중이셨던 제 할머니와 대화에서 받은 감동도 제 작품에 동기가 되었어요. 이건 한국인, 특히 한국의 모든 할머니 이야기죠."
이 작품은 소프트 파워 같은 힘을 가진 할머니가 주인공이다. 이 작품을 보면 민담에 나오는 '꼬부랑 할머니'가 떠오른다. 민담이란 사회적 약자가 우여곡절 속에 결국은 승리한다는 이야기다. 수많은 아리랑고개를 넘다 보니 할머니가 꼬부랑 신세가 됐지만, 작가는 그런 힘겨움 속에서도 굴하지 않는 할머니의 정신을 자신의 치열한 예술혼과 동일시한 것 같다.
사계절이 있는 '산수화'
이번에는 설치 산수를 보자. 강서경의 21세기형 산수화는 어떤 형상일까? 그 구조가 암석에 그려진 백제 시대 '산수문전(山水文塼)' 닮았다. 추상과 구상과 움직임의 요소가 포함돼 있어 기존 것과 다르다. 사계절을 다 담아 변화하는 시간의 흐름도 느끼게 한다. 전시장 바닥에 설치해 더 친근감이 간다. 그래서 관객 속으로 깊숙이 파고든다.
사계절의 변화를 실로 색칠한 산수화라 그래서 그런지 만지고 싶어진다. 시각에 촉각의 유혹을 더 한다고 할까. 의인화된 산이 우리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건다. 우리가 일상에서 견디기 힘든 일을 당할 때도 나처럼 꿋꿋하게 버티라고 충고하는 것 같다. 그런 걸 이겨낼 때 너와 내가 '물아일체'가 되어 이번 전시의 주제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전통 문양을 전시 개념으로
또 전통 '화문석' 무늬에서 따온 작품을 보자. 이건 원래 조선 시대 1인 궁중 춤인 '춘앵무(春鶯舞)' 공간의 경계를 정하는 사각형에서 유래한다. 작가는 전통의 무늬를 현시대에 맞게 치환한 셈이다. 작품에 공백이 많아 공명도 준다. 또 이걸 건축적 크기로 확장할 수도 있다.
위 '자리' 연작 프레임과 화면 구획을 새롭게 해 독특함을 준다. 이런 격자무늬는 얼핏 보면 서양 것 같으나 조금 다르다. 오히려 우리 전통 창호지에서 보는 문살을 연상시킨다. 여기에 시간을 담아 여러 모양으로 변형한다. 작가가 이번에 선보인 세종이 창안한 '정간보(井間譜)'에서 온 우물 '정(井)'나 '모라(Mora)' 연작도 다 같은 착상에서 온 것이다.
더불어 관계 맺는 풍경
이번엔 천장에 걸린 작품 '귀'를 보자. 뜬금없이 왜 쌍으로 만든 '귀'가 등장하나? 이건 강서경 작가는 전시장 상호연계성을 갖추는 것을 중시하는 데서 온 것이리라. 전시장 주변의 산과 그 위에 흐르는 뜬구름 주변 설치물로 서로 긴밀하게 얽히고설켜 있음이 느껴진다.
작가는 사람 얼굴이 이목구비가 연결돼 있듯, 우주 만물이 다 연결돼 있다고 본다. 관객도 시공간의 연장선에서 작품을 감상해 보라고 권하는 것 같다. 또 작품 사이에 흐르는 여백을 즐기며 오브제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고, 상호 간 소통을 해보라고 권한다. 그녀가 말하는 참된 그림(眞景)을 요약하면 '인간과 우주와 자연(天地人)'이 긴밀한 연분을 맺는 것이다.
이전 전시를 기획한 '곽준영' 리움 미술관 전시기획실장은 "강서경 작가의 이번 전시는 미술관 공간에서 유기적으로 헤쳐 모인 각각의 작품이 서로 작용하는 연대의 서사를 펼친다. 작가는 이를 통해 나, 너, 우리가 불균형과 갈등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온전한 서로를 이뤄가는 장(場)을 제시하고자 했다"라고 설명한다.
'강서경'은 어떤 작가?
강 작가는 이화여대 조형대학 동양화과에서 학사·석사·박사까지 마치다. 2012년에는 '영국 왕립예술학교(RCA)' 회화과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국에서 교수도 했고 지금 모교 교수다.
그녀는 베니스비엔날레(2019), 리버풀 비엔날레(2018) 등에 참여했고, 룩셈부르크 현대미술관과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등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지난 2년간 암 투병을 했고 지금은 병세가 좋아져 작업에 몰입 중이다. 이번 전시 도록은 독일의 예술 전문출판사로 명성이 높은 '핫제 칸츠(Hatje Cantz)'를 통해 내년 초에 발간된다.
덧붙이는 글 | 덧붙이는 글 | 강서경 작가 홈페이지 http://www.seokyeongkang.com/
[전시 관련 토크] 12월 중 내용 작가 인터뷰 형식으로 전시에 대한 토크
참가자: 강서경 작가, 곽준영(리움 전시기획실장), 조이 휘틀리(치센헤일 갤러리 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