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최종 보강 : 27일 오전 4시 47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궁지에 몰렸던 이 대표는 오뚜기처럼 살아나 국회로 돌아가게 됐다. 약 2년간 이 대표 수사에 몰두해온 검찰은 무리한 정치적 수사였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법원은 구속영장청구서에 기재된 3가지 혐의 가운데 두 가지 큰 줄기인 백현동 개발사업과 대북송금 혐의를 두고 "직접 증거 부족",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밝혔다. 법원이 이재명 대표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평가된다. 결국 "명백한 정치보복이자 검찰권 남용"이라는 이 대표의 주장에 힘이 실리게 됐다.
서울중앙지방법원 유창훈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27일 오전 2시 24분께 검찰의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이러한 결정은 9시간 20분 동안 진행된 구속영장실질심사가 전날(26일) 오후 7시 50분에 끝난 지 6시간 30분 만에 나온 것이다.
서울구치소에서 대기중이던 이 대표는 영장 기각 약 1시간30분이 지난 새벽 4시경 밖으로 나왔다. 그는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면서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증명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밝혔다.
앞서 서울중앙지방검찰청 반부패수사1부(엄희준 부장검사)는 지난 18일 ①성남시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특경법 위반(배임) ②검사 사칭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관련 위증교사 ③불법 대북 송금 관련 특가법 위반(뇌물)·외국환 거래법 위반 혐의로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했다.
검찰은 구속영장청구서에서 "피의자는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고, 범죄가 중대하며 피의자에게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 등 구속 사유가 충분한 만큼 피의자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해달라"고 밝혔다. 또한 "피의자에게는 11년 이상 36.5년 이하의 징역 또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어야 한다"고도 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찰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창훈 부장판사의 결론은 "피의자의 방어권 보장 필요성 정도와 증거인멸 염려의 정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 대하여 불구속수사의 원칙을 배제할 정도로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었다.
법원은 왜?... 이례적으로 긴 기각 사유 "증거인멸 염려 있다고 보기 어렵다"
유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장문의 기각 사유를 밝혔다. 우선 3가지 혐의의 소명 여부를 밝혔는데, "위증교사 혐의는 소명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백현동 개발사업 관련 배임 혐의에 대해서는 "공사의 사업참여 배제 부분은 피의자의 지위, 관련 결재 문건, 관련자들의 진술 등을 종합할 때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들기는 하나, 한편 이에 관한 직접 증거 자체는 부족한 현 시점에서 사실관계 내지 법리적 측면에서 반박하고 있는 피의자의 방어권이 배척될 정도에 이른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고 보인다"라고 판단했다.
유 부장판사는 대북송금 관련 뇌물 등의 혐의에 대해 "핵심 관련자인 이화영의 진술을 비롯한 현재까지 관련 자료에 의할 때 피의자의 인식이나 공모 여부, 관여 정도 등에 관하여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라고 밝혔다.
유 부장판사는 검찰이 강하게 주장한 증거인멸에 대한 판단도 내렸는데, 결론은 "증거인멸 염려를 단정하기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는 "위증교사 및 백현동 개발사업의 경우, 현재까지 확보된 인적, 물적 자료에 비추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라고 강조했다.
대북송금 혐의 증거인멸 우려 주장에도 같은 판단을 내렸다.
대북송금의 경우, 이화영의 진술과 관련하여 피의자의 주변 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이 있기는 하나, 피의자가 직접적으로 개입하였다고 단정할 만한 자료는 부족한 점, 이화영의 기존 수사기관 진술에 임의성이 없다고 보기는 어렵고 진술의 변화는 결국 진술 신빙성 여부의 판단 영역인 점, 별건 재판에 출석하고 있는 피의자의 상황 및 피의자가 정당의 현직 대표로서 공적 감시와 비판의 대상인 점 등을 감안할 때,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새벽 4시에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이재명 "이제 상대 죽여 없애는 전쟁 그만"
오전 4시 비가 내리는 속에 서울구치소에서 나온 이 대표는 이렇게 소감을 밝혔다.
"이 늦은 시간에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 그리고 아직 잠 못 이루고 이 장면을 지켜보고 계실 국민 여러분 먼저 감사드립니다. 역시 정치는 정치인들이 하는 것 같아도 국민들이 하는 겁니다.
인권의 최후 보루라는 사실을 명징하게 증명해주신 사법부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고 정치란 언제나 국민의 삶을 챙기고 국가의 미래를 개척해 나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여·야·정부 잊지 말고, 이제는 상대를 죽여 없애는 전쟁이 아니라 국민과 국가를 위해 누가 더 많은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는지를 경쟁하는 진정한 의미의 정치로 되돌아가기를 바랍니다.
이제 모레면 즐거움이 마땅한 추석이지만 우리 국민들의 삶은, 우리의 경제 민생 현황은 참으로 어렵기 그지 없습니다. 우리 정치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 나라 미래에 도움되는 존재가 되기를 정부 여당에도 정치권 모두에도 부탁드리면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헌정 질서를 굳건하게 지켜주시고 현명한 판단을 해주신 사법부에 다시 한번 깊이 감사 드립니다."
여기까지 발언한 이 대표는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했다.
앞서 오전 2시 24분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구치소 앞에 모인 수백 명의 지지자들은 눈물을 흘리며 서로 얼싸안았다. 현장에 모인 민주당 의원들도 구치소에서 나올 이 대표를 맞이하기 위해 분주히 출입문을 앞에 줄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 대표가 다시 지팡이를 짚고 서울구치소 정문을 통과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기각 소식이 전해진 뒤 정확히 1시간 26분이 지난 3시 50분께였다.
교도관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휠체어를 타고 나오던 이 대표는 구치소 정문 30m를 앞두고 부축을 받으며 일어나 걸었다. 그리고는 자신을 인솔해준 교도관들을 향해 90도로 허리를 숙여 인사한 뒤 서울구치소 정문을 빠져나왔다. 지지자들은 감격에 겨운 표정으로 "이재명"을 연호했다.
이 대표는 곧바로 자신의 차량에 탑승해 이동했다. 하지만 채 100m를 가지 못했다. 7시간 이상 구치소 앞에서 비를 맞으며 기다린 지지자들이 보이자 차에서 내렸다. 이 대표는 인사를 건넨 뒤 위와 같이 연설을 했다.
궁지 몰린 검찰 "납득 어렵고 매우 유감... 증거인멸 염려 없다는 건 모순"
검찰은 궁지에 몰렸다. 두차례 영장을 청구했지만, 지난번엔 국회에 막혔고(대장동, 성남FC 건 등), 이번엔 법원에 막힌 상황이다.
이날 새벽 검찰은 "매우 유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 대표를 수사하고 영장을 청구했던 서울중앙지검은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되었다고 인정하고 백현동 개발비리에 피의자의 관여가 있었다고 볼 만한 상당한 의심이 있다고 하면서도, 대북송금 관련 피의자의 개입을 인정한 이화영 진술을 근거로 다툼의 여지가 있다고 한 판단에 대해서는 납득하기 어렵고 매우 유감"이라고 말했다.
또한 "위증교사 혐의가 소명되었다는 것은 증거인멸을 현실적으로 했다는 것임에도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 판단하고, 주변인물에 의한 부적절한 개입을 의심할 만한 정황들을 인정하면서도 증거인멸 염려가 없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모순된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앞으로도 보강수사를 통해 법과 원칙에 따라 흔들림 없이 실체진실을 규명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반전을 위한 선택지가 마땅치 않다.
구속영장을 재청구할 수도 있지만, 그럴 경우 국회의 체포동의안 표결을 다시 거쳐야 하는데 가능성이 매우 희박하다. 윤관석·이성만 의원의 경우처럼 국회 비회기 기간을 골라 다시 청구할 수도 있지만, 검찰의 부담이 너무 크다. 수사의 동력이 떨어진 상태에서 구속영장 발부를 이끌어낼 결정적 증거를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정기국회 회기는 아직 60일 이상 남아있고, 곧 총선이 다가온다.
결국 검찰은 대장동과 성남FC 사건처럼 이 대표에 대해 불구속 상태로 기소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인다.
국회 체포 동의안 통과로 이재명 대표와 민주당에 향하던 후폭풍이, 이제 영장 기각으로 검찰과 여권으로 방향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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