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문화재단에서 '2023 목공 인생 학교'를 개설했다. 이천 무형문화재 전수교육관에서 경기도 무형문화재 제49호 한봉석 목조각장에게 목공예를 배울 기회였다. 이천 설봉공원의 무형문화재 전시교육관에는 한봉석 목조각장을 소개하는 공간이 있다. 여기에서 그의 작품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다. 대표적인 작품은 원주 구룡사 대웅전 삼존불과 닫집, 예산 수덕사 금강역사상, 관악산 성주암 삼존불과 후불목각탱 등이 있다.
목조각장의 작업장은 이천 백사면 상용리에 자리 잡은 불국조각원이다. 그는 이곳에서 강원도 월정사에 봉안될 거대한 불단을 작업 중이다. 앞으로 2년 이상 소요될 예정이다. 불국조각원 마당에는 거대한 나무 기둥들이 앞으로 전개된 불국의 재현을 기다리고 있다.
목공예 수업은 20명 정도 참가했는데 절반은 나같이 처음 목공을 시작하는 경우였고, 나머지는 2, 3년 목공의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다. 내가 조각칼을 사용하는 것은 초등학생 때 고무판에 글씨를 새기거나 연필을 깎아본 이후로 처음이다.
목공예는 생각보다 시간과 노력 그리고 정성이 많이 드는 작업이다. 기계로 쉽게 할 수도 있는 작업을 칼과 망치를 들고 수작업으로만 한다. 목공예의 시작은 조각에 사용될 나무를 고르는 일부터다.
우리 조상은 궁을 건축할 나무를 벨 때는 제를 지내고 "어명(御命)이요!" 하고 나무를 베었다고 한다. 한봉석 장인도 불상 조각용 나무를 벨 땐 의식을 치르고 "불명(弗命)이요!"라고 한다니 시작부터 정성이 들어간다.
목공예를 하려면 기본적인 용구가 있어야 한다. 먼저 가장 중요한 용구는 서각 칼이다. 그리고 창칼, 평칼, 둥근 칼, 세모 칼 등등 조각칼과 작은 망치가 있으면 시작할 수 있다. 서각에 사용되는 목재 재질은 다양한데 느티나무, 호두나무, 박달나무는 단단하고, 오동나무, 은행나무, 향나무는 연하다.
"처음에는 칼질이나 도구 쓰는 법을 배웁니다. 그래서 둥근칼, 평칼, 끌, 우선 모든 공구를 많이 경험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목공예를 하다 보면 손에 익은 도구만 계속 쓰게 되는데 다양한 형태의 칼을 사용해 보면서 각각의 특성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서각용 칼 이외에도 톱도 사용할 수 있다.
"우리는 기계를 안 씁니다. 모든 작업은 손으로만 합니다. 기계로 하면 쉽게 빠르게 할 수 있지만 우선 손으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업 중에는 칼과 망치 사용하는 수작업만 고수한다. 손으로 할 수 있어야 기계를 이용할 수도 있게 된다.
나무판과 판을 연결할 때 홈을 만들어야 하는데 쉬운 방법으로 하려다 선생님으로부터 제지당했다. 디귿으로 쉽게 홈을 만들고 빠지지 않도록 접착제를 사용하겠다고 하자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원칙대로 알려준 그대로 해보세요. 고민하고 해보시면 해결 방법이 나옵니다."
결국 알려준 방법대로 역삼각형의 홈을 시도해 보니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었다. 다만 정밀한 길이의 측정이 필요하다. 역시 초보자에겐 험난한 여정이다.
"작업을 하기 전에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그림을 그려 보면서 하세요. 그래야 오류가 적어집니다."
정확하게 길이를 재고 그림을 그리지 않아 내가 만든 판재의 맞춘 홈은 삐뚤삐뚤하다. 그래도 목조각장은 잘했다고 칭찬하신다.
"해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목공예 중에서 서각은 음각과 양각으로 나뉜다. 음각은 서각기법 중 기본으로 글자만 새겨들어 가는 것이고, 양각은 문자만을 남겨둔 채 글자 외부를 파내 글자가 튀어나오게 하는 각법이다.
나는 초보라 음각 작업이 쉬울 것 같아 문의하니 빙그레 웃으시면서 둘 다 비슷하니 하고 싶은 것을 선택하라고 하신다. 초보에겐 어느 것도 쉬운 것이 없다는 뜻이다.
서각과 도예는 차이가 있다. 도예는 흙이라는 재료가 불과의 만남으로 인해 형질이 변한다. 형태를 만들고 유약을 바르고 굽는 과정 중에 작품이 어떻게 표현되는지 전문가가 아니면 알기 어렵다.
이에 반해 서각은 목재라는 재료를 깎고 다듬으면서 최종 작품이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작품을 마주하면서 작업하는 것이다. 노력한 만큼 본래 모습에 점점 다가가게 되기 때문에 한 번의 망치질도 조심하게 되고 집중하게 된다.
서각을 하다 보면 머리가 비워진다. 몰입이라는 좋은 점이 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목공예의 여러 가지 장점이 눈과 머리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우선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만의 작품을 만들어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서각을 하기 위한 밑그림을 서고라고 하는데 자필서고를 만들 실력은 못 되어 파워포인트의 여러 가지 서체 중에서 하나를 선택했다.
글자를 인쇄해 작업을 시작하지만 같은 결과물이 없는 유일한 창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글씨가 조금 삐뚤어지고 깎아 낸 나뭇결이 거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한 글자씩 새기면서 만들어 간다는 의미가 상당하다.
좋은 점은 또 있다. 나무의 향이다. 따각 따각 작은 망치로 서각칼을 살살 두드리면 나뭇결이 일어나면서 숨어있던 나무 향이 일어난다. 깎아 낸 나뭇조각을 '후' 하고 불어낼 때도 향기가 따라온다. 그윽한 향은 잠시 울창한 느티나무 숲속에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한다. 숲속에서 작업을 하는 것이다. 이제는 나무판의 근처에만 있어도 짙은 숲의 향을 느낄 수 있다.
가장 좋은 점은 집중과 명상이다. 서각이란 문(文)과 각(刻)이 만나는 것, 문자와 칼이 만나는 것이다. 단순히 글씨를 나무판에 새기는 작업이 아니다. 한 글자 한 글자 새겨지는 글의 의미를 생각하고, 온 마음을 나무판 위에 있는 칼끝 한 점에 집중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모든 잡념이 사라지고 오로지 고요함만 남는다.
그래서 서각은 명상하는 것과 같다. 명상은 잡념 없이 마음을 지금 여기로 집중하는 것이다. 현재를 자각하며 깨어있게 된다. 아무 생각 없이 글자와 칼에 집중하여 한 조각 한 조각 새겨나가는 순간은 과거와 미래의 생각이 사라지면서 지금 여기에만 있게 한다.
그는 목조각의 매력을 이렇게 이야기한다.
"목조각을 하려면 입체적인 것을 그려야 합니다. 머리 속에 3D가 만들어져야 합니다. 그리고 본체를 찾기 위해서 부단히 수백 번, 수천 번, 수만 번의 망치질을 해서 하나하나 걷어내어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내가 스스로 수양이 됩니다. 나를 낮춤으로 본체를 찾아갑니다. 그 매력으로 목조각을 하고 있습니다."
커다란 나무 덩어리에서 본질을 발견하고, 수없이 많은 망치질과 칼질을 통해서 조금씩 본질을 드러나게 하는 것이 목공예의 매력이다. 잘하면 잘하는 대로 못 해도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나만의 작품을 만들어 가는 것은 큰 즐거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