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기자들이 취재 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롭게 쓰는 코너입니다.[편집자말] |
"가짜뉴스 잡는다면서 팩트체크는 왜 압박해?"(네이버 뉴스 댓글 slaw****)
"가짜뉴스 척결한다더니 팩트체크 서비스는 없애버리네."(네이버 뉴스 댓글 iame****)
네이버가 6년 만에 'SNU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소식에
네이버 뉴스 이용자들 반응은 한결 같았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연일 "가짜뉴스가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한다"며 '가짜뉴스 근절'을 외치고 있는데, 왜 네이버가 그동안 허위정보 차단에 앞장서온 'SNU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는 것이죠.(관련 기사 :
네이버, SNU팩트체크 서비스 중단... 여당 '외압' 논란 https://omn.kr/25sb2)
SNU 팩트체크는 네이버와 한국언론학회, 서울대, 언론사의 '산·학·언' 협력으로 어렵게 자리잡은 국내 유일의 민간 팩트체크 플랫폼입니다. 네이버는 지난 2017년부터 팩트체크 보도 활성화를 위해 매년 10억 원을 한국언론학회와 서울대를 통해 SNU팩트체크에 기부했습니다. SNU팩트체크는 지난 6년간 각종 팩트체크 보도 지원 사업을 진행하는 한편, 32개 제휴 언론사에서 자발적으로 올린 4700여 건의 팩트체크 콘텐츠를 모아 네이버에도 올렸습니다.
특히 이같은 활동은 지난 2017년 대선과 2022년 대선 등 주요 선거 국면에서 후보들의 발언을 검증해 허위정보 확산을 막는 데 큰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런데 윤석열 정부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민간 플랫폼을 고사시키고 행정기관을 앞세워 직접 '가짜뉴스'를 척결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문패만 남은 '네이버 팩트체크', 정부여당은 책임 없나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월 3일 정부여당 주장에 대한 '거짓' 판정 비율이 80%에 이른다는 이유로 SNU팩트체크를 '좌편향'으로 규정하고 네이버의 재정 지원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SNU팩트체크 제휴사 32개 가운데 <조선> <중앙> 등 보수 언론 비중이 훨씬 높은 걸 감안하면, 그만큼 정부여당에서 '허위정보'를 더 많이 퍼트렸다는 의미입니다.(관련기사 :
팩트체크 공격 박성중의 자폭? '정부여당 부정비율 79%' 공개 https://omn.kr/22903)
그런데도 박 의원은 지난 7월 네이버 뉴스 알고리즘을 보수 언론에 불리하게 만들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네이버 압박했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실태 점검에 나섰습니다. 방통위가 지난 25일 네이버의 실정법 위반 여부에 대한 사실 조사에 착수한다고 발표한 다음날 네이버는 뉴스 서비스 개편을 통해 'SNU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했습니다. SNU 팩트체크 자체 홈페이지(
https://factcheck.snu.ac.kr)만으로는, 포털이나 SNS로 급속히 확산되는 허위 정보를 막기 어렵습니다.
네이버는 자체적으로 '팩트체크' 코너를 계속 유지하고 있지만, 기존 언론사에서 전송한 팩트체크 기사들을 시간순으로 모아놓았을 뿐 차별적인 콘텐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SNU 팩트체크의 경우 검증 대상과 검증 방법, 근거 자료 출처 등 팩트체크 관련 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같은 언론사가 포털에 올린 기사보다 더 충실한 정보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언론사에서 포털에 보낸 '팩트체크' 기사에는 판정 등급을 넣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SNU 팩트체크에 올리는 콘텐츠에는 '전혀 사실 아님(거짓)', '대체로 사실 아님', '절반의 사실', '대체로 사실', '사실' 같은 판정 등급을 반드시 넣어야 합니다. 누가 어떤 거짓말을 했는지 명확하게 가려 허위정보 확산을 막자는 팩트체크 취지지만, '거짓' 판정을 많이 받은 정치인이나 정당에게는 그만큼 눈엣가시일 수밖에 없습니다.
실제 지난 2017년 제19대 대통령선거 당시 홍준표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 후보의 '거짓' 판정 비율이 다른 후보보다 높게 나오자, 네이버와 서울대를 허위사실공표 등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발했지만, 검찰은 무혐의 처분했습니다. 더구나 19대 대선 팩트체크에 참여한 12개 언론사도 대부분 조선일보, 중앙일보, SBS 같은 보수 성향 매체였습니다.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민의힘의 압박은 더 거셌습니다. 박성중 의원은 지난해 12월 네이버의 SNU 팩트체크 재정 지원을 문제 삼으면서 "좌파 생태계 유지를 위해 쓰이고 보수진영을 공격하는 자금"이라고 매도했습니다. 결국 네이버는 재계약 시점인 지난 8월 말 석연치 않은 이유로 SNU팩트체크에 대한 재정 지원을 전면 중단했습니다.
글로벌 팩트체크 행사까지 치른 SNU팩트체크가 좌편향이라고?
민간 팩트체크 플랫폼을 무력화한 다음 수순은 정부가 직접 주도하는 '가짜뉴스 팩트체크'인 듯 합니다.
방통위가 지난 6일 언론사 퇴출까지 시킬 수 있는 '원스트라이크 아웃' 조치를 포함한 '가짜뉴스 근절 TF' 구성 계획을 밝힌 데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는 26일부터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본격 가동했습니다. 기존 방송사뿐 아니라 인터넷언론 동영상 등 온라인 콘텐츠를 모니터링하고 '가짜뉴스' 신고를 받아 직접 심의까지 하겠다고 합니다. 네이버 등 포털사업자로 하여금, 심의중인 콘텐츠에 '심의중'이라고 표시하는 방안까지 추진하고 있습니다.
이쯤 되면 현 정부에서 뿌리 뽑겠다는 '가짜뉴스'가 진짜 '허위조작정보'를 말하는 것인지, 현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 보도를 말하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정부가 '팩트체크 주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전 세계 120여 개 팩트체크 매체가 속한 '국제팩트체킹네트워크(IFCN)'에서 정한 첫 번째 팩트체크 원칙이 바로 '불편부당성'과 '비당파성'입니다. SNU 팩트체크도 "팩트체크를 하는 주체는 이해관계가 얽힌 사안을 다룸에 있어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다"면서 "팩트체크 주체들은 정당이나 이해관계가 있는 단체의 구성원이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SNU팩트체크는 지난 6월 서울에서 IFCN와 함께 세계 최대 팩트체크 컨퍼런스인 '글로벌팩트10' 행사도 훌륭히 치렀습니다. 이런 민간 팩트체크 기관마저 '좌편향'으로 규정했던 정부여당이 자신들에게 비판적인 언론 보도의 진위 여부를 불편부당하게 가릴 자격을 갖고 있는지 의문입니다.
"팩트체커들은 숱한 정치적 오해와 공격을 버텨내며 저널리즘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는 보수를 지향하지도, 진보를 지향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팩트를 지향한다. 진실에 복무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우리는 그렇게 하겠다. 네이버가 답해야 할 차례다."(9월 25일 SNU 팩트체크 제휴사 팩트체커 일동 '네이버 <팩트체크> 종료에 대한 입장' 가운데)
'가짜뉴스'를 잡겠다면서 왜 '팩트체크'부터 없애려 하는지,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이 먼저 답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