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지 사람들에게 제주는 바다 건너 버려진 땅이었고 죄수를 보내는 유배지였다. 지금은 이익을 노려 자본이 몰려들지만 진정으로 제주를 이해하는 이는 많지 않은 듯하다. 나 또한 제주 사람 눈에는 그렇게 비칠 수 있으리라. 그런 제주인의 한과 정서를 이해하려다 제주학에 빠졌고 도민이 됐다. 키아오라리조트를 운영하면서 제주가 미디어와 인문학 교육의 중심이 되게 하겠다는 각오로 한국미디어리터러시스쿨(한미리스쿨)을 설립했다. 이 기사는 내가 격주로 일하는 MBC저널리즘스쿨의 정희원 학생이 7월 방학 동안 한미리스쿨에 와서 현장기사 주제 선정과 취재, 기사 쓰기 전반에 걸쳐 지도받으며 공동작업을 한 결과물이다. [기자말] |
제주에서 도로를 따라 차를 몰다 보면 자주 마주치는 풍경이 있다. 거대한 풍력발전기가 멈춘 채 서있는 장면이다. 3메가와트급 육상 풍력발전기 건설비용이 45억 원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풍력발전기는 멈춰 서있는 것 자체가 엄청난 비용손실이다.
재생에너지 전환에 박차를 가하며 한국 최초로 제주도를 2030년까지 '탄소배출 없는 섬'(CFI·Carbon Free Island)'으로 만들겠다는 야심에 찬 포부를 밝힌 지 11년이 됐다. 그런데 왜 제주도의 풍력발전기는 멈춰 서있을까?
너무 비싼 에너지 저장장치
풍력발전기가 멈춘 이유는 바로 '전력 과잉생산'에 있다. 제주도는 2012년 '탄소 배출 없는 섬' 선언 이후 태양광 발전 시설을 중심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을 늘려왔다. 하지만 전력 수요가 떨어지는 계절에는 재생에너지가 과잉생산돼 출력제어가 자주 발생한다. 전력망에 과부하가 걸리면 제주지역에 대규모 정전상태(블랙아웃)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 태양광의 경우, 발전 출력제한은 2021년 1회에 그쳤지만, 올해는 6월 말까지 51차례를 기록하며 전력 과잉생산 문제의 심각성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 해결의 열쇠인 에너지저장장치(ESS)와 송전선 설치 비용 문제는 전력 과잉생산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 재생에너지로 생산한 전력을 가둬 뒀다가 나중에 사용할 수 있는 에너지저장장치(ESS) 보급은 막대한 비용이 들고 설비 도입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 산업부는 최근 발표한 '10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통해 2036년까지 26GW 규모 ESS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 최대 45조 4000억 원이 필요하다고 소요 재원을 밝혔다.
송전선은 완도 주민 반대로 난관
송전선 문제도 마찬가지다. 제주 지역에 과도하게 생산된 에너지는 연계선을 통해 에너지를 많이 쓰는 육지로 보내야 한다. 문제는 연계선 설치가 제주 주민만의 동의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주에서 전남 완도로 전력을 보내는 송전선(HVDC)은 올해 완공할 예정이었지만 완도군 주민의 반발로 착공이 늦춰졌다.
송전선 설치가 제주도의 불안정한 전기 수급을 해소하기 위한 사업임이 밝혀지면서 완도 주민들이 전자파에 따른 건강권 침해와 높이 세워진 송전탑의 조망권 침해를 들어 건설에 반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과 겨울철에 대규모 정전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제주도는 빠른 송전 인프라 구축이 필수다. 하지만 어떤 정책도 당사자인 주민들 민원 해결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기는 어렵다.
제주도가 탄소 배출 없는 섬으로 가는 과정을 기록하고 홍보하기 위해 만들어진 CFI 미래관의 임동환 대리는 꼭 필요한 기반 시설을 설치하려 할 때 발생하는 민원을 해결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고 토로했다. 그는 "어떤 기반시설 구축이든 사업에 직접 영향받는 100명이면 100명의 민원을 전부 해소해야 사업이 추진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상풍력발전은 어업권과 조망권 침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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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력발전 제주시 한경면 신창리에 있는 한국남부발전 국제풍력단지. 풍력 같은 자연 에너지는 탄소를 배출하지 않지만 시각 공해(optical pollution)와 어업권 침해 등의 문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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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봉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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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지역이 진정으로 탄소 배출 없는 섬이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갈등이 산적해 있다. 육지와 연결하는 송전선 문제와 함께 해상 풍력발전도 어업권과 조망권 침해 문제에 부닥쳐 있다.
제주 추자도 해상에 추진하고 있는 해상풍력단지도 그런 사례다. 42개 섬으로 이루어진 추자도는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주변 바다는 낚시인에게 '황금어장'으로 알려졌다. 해상풍력단지 공사 과정에서 해양생물 서식지 파괴, 화학물질 노출, 소음과 진동 피해가 예상되기에 지역 주민이나 환경운동단체와 갈등이 빚어질 수밖에 없다.
태양광 발전은 막대한 토지 보상비가 걸림돌
태양광발전은 넓은 부지가 필요해 높은 토지가격이나 보상금이 태양광을 '비싼 에너지'로 만든다. 제주도는 서귀포시 표선면 가시리 산133 일대 53만㎡에 아시아그린에너지 등 4개 사가 추진하는 태양광발전 조성사업 시행을 승인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가본 부지는 여전히 거대한 말 농장으로 이용되고 있었다.
하지만 전체 부지 중 79㎡(0.01%)만 국유지이고, 나머지는 모두 사유지인 것으로 파악됐다. 755억 원을 들여 48.5㎿ 대규모 태양광발전 시설을 조성할 계획인데 태양광 모듈이 풍력발전 모듈보다 상대적으로 싼 것으로 미루어 대부분 사업비가 토지 보상에 들어가는 것을 알 수 있다.
현재 프로젝트에 참여한 4개 업체는 준공 이후 마을과 협의를 거쳐 주민 복지 관련 시설 건립비용을 지원하고 20년간 매년 1000만 원을 지역 내 초·중·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지원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 명의 민원인이 사업을 지연시킬 수 있기에 언제나 이와 같은 사업은 '보상'의 난맥상이 발목을 잡기 마련이다.
밝으면서도 어두운 '탄소 배출 없는 섬'의 미래
구좌읍 행원리 해변에 있는 제주에너지공사 CFI 미래관을 방문해 살펴본 '탄소 배출 없는 제주'의 미래는 전체적으로 밝으면서도 어두운 구석 또한 꽤 많이 눈에 띄었다. 현재 전체 에너지 사용량의 19.2%밖에 재생에너지로 전환하지 못한 제주의 2030년 '탄소 제로' 계획은 어쩌면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다.
하지만 재생에너지 전환과 전력 수급 안정화를 위한 제주의 노력은 지속되고 있고 중앙정부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산업통상부는 지난 8월 17일, 제주지역에 전력 수급 안정화와 재생에너지 출력제어 문제 완화를 위한 에너지저장장치(ESS) 설비를 본격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한 단계씩 탄소배출 없는 섬이라는 목표로 나아가는 제주의 모습이 그래도 기대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정희원 기자도 함께 취재 작성했고, 시민언론 <민들레>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