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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제작소가 지금 우리 사회의 아프고 뜨거운 이야기에 함께 귀 기울이고 해법을 고민하는 특집 인터뷰 시리즈 <희망마이크-할 말 있소>를 시작합니다. 첫 희망마이크는 교육 현장을 찾아갑니다. 지난 7월 18일 서이초 교사가 사망한 뒤 군산, 용인, 대전에서도 교사들의 부고가 이어졌습니다. 무너져가는 교실을 바로 세우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현장 선생님들과 학부모, 전문가들의 진솔한 이야기를 나눕니다.[편집자말]
교사들을 고통과 절망으로 몰고 간 악성민원은 '일부 몰지각한' 학부모에 국한한 문제일까요? 치유 대안학교인 성장학교별 교장이자 정신의학과 전문의인 김현수 선생님은 이것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심각하고 위급한 사회적 병폐"이며 "10여 년 전부터 일본, 홍콩 등지에서 논란이 돼왔다"고 말합니다.

청소년들이 겪는 어려움을 상담·치유하고 다양한 교사모임과 교류하면서 <요즘 아이들 마음고생의 비밀> <교사 상처> 등을 쓴 김현수 선생님이 얼마 전 <괴물 부모의 탄생: 공동체를 해치는 독이 든 사랑>을 펴냈습니다.

지난 9월 27일, 서울 당산동에 있는 성장학교 별(별의 친구들)에서 김현수 선생님을 만났습니다.
 
김현수 치유 대안학교인 성장학교별 교장·정신의학과 전문의.
 김현수 치유 대안학교인 성장학교별 교장·정신의학과 전문의.
ⓒ 희망제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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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로 펴내신 책 제목이 <괴물 부모의 탄생>인데요. 집필 기간을 감안하면 일찌감치 이 문제에 주목했던 것 같습니다.

"'괴물 부모'는 일본과 홍콩, 싱가포르, 대만과 같은 아시아권 국가들에서 자기 자녀의 이익만 생각해서 악성민원을 하는 부모집단을 가리키는 국제적인 용어예요. 우리나라에선 (학부모 민원에 의한) 담임교체가 4~5년 전부터 중요한 교육계 이슈였는데 전면화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반면 일본이나 홍콩에선 10여 년 전부터 학급 붕괴나 학교 공동체 붕괴의 배경으로 몬스터 페어런츠(Monster Parents, 괴물 부모) 문제가 지목됐지요. 우리나라에서도 작년과 올해 이런 현상들이 두드러져서 올해 초 선생님들과 괴물 부모를 주제로 세미나를 진행했고, 그 내용을 조금 보충해서 이번에 책을 냈어요."

- 괴물 부모가 개인의 인성·품성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병폐라고 진단했어요. 괴물 부모가 탄생하게 된 사회적 배경은 무엇일까요?

"일본과 홍콩에서 시작된 괴물 부모는 신자유주의의 영향이 크게 작용했어요. 교육의 상업화, 서비스화와 함께 소비자(학생·학부모) 중심주의와 성과주의가 심해졌지요. 두 번째는 학벌경쟁인데, 일본과 홍콩도 학벌경쟁이 심한 사회였지요. 우리는 일본·홍콩보다 더 극심한 학벌경쟁을 완화하지 못하면서 더 지속적으로, 심각한 문제들이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런 교육의 소비자화와 극심한 학벌 경쟁 속에서 아이 키우기가 너무 힘든 상황이 됐고 이것이 결국 저출생으로 이어져 '세상에 하나뿐인 내 아이'에 대한 집착과 기대가 커지게 된 거죠.

또 다른 요인으로 아시아적 가부장제 사회의 부정적 영향을 들 수 있어요. 아시아 국가들은 소득수준과 사회수준에 비해서 남성의 육아참여가 굉장히 부족하다 보니 이른바 '독박육아'의 실질적 주체가 엄마가 되고, 일본에선 '모자일체화'라는 말까지 생겨났어요. 엄마가 아이와 오랫동안 밀착된 관계를 형성하면서 아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고, 그 결과 자기 자녀에 대한 집착, 자기 자녀 중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관점이 형성되는 일군의 부모집단이 생겨난 거죠."

'하나뿐인 내 아이'에 대한 집착… '성공 우울증' 겪는 자녀

- 괴물 부모에게서 자란 아이들은 어떤 어려움을 겪게 되나요?

"괴물 부모들이 자녀를 키우는 방식이 내 자녀 지상주의, 내 자녀 중심주의라고 하지만 막상 그 자녀 입장에선 부모의 강요와 통제 속에 부모가 원하는 대로 성장해야 하거든요. 결국 자녀 중심이 아니라 자기(부모) 중심인 거죠. 이 과정에서 아이들이 자유를 빼앗기고 개성을 빼앗기고... 어려서는 말을 좀 듣지만 청소년기에는 부모와 충돌이 있을 수밖에 없어요. 가짜로 부모 말을 듣는 척하기도 하고, 괴로워서 마약에 손을 댄다든지 게임에 중독되는 경우도 있고요.

일본에서 일어난 무차별성 범죄의 가해자 중 일부가 괴물 부모의 자녀였다는 보고가 있었어요. 일본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집에 불을 질러서 많은 사람이 죽고 부상 당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 부모가 바로 괴물 부모였어요. 범죄 심리학자나 정신과 의사들이 비슷한 사례를 진단하고 분석하면서 '괴물 부모의 양육방식이 부모 살해로 이어질 수 있구나' 하는 보고가 있었고, 이로 인한 사회적 영향도 있었던 것 같아요.

괴물 부모가 원하고 기대하는 대로 아이가 자랐다고 해도, 겉보기엔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 같지만 정작 본인은 아주 공허하고 우울할 수 있거든요. 무언가 성취는 했는데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어서 괴로워하는, '성공 우울증'을 겪는 괴물 부모의 자녀들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 괴물 부모들 때문에 고통받은 교사 여러분이 잇따라 세상을 떠나고, 교사들이 대규모 집회를 열고 교권침해 문제 해결을 촉구했어요. 오랫동안 관심 가지셨던 문제인 만큼 이번 일을 지켜보는 마음이 남다르셨을 것 같아요.

"저는 문제가 된 학부모들의 행동이 '교권 침해' 행위라기보다는 '공동체 침해' 행위라고 생각해요. 학급이라는 공동체에서 교사가 자기 역량을 발휘할 수 없도록 했다는 점에서 '교권'으로 해석될 수도 있지만, 아이들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한다면 교권을 넘어 공동체를 침해하는 행위로 봐야 한다는 거죠.

몇 명의 아이들을 보호하고 그 부모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해서 선생님들이 피폐해지고 다른 아이들이 불공정한 경험을 하게 되는 것, 그 과정에서 '공동체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는다'는 경험을 하게 만드는 것은 결국 공동체를 침해하는 거니까요. 이번 책의 부제를 '공동체를 해치는 독이 든 사랑'으로 정한 것은 그래서예요.

내 욕구를 실현하는 것이 자유고, 내 맘대로 해도 되는 것이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해요. 아이들이 민주주의는 공동체와 함께하는 것, 서로 협력하는 것, 내 맘대로 하는 게 아니라 함께 모인 사람들과 약속하고 정해서 모두에게 도움이 되도록 하는 거라는 인식과 경험을 할 수 있도록 해야 돼요.

또 지금 아주 중요한 운동은 학부모들의 운동이라고 생각해요. 괴물 부모와 같은 공동체를 파괴하는 내 자녀 지상주의를 대적할 공동체 주의와 협력에 기초한 학교 운영을 주장하는 학부모 운동이 더 강화되기를 바랍니다. 건강한 3주체, 교사, 학생, 학부모들중 교사와 학생의 권한이 강화되고 특히 학부모님들이 자녀의 건강한 공동체를 지키는 일에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어요. 이번 일이, 우리가 공동체를 되찾는 계기가 되면 좋겠어요."

소수 엘리트 중심 교육에서 학습 공동체를 지키는 교육으로
 
전국 교사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검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를 진행했다.
 전국 교사들이 지난 16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의사당 앞에서 '검은 파도는 멈추지 않는다 - 9.16 공교육 회복을 위한 국회 입법 촉구 집회'를 진행했다.
ⓒ 소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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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또 무엇이 필요할까요?

"학교에서 아이들이 행복하게 지내려면, 경쟁에 기반한, 또는 몇몇 잘하는 아이들에 맞춰진 초경쟁 소수 엘리트 중심의 학교 운영을 당장 그만둬야 해요. 이미 많은 학부모들이 동의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9월 4일 공교육 멈춤의 날 교사집회에 대해 77%의 학부모가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있었잖아요.(각주1)

더 적은 수의 학급 인원을, 더 많은 교사들이 협력해서 경쟁과 갈등보다는 협동과 공동체 정신에 기반해 가르쳐야 한다는 데 많은 사람들이 동의할 거예요. 그럼 교육부의 관료주의와 입시 중심 체제를 옹호하는 세력들에 맞서서 우리가 어떻게 대응할 수 있을까.

이미 좋은 사례들이 많이 있잖아요. 예를 들어 덴마크에선 초등교육에서 협동이 필요한 과제가 60%가 되게 한다더라, 1등을 정하지 않는다더라... 이미 알려지고 연구된 수많은 사례를 본보기 삼아 모든 아이들이 행복한 학교, 교사 공동체와 학부모 공동체가 살아나는 학교를 만드는 것이,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우리가 꼭 해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소수의 괴물 부모들의 구체적인 사례가 더 많이 공유될 필요도 있어요. 보통 부모들은 얼마나 심각한지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일본에서는 후지TV에서 '몬스터 페어런츠'라는 드라마가 12%의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괴물 부모 사례가 공유되고 경각심이 생겼다고 해요. 교양 프로그램이나 드라마, 영화에서 괴물 부모 문제를 좀 더 다뤄서, 우리 사회·문화 전반에 무언의 규범이 다시 세워지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교사를 보호하는 장치가 더 많이 마련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일반 직장에서 퇴근한 직원에게 카톡을 보내면 문제가 되지만, 교사들은 근무시간 이후에도 학부모 전화를 받고 교사 개인이 민원을 모두 책임지는 셈이잖아요. 이번 일을 계기로 교사에게 학습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권한이 더 많이 부여됐으면 해요."

- 코로나 등으로 정서행동 위기 학생이 늘어, 교사들이 수업에 어려움을 겪고 대응하는 과정에서 아동학대로 고소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정서행동 위기 학생을 치유하고 성장시킨 경험이 누구보다 많으신 선생님이 제안하는 해법은 무엇일까요?

"정서행동 위기 학생2)에 대한 특별한 법도 갖춰져 있지 않고 그 학생들이 늘어서 교사들이 수업이 어렵고 학교에서 여러 활동에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나온 지는 10년이 넘었어요. 미국이나 영국 같은 곳에선 이미 20년 전에 ADHD를 포함해서, 특수교육 대상자는 아니지만 학교에서 수업을 할 때 어려움을 주는 학생들에 관한 개념도 정하고, 법도 만들고, 지원정책도 마련하고, 인력도 배치하고 했는데, 우리는 노무현 정부 때 처음 관심을 갖기 시작하긴 했지만 지난 10여 년간 이 부분에 대한 인력과 예산이 거의 늘지 않았어요.

담임 선생님에게만 그냥 맡겨 놓은 채로 경쟁은 강화하면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변화에 대응할 준비를 하지 않았던 거지요. 그나마 존재하는 위클래스, 위센터는 학교폭력이나 일반상담 업무를 하기에도 버거운 상황이고요.

20~30년 된 베테랑 교사도 학급에 정서행동 위기 학생이 여러 명 있으면 학급을 잘 운영하는 게 불가능해요. 학교에 따라 다르지만 적지 않은 경우, 코로나19 이후 학급의 3분의 1이 정서행동 위기 학생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런 상황이면 전문가가 투입돼도 불가능한 상황이거든요. 이걸 선생님한테 맡기고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아동학대로 신고하는 일이 빈번하니까 선생님들이 울분이 쌓이지 않을 수 없죠.

정서행동 위기 학생을 유능하게 잘 돌보는 교사를 키우려면 제도를 바꿔야 하고 시간이 많이 걸리죠. 그러니 그건 그거대로 하되, 정서행동 위기 학생을 돕는 협력교사, 보조교사에 대한 예산과 인력을 지원해야 해요. 선생님들이 실제로 충분한 도움을 받고 있다는 게 체감되게끔 예산과 자원을 빠르게, 충분히 투입하는 것이 여러 갈등과 교사의 소진을 막는 핵심적인 해결책이라고 생각해요."

[각주]
1) "국민 77%, '9.4 공교육 멈춤의 날' 교사 집회 긍정" <교육언론 창>, 2023.09.14.
2) ADHD, 품행장애, 적대적 반항장애,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서행동상의 문제로 학교생활에 어려움을 보이는 학생

덧붙이는 글 | 인터뷰 및 정리: 이미경 희망제작소 시민이음본부 팀장. 해당 글은 희망제작소 홈페이지(www.makehope.org)에도 게재됩니다.


태그:#희망제작소, #희망마이크, #교육, #교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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