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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마포구 망원2동에 위치한 책방 '이올시다'를 운영하는 박미진 대표
서울 마포구 망원2동에 위치한 책방 '이올시다'를 운영하는 박미진 대표 ⓒ 복건우
 
서울 마포구 망원2동 한 골목에 위치한 책방 '이올시다'는 지난 2월과 4월 손님들과 총 네 차례 독서 모임을 열었다. 적게는 네 명, 많게는 여섯 명이 4050세대의 삶과 밀접한 주제의 책을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자리는 문화체육관광부가 후원하는 '4050 책의 해' 사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올시다를 운영하는 박미진 대표는 "책방 몫으로 떨어지는 수익은 없지만 손님들이 무료로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우리 동네에 이런 서점이 있구나', '같이 책을 읽을 사람이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게끔 하고 싶었다"며 사업 참여 이유를 설명했다.

'망리단길' 옆에 붙어 있지만, 이올시다를 주로 찾는 건 관광객보단 동네 주민들이다. 20대에서 40대 사이 젊은층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손님들이 책방에 온다.

5일 박 대표와의 인터뷰 중, 여든 가까이 된 한 단골손님이 콧노래를 부르며 문을 열었다. "책 왔어요?" 미리 주문해놓은 책을 가지러 온 그는 주변에 있는 대형 서점보다 이곳을 주로 찾는다고 했다. 박 대표는 지역서점이 "동네 사람들과 지역을 연결하는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동네에 사는 작가님을 새로 알게 되기도 하고, 이곳에 작업실이 있는 피아니스트를 만나서 서점 음악회를 열기도 했다"고 말했다.

"유통 구축? 책 읽는 사람 늘릴 수 있나"

요즘 박 대표는 우려의 마음이 크다. 윤석열 정부 들어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가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을 삭감하거나 용처를 변경(독서 모임→유통 인프라 구축)한다는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다. 

대학원에서 독서학을 전공한 그는 "온라인 판매와 유통을 도와준다는 게 당장 책 읽는 사람을 늘리고 독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예산이 맞느냐"며 "수익 창출보다는 손님들이 문화 행사를 누릴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아서 해온 일인데, 정부가 예산을 미래 지향적으로 쓰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위치한 '쩜오책방'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위치한 '쩜오책방'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쩜오책방 제공
 
전날(4일)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 골목 귀퉁이 상가 1층에 자리한 '쩜오책방'에서도 비슷한 지적을 들을 수 있었다.

"이건 우리보고 죽으라는 얘기야."

쩜오책방 이정은 대표를 찾아온 한 그림책 번역 작가는 이렇게 토로했다. 책방 자체의 수익 문제를 넘어 작가와 문화 활동의 위축을 시사하는 말이었다. 이 대표는 "앞서 '오늘의 서점' 사업 지원비로 받은 500만 원 대부분이 프로그램에 초대된 작가들에게 돌아갔는데, 내년도 예산을 전액 삭감한다는 건 책을 쓰는 작가와 독서 자체에 대한 존재 이유를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2016년 문을 연 쩜오책방은 이제 마을 주민들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정기 모임을 하러 손님들이 찾아오는 책방이 됐다. 지난해 총 여덟 차례 '심야책방' 프로그램을 운영해 온 쩜오책방은 매달 마지막 주 금요일 밤이 되면 손님들로 붐빈다. 늦게까지 다양한 주제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져왔다. 소설가를 초대해 장르문학을 읽고 독일 예술가곡(Lied)을 함께 감상하는 등 프로그램 기획도 뒤따랐다.

올해에는 '오늘의 서점'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쩜오책방은 이곳만의 특색을 담아 네 가지 주제의 문화 활동을 기획했다. 다양한 작가와 학자들을 초대해 손님들과 책을 읽고 글을 썼고 마을 합창단과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들이 책방의 직접적인 수익으로 연결되진 않지만 이 대표는 이렇게 말했다.

"조합원 16명의 협동조합 형태로 운영되는 쩜오책방은 주민들, 저자들, 강사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곳이에요. 우리가 쩜오(0.5)를 채우면 나머지 사람들이 쩜오를 채워서 1이 되는 거죠. 주민들은 공공도서관보다 이곳 책방에서 더 적극적으로 책을 마주하고 만나게 돼요. 단순한 돈벌이가 아니라 다양한 기획력과 색깔과 함께 로컬(지역)이 살아남을 수 있는 곳이죠."

이올시다와 쩜오책방 대표 두 사람이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이유는 하나다. 지역사회에서 책이라는 매체가 갖는 가치와 독서의 쓸모를 지키기 위해서다. 동네의 문화공간 역할을 하는 지역서점이 '책 파는 곳' 정도로 여겨지면, 자유롭게 책 읽고 토론하는 주민들의 풀뿌리 네트워크 전체가 작동하지 않는다. 박 대표와 이 대표가 "지역서점이 살아야 로컬이 살 수 있다"고 입을 모으는 것은 이런 이유에서다.

"지금도 힘든 지역서점, 주민들 문화공간 사라져"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위치한 '쩜오책방'을 운영하는 이정은 대표(왼쪽)와 조합원들이 4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뒤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 문발동에 위치한 '쩜오책방'을 운영하는 이정은 대표(왼쪽)와 조합원들이 4일 <오마이뉴스>와 인터뷰한 뒤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 보이고 있다. ⓒ 복건우
 
내년도 예산 삭감 소식이 알려진 건 사단법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한국서련)이 지난 8월 31일 발표한 보도자료를 통해서다. 한국서련에 따르면 전국 각 지역서점에서 자체적으로 진행하는 750여 개 문화 프로그램이 문체부의 내년도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11억 원) 전액 삭감으로 중단될 위기에 놓였다.

여기에는 매달 말 영업시간을 연장해 각종 문화 행사를 진행하는 '심야책방', 서점의 특색을 담은 강연·북토크 등 문화 활동을 지원하는 '오늘의 서점', 경험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중소형 지역서점을 지원하는 '우리동네 문화서점', 전문 큐레이터의 컨설팅을 제공하는 '큐레이션 서가 지원' 등이 포함돼 있다.

권미선 한국서련 문화사업정책팀장은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 "지금도 비수도권에 위치해 있거나 주인 혼자서 운영하는 지역서점은 문화 활동을 하고 싶어도 자구책을 마련하기 힘든 상황"이라며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이 삭감된다면 주민들에게는 도서관이나 주민센터보다 낮은 문턱으로 책과 작가를 가장 가깝게 만날 수 있는 문화 복합 공간이 사라지는 것과 같다"고 말했다.

문체부는 9월 1일 보도자료를 내고 "내년도 지역서점 지원을 개별 서점 지원에서 도서 유통 인프라 구축 사업으로 재구조화해 오히려 지원 예산은 15억여 원으로 증액됐다"고 반박했다. 지역서점 간 공동 배송 체계를 도입해 물류 비용과 배송 시간을 줄이고 책을 효율적으로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년도 사업의 핵심이다.

문체부 출판인쇄독서진흥과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가까운 지역서점들 간 협의체를 구성해 책을 배송하고 판매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고 경쟁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자는 취지"라며 "지역서점 문화 프로그램 지원사업의 경우 지자체 예산 지원과 중복되는 부분이 있어서 중앙에서는 다른 역할을 찾아보자는 문제의식이 있었다"고 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기조 달라진 문체부

문체부의 '유통 활성화' 기조는 책을 여타 공산품과 같은 소비재로, 지역서점을 여타 소매업과 같은 판매업체로만 바라보는 시각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 시절 문체부와는 완전히 다른 방향이다. 2018년 문체부는 '생활문화시설의 범위에 관한 고시'를 개정해 주민들을 위한 동아리, 전시, 공연 등 문화공간으로 활용되는 지역서점을 생활문화시설로 지정했다. 애초 지역서점이 지역 문화 거점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정책 방향을 잡았던 것인데, 이번 정부 들어 책과 지역서점을 중심으로 한 독서 생태계가 압박을 받는 모양새다.

문체부는 내년도 '독서예산' 또한 통째로 폐지해 버렸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책읽는사회문화재단 등 단체들에 따르면 올해 문체부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사업(59억 8500만 원)은 내년에 전액 삭감됐고, 예산안에 부여된 예산코드(1433-308) 항목 자체도 사라졌다.

여기에는 영유아와 양육자에게 그림책 꾸러미를 지원하는 '북 스타트', 이동식 디지털 도서관 '책 체험버스' 등이 포함돼 있다. 이들 단체는 독서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내년도 예산을 복원하라고 요구하고 있지만, 문체부는 "예산이 줄어든 건 사실이지만 현행대로라면 예산을 투입하더라도 급격하게 떨어진 독서율 증진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내년 상반기에 4차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을 수립하면서 원점에서부터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이를 두고 권미선 팀장은 "현재 지역서점 관련 조례를 발의하는 시의원들뿐만 아니라 각 지자체가 운영하는 지역서점 인증제와 내년도 예산안 책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했다.

예산 삭감 반대 해시태그 운동도... "책과 친해질 기회 없애는 정부"
 
 서울 마포구 망원2동에 위치한 책방 '이올시다'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서울 마포구 망원2동에 위치한 책방 '이올시다'에서 문화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다. ⓒ 이올시다 제공
 
지역서점들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해시태그와 함께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 등 정부 차원의 독서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독서·출판 예산 삭감 반대 해시태그 공유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지역 독서 문화의 다양성을 높이고 주민들에게 문화적 경험을 제공할 기회를 정부가 앗아간 데 대한 항의 차원이다.

캠페인에 참여했다고 밝힌 박 대표는 "최근 마포구에서 '작은도서관'을 스터디카페로 바꾸려 한다든가, '마포출판문화진흥센터(플랫폼P)'의 용도를 청년취업지원센터로 바꾸려 한다든가 하는 독서 관련 문제들이 많았는데 이것이 국가 예산 문제로 확장되다 보니 문화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겠다는 무서움을 느꼈다"고 했다.

이 대표가 사무국장으로 있는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에 소속된 지역서점들도 해시태그 공유 캠페인에 참여하는 등 힘을 보태고 있다. 지역서점의 존재 이유에 대해 묻자 이 대표는 이렇게 답했다.

"지역서점들이 지역 곳곳에서 책과 관련한 역할을 나름대로 하고 있는데, 국가 예산 활용으로만 봐도 이만한 효율이 없을 거예요. 문화와 세상, 사람들의 삶과 생각을 담아내는 책이 지역에서부터 살아남을 수 있는 거점이 바로 지역서점이에요. 정부가 없애려는 건 책방이 아니라 주민들과 책이 친해질 수 있는 기회라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독서 생태계의 다양성이 위축될 수 있음을 고려하면 지금 정말 위험한 시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제작한 '정부의 독서·출판 예산 삭감 반대 해시태그 공유 캠페인'. 지역서점들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글을 올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한국출판인회의에서 제작한 '정부의 독서·출판 예산 삭감 반대 해시태그 공유 캠페인'. 지역서점들은 최근 소셜미디어(SNS)에서 해시태그와 함께 게시글을 올려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 한국출판인회의 제공

#지역서점#동네책방#쩜오책방#이올시다#문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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